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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Jul 28. 2021

강아지와 실랑이하는 아침 풍경

보리가 원하는 산책과 내가 원하는 산책의 차이


 오늘도 얼마나 더울 것인가 집에 있다 보니, 에어컨이 꼭 필요한 것인 줄 알겠다. 그래도 냉방병을 잘 타는 체질이라 에어컨으로 더위를 해결해 주기만 바라기는 힘들다. 가끔씩이라도 불어주는 바람과 선풍기와 에어컨의 적절한 조합이 요즘을 견뎌내는 비결이다. 다행히 우리 가족들은 더위를 많이 타지는 않아 이점에선 이견이 없다.


개들은 사람보다 체온이 1도 이상 높다. 만지면 뜨끈하다. 소파나 차가운 곳에 배를 깔고 드러누워 보낸다. 거실 큰 유리창에 얘들 눈높이에 맞게 띄어 놓고 중간 부분부터 선팅지를 붙여놓았다. 심심하니 마당에 나무와 꽃이라도 보라는 마음에서였는데, 요즈음 새와 나비가 많이 날아다녀 작은 움직임에도 쫓아다니며 짖어대니, 더운데 더 피곤하게 하는 건 아닌가 싶다.


낮에는 더워서 아이들 운동을 못 시킨다. 오후 늦게 다녀보기도 했는데, 낮에 달궈진 도로가 뜨끈해서 발을 델 지경이라 아침 일찍 잠시라도 산책을 시킨다. 시골 자연 속에 살고 있어 덕 보는 것 중 하나는, 때 묻지 않은 숲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마을에는 나지막한 뒷산이 있다. 면소재지로 나가는 길인데, 내리막을 데크길로 만들어 놓은, 오래된 소나무들이 있는 멋있는 길이다. 아침에 아이들을 데리고 이길로 산책을 다녀온다. 산 데크길을 내려와서 편편한 데크길을 좀 걷다가 다시 마을 옆길도 돌아온다. 보리는 아침이면 이 시간을 기다리는 것 같다.


한 녀석은 앞 포대기에 넣고 보리는 걸린다. 뒷산 데크를 내려갈 때는 안고 간다. 계단 내려가는 것이 강아지 무릎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데크를 내려와서 땅에 내려놓는다. 마을 주민들을 위해, 산 길임에도 비 오면 질척거릴까 봐 그랬는지 요즘 더러 깔아놓는 두꺼운 멍석(?) 길을 조성해 놓았다. 나나 보리는 흙을 밟고 다니는 것이 좋았는데.. 보리는 꼭 같은 장소에서 흔적을 남긴다. 배변봉투를 항상 가지고 다니지만, 집에서 하고 나와 주로 영역표시만 하는데 얘는 여자아이인데도 유난히 영역표시를 강하게 한다. 산길을 내려오면서 몇 번이고 보이지도 않는 흔적을 남긴다.


짧은 산길을 내려오면 다른 마을로 내려가는 데크길이 펼쳐진다. 걷기에 좋다. 지금은 잎만 무성한 벚나무 길이지만, 옆으로 강도 보이는 시원한 길이다. 그런데 보리는 이 길을 싫어한다. 버티고 있다. "보리야 가자 여기도 걸어야지" 못 이기는 척 따라온다. "왜 얘는 이 길을 싫어할까" 생각해보니, 올 초에 운동한다고 이 길을 지나 면사무소까지 가는 길을 30분 이상 한 달 정도 걸었었다. 특히 다리 위를 걸어갈 때는 바람이 심하게 불어 추웠는데, 보리를 자주 데리고 다녔다. 그래서 힘들었던 기억 때문이 아닌가 싶고, 다른 하나는 데크길은 바닥이 딱딱하고, 풀이나 냄새나는 것들이 없어서 그런 것 아닐까 싶다.


보리는 산책 중에 유난히 냄새 맡는 것을 좋아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냄새를 찾는 건지 영역표시에 대한 냄새를 맡는 것인지, 킁킁거리면서 냄새를 맡고 때로는 영역을 표시하고 걷는다. 사실 보리 산책시킨다면서 나는  그 핑계로 걷는 것이다. 그러니 내입장에선 데크길을 실컷 걷고 싶은데, 얘는 좀 걷다가는 버티고 서있고, 달래서 다시 걷고 아침마다 적잖은 실랑이를 벌이는 것이다. 물론 강제로 줄을 당기면 결국은 따라오는 순종파 강아지다. 하지만, 자유의지를 주고 있으면 조금 따라오다가는 딱 버티고 서있다. 돌아가자는 것이다. 소심한 성격의 보리가 유일하게 고집을 피우는 때가 산책할 때다. 절충해서 어느 정도 데크길을 간 후에 유턴한다. 보리는 그 위치까지 정확히 알고 있다.


마을을 돌아가는 길로 가면 보리가 좋아하는 곳이 많다. 길이다 보니, 흙 사이로 풀도 많고 냄새나는 것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리라. 나는 이 길이 싫은데, 진드기나 벌레도 많아 물릴까 염려도 되고 혹 다른 아이들의 흔적 냄새를 맡는 것도 지저분해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진드기 약도 바르고 심장사상충 약도 먹이고 평소보다 여름이면 더 신경을 쓰고 보살피긴 하지만... 숲 속으로 더 들어가려고 한다. "안돼" 하고 잡아당긴다. 못 이기는 척 따라오다가, 다시 풀이 있는 곳으로 킁킁거리면서 간다. 조금은 느슨하게 놓아둔다.


"그래 너 산책시킨다고 나와서 나 좋아하는 걷기만 하면 안 되지..."

보리는 걷는 것보단 냄새 맡으며 세상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고, 나는 걸으면서 운동의 기쁨을 맛보고 즐기니 아침 산책을 하는 나나 저나 같은 행위를 하면서도 다른 목적으로 하고 있어, 몇 군데에서 적잖은 실랑이를 매일 벌이는 것이다.


문득, 개 하고 "안돼, 가자, 이리로 가자, 응~" 하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으니 누가 상관하랴마는 사람하고 사는 일이나, 개 하고 사는 일이나 "생명 있는 것들의 이어짐"이란 서로 절충하고 어울리고 얽혀져 "이어가는 것"이란 생각을 배운다. 왼쪽 손가락이 따끔한다. 까만 산모기가 앉았다. 여지없이 "탁"하고 오른손을 날린다. 산모기는 잠시 피를 빠는 즐거움을 누렸을지 모르지만, 내 손바닥에 의해 제 목숨을 날렸다. 죽을지 알고 물지는 않았겠지만, 결과는 죽음이었다. "모기야 물면 네가 죽어" 대화도 실랑이도 할 수 없는 존재도 자연 속에는 많다. 어디 자연뿐이라 인간관계에서도 대화도 실랑이도 안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내 피에는 소금이 흐르고 있어. 그래서 나는 바다를 떠날 수가 없단다" 크로아티아 비스 섬 어느 어부의 말이 생각난다. 우리 보리의 피에는 자연의 냄새를 맡아야 흐르는 DNA가 있나 보다.

"보리야 네가 가고 싶지 않은 길이면 안 가도 돼, 아침마다 실랑이를 벌여도 좋아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면 돼~~" 주눅 들지 않고 제 주관을 뚜렷이 표하도록 키운 것 같은 교만함(?)이 섞인 뿌듯함에 오늘 아침 산책길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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