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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ott Nov 14. 2021

신을 붙잡고




신을 붙잡고 흔들라 ㅡ 이 구절에서 멈추었다.

신을 붙잡고 흔들면 나아질까요. 또 묻습니다.

행복만을 원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일까요. 행복과 불행이 구분 지어지기나 하던가요, 행복의 나무 아래에도 그늘이 지는걸요. 그걸 모르지 않으니. 그래서 우리 인간은 아니 적어도 나는 그것만을 원한다고는 단정적으로 말할 수가 없네요. 그러나 당신을 흔들면.. 조금 보일까 해서. 구체화된 삶의 길을 터 줄까 싶어 신을 붙잡고 흔들라는 구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비가 자주 오네요. 변덕스럽기 그지없는 날씨와 나의 마음은 같습니다. 어느 하루들은 평화로운 듯 흘러가는 듯 보입니다. 나는 때아닌 여유를 부리고 있는데, 정말이지 이럴 때가 아닌데 ㅡ 하면서도. 왜 정체된 이 상태에 머무르려 하는지. 지난 시간을 곱씹는 일을 멈추지 못하는지. 나는 평화로운 순간에도 괴로움을 끄집어내어 스스로를 '불안'에 가두려 합니다. 왜입니까. 미소 짓는 얼굴 위로 왜 그런 기억을 집어넣어 낮은 기분을 유지하려 하는 걸까요. 아무런 사고가 없으니 그저 평안하다고 믿으면 되는데 나는 왜 지난 고통을 끌어안으려 합니까. 생각이 많아지면 아무런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행동하기를 꺼려합니다.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길 기대하는.

실행력이 없어 무력한 일인이 되었습니다. 고로 오늘만큼은 불필요한 인간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극단적인 말이나 그것이 사실일 겁니다. 신. 나는 종교적 인간은 되지 못합니다. 대처승의 외할아버지는 내게 신앙을 앗아가 버렸습니다. 꼿꼿이 펴진 허리와 우리(언니와 나)를 내려다보는 무심한 눈길엔 '애정'은 담겨있지 않았습니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는 그가 믿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와 대조되는 잔뜩 굽은 등의 외할머니가 곁에 서 있으면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린 시선이 비틀렸습니다. 아 신을 등에 업고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꼿꼿이 허리를 편 삶을 살겠다? 대신 처자식들에게 자신의 모든 짐을 지우겠다? 어떤 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염불을 외던 모습과 하루 종일 뙤약볕과 흙손, 거친 호흡, 땀. 어지럼증. 이를 반복하는 집안의 여자들의 노동이 교차되며 마음의 화를 키워냅니다.  이기적인 인간이 모시는 신. 그런 자를 감싸 안을 신이라니. 제겐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은 그저 '거짓'에 불과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 기독교 목사 집안에서 남의집살이를 하게 된 엄마는 기독교인으로 하느님을 믿게 되었고 그런 엄마의 영향으로  나는 어린 시절 잠시 교회를 다니긴 했지만 신은 내게서 계속해서 먼 존재로 남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삶이 얄궂게 흘러갈 때마다 생각했습니다. 종교를 갖겠다. 교회를. 성당을. 절을. 어디로 가야 하지 ㅡ 어디에다 빌어야 하지. 이 막막한 심정. 이 슬프고도 괴로운 마음을 어디에다 말할 수가 있는 거지? 나는 종교적 신앙이 깃든 인간은 되지 못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벗어난 또 다른 소통의 창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구원. 구원을 바라는 작은 존재가 ㅡ 되었습니다.

신을 붙잡고 흔들라 ㅡ  그래. 어디로 가면 될까요. 신앙 없는 또한 이기적인 이런 인간은 어느 신에게로 향하면 되겠습니까.


신을 붙잡고 흔들라. 책장은 아직 같은 페이지에 멈추어있습니다.







- 비탄, 야스미나 레자 / 지난여름에. 지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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