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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Sep 01. 2022

강아지 셋이 주는 행복

우리는 동무 너는 내 동무야


 며칠 흐렸던 날이 모처럼 맑았다. 아니 해가 반짝 나진 않았어도 비는 오지 않는다니 멀리 강가엔 물안개가 끼여 있지만 맑은 날이 될 날이다. 이틀을 제대로 밖에 나가지 못한 아이들이 아침부터 눈치를 살핀다.

강아지들은 갠 날인지, 흐린 날인지도 모른다. 그저 집 밖으로 산책하는 날이 갠 날이요, 맑은 날이란 것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일기에 상관없이 저하고 싶은 산책을 하는 날이 맑고 좋은 날이니 말이다.


강아지 셋 데리고 산책하는 것이 결코 쉽진 않다. 해보니 더 잘 알겠다. 요즈음 짬이 나니 유기견 보호소 봉사라도 해 볼까 생각했는데 셋을 돌보다 보니, 주기적인 봉사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예전 시카고 방문했을 때 강아지 여럿 데리고 산책 아르바이트하는 사람을 많이 봤다. 강아지가 아니고 큰 개도 많았다. 어떻게 다섯 아이를 데리고 다니냐 물었더니 훈련이 잘되어 말도 잘 들어 힘들지 않다고 했다. 비상상황만 생기지 않는다면... 건장한 청년은 개를 사랑하기 때문에 알바도 재미있게 한다고 했다. 아무리 훈련이 잘 된 개라 하더라도 힘들 텐데...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직업이니 나름 노하우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나도 해보고 싶단 생각도 했었다.


우리 강아지들은 다 합해도 10kg이 되지 않으니, 덜 힘들긴 하다만 개성이 강해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먼저 치와와 승리는 2.1kg, 망태기에 넣고 어깨에 메고 다닌다. 웬만하면 승리는 두고 나오고 싶어도 워낙 준비할 때부터 짖어대는 아이라 두고 올 수가 없다. 승리는 망태기에 앉아서 여유 있게 바깥을 감상하면서 온갖 간섭은 다한다. 아는 곳이나 혹은 낯선 사람을 보면 앉아서도 "앙앙" 짖어댄다. 자신의 존재감을 누구보다 강하게 부각시킨다. 아무리 조용히 하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천성이리라. 보리는 워낙 아기 때부터 등산을 했고 산을 잘 타서 산책하기를 좋아하던 녀석이니 무리 없이 잘 걸어간다. 가끔 다리가 아파서 걱정이지만 그래도 순종심이 강해 산책도 잘하고 말도 잘 듣는다. 샐리는 제가 하고 싶은 산책을 하려고 한다. 샐리가 예전 아기 때는 보리와 함께 주말 아침마다 산행을 했었다. 보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걸어가고 셀리는 가다가 힘들면 안 가겠다고 버텼다. 주저앉아 버리는 강아지였다. 푸들은 머리도 좋고 활달하여 사람에게 생동감을 주고 귀여운 강아지 이긴 하지만 고집이 상당히 세다.  다행히 서울에 올라간 후로는 산에도 캠핑도 잘 다니고 어디든 잘 다니는 튼튼하고 발랄하게 성장을 했다. 업둥이 봄이 녀석에게 치이기 전에는...


샐리는 밖에 나가는 것을 격하게 좋아한다. 나이가 벌써 열두 살이 돼가고, 애프리 푸들 고유의 예쁜 색도 조금씩 바래졌지만, 아직도 천진난만한 아기라 마당에만 나가도 온 구석을 헤집고 다닌다. 성정이 급하고 고집이 세고 나대는 아이라 아무리 걷겠다고 해도 무리하지 않게 해야 한다. 가끔 컥컥거려 병원에 가면 선생님이 나이 들어 기관지가 좁아져 그러니 운동 무리하게 시키지 말고 산책도 얌전히 가까운 거리로 하란다.

그래도 오늘처럼 뜨겁지도 않고 선선한 날에는 제법 멀리 산책을 나오게 된다.


