고교학점제는 ‘교과목’보다 ‘주제’ 학점제로 누려야

김두루한(참배움연구소장)

'고교학점제, 유령과의 싸움?'이라고


지난 9월 7일 고교학점제 포럼에서 이현님(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은 '고교학점제'에 문제 제기를 한다며 '고교학점제, 유령과의 싸움?'이라 했다~과연 그럴까?

그는 고교학점제의 실체는 특히 기존의 선택형 교육과정과 차이가 모호하다고 했다. 또 고교학점제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면서 더욱이 2025년에 전면화한다고 하는데 우려를 나타냈다.

그런데, 실제로 배움 현장에서 수업하는 나로선 납득이 안 되는 것이었다.


교과목이 아닌 통합주제학점으로 공부하면 어떨까


새삼 그 얘기가 생각났던 2~1반 수업 시간에 내가 겪은 이야기를 소개해 본다. 고등학교 어문인문 교과과정인 2~1의 오늘 수업은 영어, 법과 정치, 윤리와 사상 등의 교과목을 1~3교시에 차례로 했었다. 4교시는 독서와 문법이었고. (이 중 4단원 독서의 실제를 한 시간씩 들어가고 있다)

마침 3교시 수업 내용으로 칠판에 적힌 것을 지우지 않아서 볼 수 있었다. 정약용보다 50년을 전후로 한 사회계약론(루소) 과 자본론(홉스, 맑스)이 경험주의와 이성주의 주제를 다루며 적혀져 있었다. 아마도 윤리와 사상의 ‘공리 의무와 윤리’ 단원인 듯하다.

이 대목에서 이현님이 말한 데 대해 묻고 싶다. 만약 통합주제학점으로 공부하면 어떨지를? 이제까지 '칸막이식'의 ‘교과목 학점제’라 규정하지 말자는 것이다. 평소 수업을 ‘독서’ 따로 ‘윤리와 사상’, ‘법과 정치’를 따로 하고 학교 정기 일제고사로 '칸막이' 평가로 그치션 더 이상 안 될 것이다.현행 ‘독서와 문법’의 4단원 독서의 실제를 배웠으면 학생이 ‘주제통합하며 읽기’를 적용하여 스스로 읽고 듣고 말하며 글쓰기(독서,토론,작문)로 사고와 표현을 하게 되면 즐겁고 생각하는 참배움이 학생 저마다에게 일어날 것이다~


학생이 주어진 교과목보다 좋아하는 ‘주제(뜻)를 골라야


‘배움거리(주제)’가 왜 종요로운가? ‘의미 없는’ 교육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내가 바라는 고교 학점제는 주어진 틀에서 ‘교과(목) 학점제’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꼭 제한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배움 현장에서 몸으로 맘을 다지며 몸소 실천하고 있는 주제 학점제를 제안한다. 배움거리(주제) 배움을 일으켜야 한다~

'주제' 학점제란 ‘교과목’ 학점제와 다르게 학생이 좋아하는 과목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뜻)를 고르는 것이다. 그래서 ’교육과정‘이 아닌 ’배움과정‘이 저마다 만들어질 수 있다. 학생이 관심 있는 주제? 그렇다. 학생들이 지닌 ‘관심사’가 주제이며 이것을 학점으로 쌓아서 늘배움으로 나아가게 고등학교에서 도와야 한다.

'주제 학점제'로 삶의 바탕과 뿌리를 초, 중,고 시절부터 차근차근 쌓아가는 모습을 그려보라. ‘교육’이 절망인 오늘날에도 우리는 ‘배움’으로 ‘희망’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본다. 흔히 학생들에게 ‘꿈’을 묻곤 한다. 요즘은 “네 꿈이 뭐니?”라 묻지 않는다. “네 관심사가 뭐니?” 하고 묻는다. ‘꿈’은 진로, 진학, 취미, 성격 등과 연계한 배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에게 ‘꿈’을 물으면 어떻게 답할까? 취업이나 수시, 정시 등의 입시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게임’이 ‘관심사’인 학생에게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학생의 관심사가 게임이라면 어쩔 수 없이 나도 어느 정도'게임'을 해 봐야 한다. 그래야 다음 대화가 이어질 테니까. '걍 사는' 듯한 분위기를 벗어나게 하려면 나부터 바뀌어야 할 것이다.


참된 배움과 갈닦음은 '교사' 스스로 '교수'로 나아가야


이런 뜻에서 교사는 주어진 지식을 단순히 전달하는 '교사'로 자리매김 되어선 안된다. 21세기는 ‘교육’이 아니라 ‘배움’의 시대이다. 교사는 '갈닦음(연구)'을 회복하여 ‘교수’로 거듭나야 한다. 대학이란 건물껍데기에서 일하는 직업인으로서 ‘교수’를 말하는 게 아니다. 큰배움(대학)을 공론으로 넘쳐나는 배움터로 만들려면 바탕(기초)배움이 제대로 쌓여야 할 것이다.

기초가 부실하기보다 탄탄한 채 진학함이 옳지 않은가? 대학 졸업장? 꼭 대학에 가야 할까? 학생이나 시민들이 궁금히 여기는 것의 풀이를 여러 방면으로 찾고 물음의 속살(내용)을 채우는 일이야말로 대학이 독점해야 할까? 이제라도 ‘대학독점’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것을 가로막은 '교육' (일제식민,반민주독재,재벌자본가옹호)에서 벗어나야 한다~이것은 흉내배움, 거짓배움으로 모두를 살맛나는 삶으로 이끌지 못하는 현실에서 잘 알 수 있지 않은가? 초중등 학교에서 ‘물음’을 되찾자. 참된 갈닦음이 무엇일까? 참된 물음을 던지는 일이다. 이런 뜻에서 그동안 빼앗긴 배움과 갈닦음의 권리를 찾아야 하고 돌려주는 일에 뜻벗(동지)들과 나서고 싶다.


참고) 도이칠란트에서 교수(정년보장 프로페서)는 세 등급이 있다 승급하려면 이동해야 한다~학교에서는 교수가 '경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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