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리에 얼어버린 배추

얼어버린 배추는 회복될 수 있을까

by opera

춥다고는 했지만, 아침에 일어나 마당에 나가보니 하얗게 서리가 내렸다. 맙소사! 이 정도로 추웠을진 몰랐다. 일기예보로는 오늘이 가장 추워 영하 1~2도라고 했는데, 벌거벗은 마당이 느꼈던 체감온도는 훨씬 낮았나 보다. 데크에는 하얗게 무서리가 내렸고 상추를 덮어놓았던 미니 온실은 온도차로 결로까지 생겼다.

온실을 들춰보니 다행히 온실 안의 상추는 싱싱하고 해말갛게 웃고 있다. 온실로 미쳐 들어가지 못한 상추 하나는 얼고 말았다. 허겁지겁 배추 밭쪽으로 갔다.

"아뿔싸 ~"

배춧잎이 푸르른 그대로 얼었다. 가녀린 잎선마다 하얀 살얼음이 방울방울 매달려 살짝 얼어버렸다.

정말 제대로 얼어버린 건지 확인하려 한 이파리를 떼 보려다 멈칫한다. 배추는 "얼다 녹다"를 반복하며 큰다고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 어쨌어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자연의 섭리와 흐름을 내뜻대로 바꿀 수는 없다. "얼다 녹다"를 반복하며 자랄 배추는 그래도 뭔가 채워져 있는 아이 아닐까. 우리 밭의 배추는 속이 채워지지 않아, 비나 눈이라도 오면 살 속으로 속속 파고 들어갈 모양새인데.

서로가 서로를 껴안고 단단히 부둥켜져 있다면, 웬만한 추위도 문제없고 까짓 거 "얼다 녹다"도 반복하면서 12월 초까진 견딜 텐데, 지금 마당 밭의 아이들은 서로 껴안기는커녕 펼쳤던 팔을 이제 오므린 상태일 뿐이다. 유난히 푸른 잎이 많아 배춧살이 더 언 것 같고, 뒷마당이라 낮에도 뜨거운 햇빛은 잘 들지 않으니 어찌 녹을지 모르겠다. 그저 오후까지 지켜볼 일이다.


하루가 다르게 편리하게 발전해가는 세상은 돈만 있으면 뭐든 구할 수 있는 현실로 곁에 있다. 상추도 배추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 그야말로 파란 배춧잎만 내밀면 싱싱한 상추도 속이 꽉 찬 배추도, 아니 알맞게 잘 절여진 배추도 필요한 만큼 살 수 있다. 명인이 담근 "아예 맛있는 배추김치"도 마음대로 살 수 있다. 물론 마트에 풍부한 배추나 상추들 역시 정성으로 길러냈을 것이다. 마당에 심어진 상추나 배추와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바라보며 마음 쓰는, 내 눈에 다르게 보이는 것뿐이다. 같은 것이라도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사실 다른 것이다. 생명 있는 세상에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것이 생명의 신비고 살아지는 이유다.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수많은 사람들 중의 "너"와 "내"가 닮지 않은 다른 존재이기에 살아가는 맛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성어(成語)가 사전에 나오는 성어에 불과해버린 현실에서 그저 쉽고 편하게 마음 쓰지 않고 살아가는 일상에서, 굳이 땅을 밟고 사는 삶을 택한 이유가 무엇이던가. 순간순간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고 배우며 실천해 보고 싶어 한 일이 아니었던가를 다시 한번 깨닫는다.


온전한 겨울이라 부르기도 약간은 민망한 11월 중순 늦가을 아침, 무서리에 살짝 얼어버린 배춧잎을 보면서

상추 배추 한 포기 길러내는데도 이리 많은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야 하는데 주위의 내 사람들에게는 얼마 큼의 관심과 마음을 썼는지 미안한 마음이 찬바람 사이로 저며 든다.





p.s.

지난 8월 게재했던 "묶은 김치" 이수인 님의 "고향의 노래"를 "한국 남성합창단"의 노래로 올렸는데,

오늘 아침 무서리를 보면서 테너 박인수 님의 노래로 다시 한번 들려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ZJRZ57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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