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인가? 강아지들 마당에 내어놓으려고 현관문을 살짝 연후 밖에 길냥이들이 있나 확인하려던 사이, 성질 급한 보리가 그 틈을 잽싸게 빠져나갔다. 뒤쫓아 나갔지만 아니나 다를까 데크에서 느긋하게 앉아있던 깜냥이를 보고 "왈왈" 난리를 친다. "보리야 안돼~ " 말도 끝나기 전에 "깨갱" 하는 소리가 들렸다.
면전에 들이대고 짓는 보리를 피하기는커녕 깜냥이가 손을 휘젓다 보리눈을 긁은 듯했다.
놀라 보리를 안고 보니 눈에 피가 조금 보였다. 데크를 제 영역으로 생각하고 피하지도 않고 있는 깜냥이를 쫓고 보리를 안고 정신없이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서 확인해 보니 눈꺼풀 위에 생채기가 나고 눈 안에 1센티 정도의 검은 머리카락 같은 것이 보였다. 선생님이 웬 털이 있는지 하다가 눈꺼풀막을 할퀴어 떨어진 것 같다고 했다. 잘라내고 주사 두대 맞고 약 5일 분과 안약을 처방해 줬다. 각막은 상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나니, 보리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만하기에 다행이었지만 더 조심하지 않은 내 불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강아지들 산책시킬 때도 아예 현관에서 하네스를 하고 데크 쪽으로 가지 못하게 했더니 고양이들이 사람을 겁내지 않는 것은 물론, 개들이 짖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자기들을 공격할 것이라 생각 않다가 보리가 달려드니 대응한 것이다.
어쩌면 내가 길냥이들의 영역을 만들어줘서 그렇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이 되면 길냥이들을 내 보내려 했고 그동안이라도 강아지들과 고양이와 부딪치지 않도록 신경 쓴다고 했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병원에서 돌아와서 보니 눈이 약간 부은 것 같았다. 저녁밥에 약을 섞어 먹이고 안약을 넣았다. 눈 안이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깜냥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우스 안에서 새끼들과 자고 있는 것 같았다.
강아지들은 집안에서 함께 생활하는 식구 아닌가...
그 아이들의 안위를 먼저 생각했어야 하는데...
불쌍하다고 길냥이들을 거두다 보니 정이 들어 내보내는 일이 하루하루 미뤄진 것이다.
식구들이 진작 고양이를 내쫓았어야 하는 것인데 당장 나가 치워버리자고 하는 걸 잠시 보류시켰다.
아침에 창문을 여니 변함없이 깜냥이와 새끼 두 마리와 누렁이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여기가 내 집이요" 하면서... 삼색이와 아기깜냥이(이제 거의 어미덩치만 하다)는 벌써부터 마당을 휘젓고 있다. 앞정원 찔레장미 가시에 찔리지나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아기길냥이들은 통통하게 자라 마당을 헤집고 다닌다.
밥 달라고 아침부터 부지런을 떠는 생명들...
아침밥을 챙긴다. 속도 모르는 깜냥이는 커다란 덩치로 바짓가랑이에 등을 비빈다.
고양이가 애교 떠는 모습인진 몰라도 등도 비비고 손으로 등으로 살짝 만져도 하악거리진 않는다.
몇 달이 흐르다 보니 이젠 내가 제 어미라도 된 줄 아는지...
사실 녀석은 보리에게 상처를 입힌 줄도 모를지도 모른다.
보리가 달려가 녀석의 면전에다 으르렁거리고 짓어대니 녀석은 방어하느라 손을 휘두른 것이다.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이 자연이지만 잘 어울리는 종족이 있고 어울리기 힘든 종족도 있다.
봄이 되면 강아지들도 데크에서 놀기 때문에 길냥이들이 있는 것은 위험하다. 그래서 추운 겨울 동안만이라도... 붙잡고 있었던 마음도 보리눈의 상처로 인해 놓아져 버렸다.
실내에서 화목을 배워가며 사람과 어울려 사는 고양이나 강아지들에겐 적절한 타협이 형성될지도 모르나, 자유(自由)가 업(業)인 양, 사방 누비고 다녀야 적성이 풀리는 길냥이들에겐 언감생심이다.
