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있던 샐리가 시골집으로 내려왔습니다.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업둥이 깜이가 너무 사납게 굴어(특히 먹을 것 앞에서...) 나이 든 샐리가 주눅 들고 기를 못 펴고 사는 모습이 가여워, 얼마 전 동생네가 다녀갈 때 두고 가라고 했습니다. 샐리는 로리가 떠난 후 데리고 온 방년 열두 살 푸들 아가씨입니다.
로리는 퍼그(pug) 종이라 호흡기 질환이 있었고, 짖음이 없었습니다. 코를 심하게 골아 혹 코 고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면 아이가 어찌 된 건 아닌지 염려로 확인하곤 했습니다. 로리가 14살로 무지개다리를 건넌 후 가족들은 펫로스 증후군에 시달릴 만큼 마음의 고통이 심했습니다. 이럴 때는 다른 강아지를 키워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는 담당 선생님이 조언으로 샐리를 데려왔습니다. 샐리는 어릴 때부터 "발랄" 그 자체였지요. 물론 로리가 나이 들어 심장도 안 좋아지고 호흡 때문에 고통받는 것을 봐왔기에 새로 입양하는 강아지는 단두종이 아니고, 발랄하며 짓기도 하는 아이였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마침 소개받은 샐리가 그런 아이였습니다.
"똥꼬 발랄한 푸들" 그 자체였습니다.
샐리가 6개월 때 홀로 외로울까 봐 (샐리 입장에선 전혀 아닐 수도 있었지만...) 보리를 입양했습니다. 보리 역시 발랄한 요크셔테리어라 두 녀석은 아주 신나게 잘 어울리며 놀았지요. 어느 날 저녁에 소파에서 오르락내리락하던 잘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악소리가 나서 보니, 보리가 오른발을 들고 있었습니다. 놀라 심야병원에 데려가니 무릎 아래 뼈가 부러졌다고 해 수술을 했습니다. 성장점은 피했다고 자라는 데는 문제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수술 후 엑스레이를 확인해보니, 수술한 곳이 약간 비뚤어져 재 수술까지 했습니다. 철심을 박았는데, 빼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아직까지 철심이 박혀있는 상태입니다. 보리도 나이가 들다 보니 철심 주위가 불편한지 오른쪽 다리가 왼쪽 다리 같지 않아 수의사님 말만 듣고 철심 제거를 하지 않은 것이 후회됩니다. 수술 후 가료 중에 조심해야 한다고 해, 워낙 활발하고 나대기를 좋아하는 샐리를 동생집에 보내게 되었습니다.
샐리는 그렇게 떠나고 자주 만나기는 해도 그 집 강아지가 되었습니다. 보리 치료가 끝난 후 혼자 외로울까 봐 승리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때부터 보리와 승리는 다정하게 때로는 앙앙거리며 자라납니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 강아지를 좋아하는 오지랖은 결국 깜이까지 입양하게 만들었습니다. 깜이는 까만 푸들인데 누가 키우다 못 키우겠다고 연락을 해와 샐리를 키우고 있는 동생에게 같은 푸들이니 키우면 어떻겠냐고 권해 동생도 샐리와 깜이, 푸들 두 마리를 키우게 되었습니다.
이때까지는 푸들 두 마리 키우는 것은 "최악의 조합? (표현이 좀 세긴 해도 정신없는 건 사실입니다^^)이라는 것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파양 된 경험이 있는 깜이는 주인 바라기만 하고 덩치도 샐리보다 2kg이나 더 나가는지라 샐리를 누르고. 때로는 "개 훌륭" 프로에 나오는 교육받아야 할 개처럼 샐리를 위협합니다. 주인 말도 잘 듣고 활달하게 잘 놀지만, 먹을 것 앞에선 정신없는강아지로 변하기도 합니다. 여러 해 동안 함께 지내며 샐리는 깜이에게 주눅 들고 말았습니다. 서열이 확실한 개의 세계에서 몇 살이나 어린 깜이가 주도권을 잡고 말았습니다.
한 번씩 만날 때면 깜이한테 주눅 든 샐리가 안쓰러워, 시골에서 살게 된 우리 가족은 늘 아픈 손가락이었던 샐리를 이번에 다시 보살펴보기로 한 것입니다. 샐리의 입장에서는 이미 서울에서 산지가 십 년이 넘었으니 제 식구는 서울에 있는 가족들입니다. 두고 간 식구들을 그리워하며 며칠을 거실 창문을 내다보며 외로워하는 것 같습니다. 저를 떼어 놓고 갔다고 원망이라도 하는 듯...
