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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Feb 09. 2023

고양이 편지

깜냥이가 사람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나는 강아지가 아니라 고양이었더랬습니다.

사람엄마는 가끔씩 들렀던 나를 몰라라 하지 않고 밥도 챙겨주고 물도 챙겨주더니,

지난겨울 혹한에서는 화초를 보온하던 삼각비닐하우스로 집까지 만들어 주었습니다.

사람엄마는 나를 참 사랑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모처럼 편해진 안식처에 어린 자식 셋을 데리고 들어와 쉴 수 있었습니다.

사람엄마는 밥 줄 때마다 뭐라고 얘기도 하셨지만,

나는 그저 고맙다는 인사를 "하악~하악"하며 엄마의 다리에 등을 비비곤 했습니다.

나와 내 친구 누렁이도 햇살이 잘 드는 현관옆 뜰에 몸을 뉘이고

따사로운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등도 비벼 가며 쉽니다.

아기들은 햇살이 잘 드는 정원구석구석 뛰어다니며 놉니다.

잘 자라 줘, 고맙고 흐뭇한 엄마의 마음도 느껴보고 쉴 때면 강아지들의 짓는 소리는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러면 사람엄마가 뛰어나오십니다.

뭐라고 야단을 하시면서 손을 데크 쪽으로 휘젓습니다.

"너희는 이쪽으로 나오지 말고 여기서 놀아~"

"보리랑 승리 샐리가 흥분해서 짓잖아"


살짝 서운하긴 합니다.

아이들이 나대는 것은 본능이고,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고양이들의 본성이기도 한데...

사람엄마는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밥도 주고 물도 주고 가끔 간식도 주고 집도 해줬으면서 자유롭게 놀고 다니는 것은 왜 말라는 것인지...

사람엄마는 뭐라고 자꾸 말씀하십니다.

나는

사람엄마의 표정으로 읽을 뿐입니다.

"밥만 먹고 놀기는 나가서 놀아.. 어차피 봄 되면 청소하고 집도 치울 거니까..."

"데크 아래를 막아야겠어. 아기냥이들이 숨지 못하도록..."


그러다 얼마 전 결국 사달이 나고 말았습니다.

보리가 현관문틈으로 뛰쳐나와 제게 달려온 것입니다.

보리는 얼굴을 들이대고 짖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순간적으로 방어하려다 손을 휘둘렀습니다.

"왜 그래? 왜 그래?"

그저 막으려는 것뿐이었는데, "깨갱"하는 보리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달려왔던 사람엄마는 보리를 안고 내게 큰 소리를 쳤습니다.

"나한테 왜 그래~"

라고 한 것뿐이었는데... 아마도 내 손톱으로 상처가 생긴 모양입니다.


급하게 보리를 안고 나갔던 사람엄마가 돌아왔습니다.

큰 목소리로 뭐라고 하십니다.

"보리눈이 너 발톱 때문에 다쳤어!  

 큰일 날 뻔했단 말이야~~"

"병원에선 그만하길 다행이라 했지만,

어찌 그럴 수 있니?

먹여주고 재워주고 했는데..."

식구들이 화가 많이 난 듯합니다.

진작 내보냈어야 하는데 왜 불쌍하다고 그냥 뒀냐고...

마음 약한 사람엄마에게 뭐라는 것 같습니다.


보리에겐 다가가서 사과할 수 없습니다.

보리나 샐리는 우리 고양이와는 다른 종족입니다.

이 집에서 제일 작은,

치와와 승리까지 우리만 보면 짓어댑니다.

강아지들이 제 앞으로 오면

이상하게 저도 모르게 손부터 올라갑니다.

이제 날이 풀어지면 강아지들은 마당에 더 자주 나올 것입니다.

집도 만들어줘 아기들을 데리고 들어왔는데...

아무래도 나가야 할 때가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바깥에 나왔다 보니 집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지난주 보리사건 이후로 부쩍 예민해지신 것은 알았는데,

집까지 사라져 버릴 줄은 몰랐습니다.

보리가 병원에 다녀온 날도 그다음 날도 밥도 잘 주시고 챙겨주셨거든요.

야속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합니다.

집이 없어지고 나니, 다시 찾고 싶은 마음도 적어집니다.

하지만 사람엄마를 원망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봄이 곧 올 것입니다.

잘 자라 준 아기들은 동네를 자유롭게 휘젓고 다닙니다.

물론 걱정도 늘어나기는 했지요.

그래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고양이입니다.

그러니 다가오는 봄에는 더 활발하게 살려고 생각합니다.

"야옹~ 야옹~ 야옹~

사람엄마!

독립할 계절이 와서 나가는 것이니

너무 미안해하지 마세요!

보리언니!

뭐라 말해야 알아들을지 모르지만,

미안한 마음은 꼭 전해 주고 싶어요.

야옹~ 야옹~~ 야아옹~~~"


나는 고양이입니다.

원하는 곳 어디서나

풀풀한 자유를

집보다 밥보다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고양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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