어차피 찾아올 이별, 아니 해내야 할 이별,
2월이 지나 치우려 했지만 날도 많이 풀어진지라 이번주엔 치워버리겠다고 결심을 했다.
먼저 아기냥이들이 잘 숨는 데크아래를 막기로 했다.
데크밑에서 나갔는지도 분명치 않아 시간을 두고 몇 번이나 확인한 후 마실 나간 것 같아서 맘먹고 데크틈새를 막아버렸다. 혹시라도 싶어 발을 쿵쾅거리고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 프레쉬로도 비추면서 확인해 본다. 벽돌로 입구를 막아놓고 다른 틈새도 있는지 본다. 고양이는 조그만 틈새만 있어도 숨는 명수라서 어디로 다시 들어갈진 몰라도 입구는 막았으니 달리 들어갈 수 없기를 바랄 뿐이다. 나머지 하우스만 치워버리면 된다.
저를 돌봐주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만이라도 이해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적당한 거리를 지키면서 선을 넘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고양이의 매력을 아직도 나는 아직도 잘 모른다.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그러나 자기 새끼들, 가족에겐 얽매인다) 쌓아놓지도 않으며 그저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아가는 자유로운 영혼이기에...
온갖 것으로 채워진 삶을 살아야 하는 인간들에게 공허한 자유와 흘러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기에 고양이를 사랑하는 것일까...
지인과 산책을 다녀온 후 깜냥이가 나간 것을 확인하고 하우스를 정리했다.
지인의 강아지도 자주 놀러 오는지라 싹 치워버려야 한다고 나서서 하우스를 치워주었다.
추운 계절 잠시 쉬어갈 잠자리라도 제공해 주고 싶었고, 제집으로 알고 새끼들을 넣고 에미는 입구에서 가는 바람을 막아가며 지내는 것을 보며 마음이 흐뭇했던 것도 사실이다.
정말 길냥이를 위해서 그랬는지, 불쌍해서 그냥 보기 힘든 내 마음의 평안을 위해 보살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보살피다 보니 정이 들고, 하악질만 해대던 깜냥이도 등을 비비고 얼굴을 내어줄 정도로 마음을 여는 것을 보았다.
마음 한 구석으론 "아침저녁으로 찾아오면 밥은 주리라" 맘먹고 있는데, 지인은 어찌 알았는지 물그릇 밥그릇도 치우라 한다. 밥을 주면 또 온다고...
그래도 밥그릇 물그릇은 남겨두고 주변 정리를 했다.
"아침저녁으론 강아지들을 밖에 내놓지 않으니 밥 먹으러 와~~" "다시 올 겨울도 추우면 집 만들어 줄 테니 와도 돼 ~~"
저녁에 나가보니 아기깜냥이와 삼색이가 데크에 앉아 있었다. 밥을 주고 물을 떠다 놓았다.
두 녀석은 저녁을 먹고 잠자리를 찾아 떠난듯하다. 어미 깜냥이는 왔다 갔는지도 모르지만 무정한 인간의 속사정도 모른 채 없어진 집에 화들짝 놀라지나 않았을지 모르겠다.
2월이 다 가기 전에 매서운 추위가 다시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할지라도 마음 단속을 잘해야 한다.
길냥이들의 자립을 요구한 이상, 그저 밥을 주고 물을 주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안쓰런 마음을 가져선 안된다.
만물의 이치를 어찌 거를 수 있으랴...
오늘도 아침밥을 먹으러 온 세 아기냥이 녀석들은
"우리는 잘 지낼 테니 너무 염려 마시고 사람엄마 마음이나 잘 지켜가세요"
라고 하듯 아싹거리고 먹으며 나를 응시하고 있다.
집을 치워버린 휑한 구석에서는 이번주 내내 깜냥이를 만날 순 없었다.
고양이는 "쿨"하다고 했는데 아마도 녀석은 내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했는지 서운했나? 아님 정말 쿨하게 정을 뗀 것이기라도 한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