보리 샐리는 가슴 줄을 하고 열심히 걷는다. 승리야 망태기에 앉아 잔소리밖에 못하지만, 보리와 샐리는 각자의 취향이 있다.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누군가가 영역 표시해 놓은 자리를 찾아 제영역을 다시 표시하는 것이다. 샐리는 보리보다 훨씬 빠르게 먼저 걸어간다. 아이들 덕에 나도 운동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이 먼저니 내 속도대로 걸을 순 없다. 풀 숲 냄새를 맡기도 하고, 나무 밑 등걸 냄새에 취하기도 한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테크 난간 멀리를 쳐다보기도 한다. 두 마리가 생김새도 다르지만, 취향은 확실히 다르다. 샐리는 볼일 보면 직진이지만, 보리는 여기저기 "킁킁"거리는 것을 좋아한다. 때로는 한 팔로 때로는 양팔로 리드 줄을 잡고 있는데, 어떤 때는 나를 중앙에 두고 하나는 앞으로, 하나는 뒤로,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뻗대기도 해 나는 허수아비가 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지나는 누군가가 봤다면 한 번쯤은 크게 웃었으리라. 매달려있는 한 녀석까지 봤다면 웃기보단 안쓰러워했을지도 모르겠다.


"왜 저렇게 하면서까지 개를 키울까?"

"개에 치이면서도 저렇게도 좋을까"


그들은 모르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으리라

강아지가 주는 행복과 위로와 사랑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때론 격한 고마움을...


양팔이 벌어질 때는 "보리야, 샐리야" 하고 목청을 높이기도 하지만, 좋은 방법은 잠시 멈추는 것이다. 그냥 그대로 잠시 서 있으면 두 녀석은 금세 내 옆으로 온다. 그러면 다시 걸으면 된다. 때로 꼬여가는 일상을 벗어나는 길이, 잠시 쉬어가는 것인 것처럼, "잠시 멈춤"으로 두 녀석도 평정을 얻게 된다.


다른 한 가지는 내 의지와 강아지의 의지가 같아졌을 때다. 샐리와 보리 둘 중의 하나가 양보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럴 땐 줄을 당긴다. 대부분 착한 보리가 샐리 곁으로 간다. 요크셔테리어인 보리 성격도 만만찮지만, 나를 더 좋아하기에(?) 공감하고 따른다고 생각된다. 잠시 멈추고 기다리던지, 한 아이가 양보를 할 때 산책은 계속될 수 있다.


개를 키우다 보면 사람 사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기 보존의 법칙이 먼저다. 자연 속의 모든 생명이 그들 고유의 살아가는 방식이 있긴 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향한 "의지"라는 것에 있어선 동일하다. 그것이 타고난 성정 일 수도 있고 후천적인 습관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자신의 의지와 선택으로 이어간다. 보리도 고집이 센 편이지만, 시키지 않아도 양보를 잘하는 편이다. "나이 먹은 개를 가르치려 하지 말라"는 영국 속담처럼 샐리는 고집을 잘 꺽지 않는다. 두 녀석이 서로 뻗대면 산책시키는 사람이 힘들어진다. 하나가 양보하기에 가능하다. 사람살이도 다르지 않다. 누구라고 고집과 주장이 없겠는가. 조직에서든 이웃사회에서든 심지어 친구 간에도 목청 크고 어깃장을 놓으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밀고 나가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아주 커다란 문제가 아니라면 받아들여주고 양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관계가 이어지는 것이다.


강아지 세 마리를 산책시키려면 나갈 땐 부잡스럽고 힘들어도 돌아올 땐 항상 뿌듯하다. 사람처럼 다 표현하진 못해도 정답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주거니 받거니 걸어가는 두 녀석은 가족이고 동무다. 지긋이 바라보는 나까지 기꺼이 동무로 받아들여주는 사랑스러운 가족이다.


같은 길을 가고 함께 거하는 우리는 친구입니다.

모습이 다르고, 난 바도 다르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지금 곁에 있어 함께 걸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같이 갈 가족이고 동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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