아침과 저녁으로 산책도 시키고, 좋아하는 간식도 주고 샐리 마음을 얻기 위해 애를 쓰는데 다행히도 샐리는 잘 적응합니다. 그런데 새침데기 보리가 이상한 행동을 합니다. 다리를 더 절룩거리면서, 화장실에서 나오지도 않고 끙끙거립니다. 작년에 늘어지고 이상행동을 해 병원에 데려가 주사 3대를 맞고 나은 적이 있는데, 그때처럼 흡사 정신이 이상한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밥은 잘 먹어 하루 이틀 보고 병원에 데려가야 하나 고민하던 중, 사나흘이 지나니 조금 나아졌습니다. 보리가 샐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봅니다. 강아지에게 스트레스는 제일 안 좋다는 사실을 보리는 여실히 보여줍니다. 주관이 확실한 승리는 누가 오던 자기 영역만 안 건드리면 상관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샐리는 며칠 지나니 상당히 발랄하게 잘 적응하고 잘 때도 식구들 옆에 꼭 붙어 잡니다. 밥을 줄 때도 옆에서 괴롭히는 존재가 안 보여서인지 흥분도 덜하고 잘 먹고 잘 놉니다. 푸들은 원래 발랄하기도 하지만, 원래 이 집에 살던 강아지보다 더 주인처럼 당당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이면서 "아고~고마워 샐리야 잘 지내줘서^^" "참 적응도 잘한다 ㅋㅋ" 하며 식구들이 대견해합니다. 하기사 원래 주인이었던 녀석이었는데, 밀려나 다른 집에 가서 살게 된 것이니 제집으로 돌아온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이 집 저 집으로 왔다 갔다 안쓰러운 나의 시각과 달리 새로운 환경을 나름 즐기며 견디는 법도 터득한 듯싶습니다.
반면에 까칠하게 몸으로 티를 내고 있는 안쓰러운 보리를 봅니다.
"보리야! 네가 아픈 바람에 떠나갔던 샐리는 다시와도 저렇게 씩씩하게 잘 적응하네... 보리야! 세상 살아가려면 저 정도의 당당함과 어쩌면 뻔뻔함이 있어야 한단다.
너처럼 소심하고 스트레스를 잘 받는 성격은 아플 수 있어~ (실제 보리 증상은 아팠습니다.)
그러니 보리야! 샐리를 보면서 좀 대담해지고 지금부터라도 툭툭 털고 사이좋게 지내~"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한주가 지나면서 보리의 스트레스 증상도 없어졌고 셋이 산책도 즐기고 시골 개가 되어가는 샐리는 깜이에게 눌려 살던 시절을 잊은 것 마냥 발랄합니다.성격 좋은 푸들 샐리와 까칠한 요크셔테리어 보리와 작은 덩치에도 아랑곳없이 당당한 치와와 승리는 각자의 영역을 지키며 사이좋게 지냅니다.
개도 사람도 요즘같이 힘든 세상에선 뻔뻔하리만큼 당당하게라도, 자신의 삶에 먼저 충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원치 않는 환경으로 변해버린 형편에서도 발랄하게 잘 버티고 살아온 샐리를 보며 조금 힘들게 바뀌어 가는 형편이라도 용기를 잃지 않고 꿋꿋하게 버티고 제자리를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강아지 세 마리~
그것도 나이 들어가는 강아지들은 많은 보살핌을 요구합니다. 그래도 강아지들이 주는 사랑과 행복은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다른 생명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은 그만큼 마음을 써야 하며 부지런함과 작은 희생을 요구합니다.
간혹 남아있는 새 밥이나 싹 비워지지 않은 길냥이 밥그릇을 볼 때면 "혹시나" 하는 염려도 마음을 누릅니다.
함께 한다는 것은 성심껏 사랑을 베풀기는 하되,
어떤 결과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도 가져야 하는 고행의 길이기도 합니다. 찾아오는 자연의 손님들이 물 한 모금이라도 편히 마시고 갈 수 있고, 나이 들어가는 강아지들이 즐겁게 뛰놀 수 있는 작은 마당을 가꾸며, 담담(淡淡)함을 키워가는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