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배추 일대기" 배추야 수고했어 고마워

2021년 나의 첫 배추 농사를 마치며

by opera

오후부터 눈이 내린다는 소식에 마침내 배추를 거둡니다.

아쉬워서 다 거두지도 못하고 견딜 녀석은 견뎌보라는 심정으로 나눠가며 뽑았습니다.

김장 담기 위해 시장에서 사 왔던 배추...

두어 포기만 들어도 무거웠던 배추, 절이기 위해 칼집을 내어 쪼개면

"쫙"하고 갈라지던 배추를 생각하니,

이 아이들도 배추임에도, 배추 아닌 듯싶게 너무도 가볍고 헐거웠습니다.

열 포기 아니 스무 포기라도, 눌러 안으면 인길 것 같은 가벼운 아이들이었습니다.

방송에 기부를 호소하는 가난한 나라의 굶주린 아이들처럼 앙상한 느낌이 전해져 왔습니다.

갑자기 마음이 짠하니 뭉클합니다.

어쩌면 이 아이들은 배추로 태어나서 제맘껏 자라지도 못해보고

나의 브런치 글 소재로만 역할한 것은 아닌가 하는 미안한 마음까지 듭니다.


가벼운 배추를 열댓 포기 뽑아, 흙을 털어낸 후 뿌리째 창고에 넣고,

우거지를 만들기 위해 다시 열댓 포기를 뽑아 뿌리를 자릅니다.

마당에서 먼저 다듬은 후, 마른 몸에 더 날씬해진 아이들을 집안으로 들여갑니다.

뿌리 쪽을 더 잘라내니, 반으로 가를 것도 없으니 몸이 풀어집니다.

씻으려 대야에 넣는데 추는 풀어지며 속을 보입니다.

"세상에! 헐렁한 몸속에 노랗게 익은 속살이 숨어 있었네!."

하얀 몸에 노란 옷을 입고 통통하고 작은 배춧잎이 그래도 배추라고 들어있네요.

겉 배춧잎은 얼갈이 배춧잎이지만 속은 몇 장 정도 결구된 것처럼 보이는 작은 덩어리가 있었습니다.


속 알맹이를 따로 놓고 겉잎들은 깨끗이 씻은 다음에 끓는 물에 삶아냅니다.

삶으니 배춧잎의 엽록소가 빠져 연초록 물이 나갑니다. 그래도 국거리 배추로라도 써야 하니, 삶아 저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잘 헹군 다음, 꼭 짜서 썰어 한 움큼씩 작은 비닐봉지에 넣고 냉동실에 넣어둡니다.

배추 열댓 포기에 한 끼 국거리 여덟 봉지와 쌈으로 먹을 수 있을 속 노란 배춧잎이 나왔습니다.


올해는 전국적으로도 배추 농사가 잘 되지 않아 힘들었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우리 동네도 해마다 배추농사를 잘 짓던 분까지도 잘 안되어 배추를 사서 김장한 집이 많습니다.

아마 배추가 잘 자랄 해였다면 우리 마당의 배추도 지금보다 훨씬 건강하고 크게 자랐으리라 생각됩니다.

어차피 김장하긴 힘들겠다 생각됐지만, 우거지 외에도 쌈배추까지 맛볼 수 있게 해 줄 것이라곤 기대하지 않았는데, 노란 쌈배추가 작게라도 덩어리 져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고기 없이도 맛있는 배춧쌈으로 저녁 식탁은 배추 화제로 따뜻한 이야기 꽃을 피웁니다.


뒷마당 밭의 배추는 다섯 편의 글로 힘을 주었고,

푸르른 잎으로 한 아이도 낙망하지 않고 겨울 초입까지 오는 끈기를 보여주고,

비록 작고 부실해도 쌈배추까지 제공했으니 제 몫을 다하고도 넘쳤습니다.

"고맙다 배추야!

받으려만 하려는 인간보다, 끝가지 아낌없이 주려는 너는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자연의 선물이었구나".

그런데도 배추는 전합니다.

"김장 김치"를 못 안겨줘 미안하다고...






2021년 배추 일대기를 마치며, 아기 배추를 처음 심었던 9월 10일부터 올렸던 다섯 편의 글을 올려봅니다.


https://brunch.co.kr/@@2oEJ/165

https://brunch.co.kr/@@2oEJ/173

https://brunch.co.kr/@@2oEJ/177

https://brunch.co.kr/@@2oEJ/182

https://brunch.co.kr/@@2oEJ/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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