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아지가 아니라 고양이었더랬습니다.
사람엄마는 가끔씩 들렀던 나를 몰라라 하지 않고 밥도 챙겨주고 물도 챙겨주더니,
지난겨울 혹한에서는 화초를 보온하던 삼각비닐하우스로 집까지 만들어 주었습니다.
사람엄마는 나를 참 사랑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모처럼 편해진 안식처에 어린 자식 셋을 데리고 들어와 쉴 수 있었습니다.
사람엄마는 밥 줄 때마다 뭐라고 얘기도 하셨지만,
나는 그저 고맙다는 인사를 "하악~하악"하며 엄마의 다리에 등을 비비곤 했습니다.
나와 내 친구 누렁이도 햇살이 잘 드는 현관옆 뜰에 몸을 뉘이고
따사로운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등도 비벼 가며 쉽니다.
아기들은 햇살이 잘 드는 정원구석구석 뛰어다니며 놉니다.
잘 자라 줘, 고맙고 흐뭇한 엄마의 마음도 느껴보고 쉴 때면 강아지들의 짓는 소리는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러면 사람엄마가 뛰어나오십니다.
뭐라고 야단을 하시면서 손을 데크 쪽으로 휘젓습니다.
"너희는 이쪽으로 나오지 말고 여기서 놀아~"
"보리랑 승리 샐리가 흥분해서 짓잖아"
살짝 서운하긴 합니다.
아이들이 나대는 것은 본능이고,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고양이들의 본성이기도 한데...
사람엄마는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밥도 주고 물도 주고 가끔 간식도 주고 집도 해줬으면서 자유롭게 놀고 다니는 것은 왜 말라는 것인지...
사람엄마는 뭐라고 자꾸 말씀하십니다.
나는
사람엄마의 표정으로 읽을 뿐입니다.
"밥만 먹고 놀기는 나가서 놀아.. 어차피 봄 되면 청소하고 집도 치울 거니까..."
"데크 아래를 막아야겠어. 아기냥이들이 숨지 못하도록..."
그러다 얼마 전 결국 사달이 나고 말았습니다.
보리가 현관문틈으로 뛰쳐나와 제게 달려온 것입니다.
보리는 얼굴을 들이대고 짖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순간적으로 방어하려다 손을 휘둘렀습니다.
"왜 그래? 왜 그래?"
그저 막으려는 것뿐이었는데, "깨갱"하는 보리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달려왔던 사람엄마는 보리를 안고 내게 큰 소리를 쳤습니다.
"나한테 왜 그래~"
라고 한 것뿐이었는데... 아마도 내 손톱으로 상처가 생긴 모양입니다.
급하게 보리를 안고 나갔던 사람엄마가 돌아왔습니다.
큰 목소리로 뭐라고 하십니다.
"보리눈이 너 발톱 때문에 다쳤어!
큰일 날 뻔했단 말이야~~"
"병원에선 그만하길 다행이라 했지만,
어찌 그럴 수 있니?
먹여주고 재워주고 했는데..."
식구들이 화가 많이 난 듯합니다.
진작 내보냈어야 하는데 왜 불쌍하다고 그냥 뒀냐고...
마음 약한 사람엄마에게 뭐라는 것 같습니다.
보리에겐 다가가서 사과할 수 없습니다.
보리나 샐리는 우리 고양이와는 다른 종족입니다.
이 집에서 제일 작은,
치와와 승리까지 우리만 보면 짓어댑니다.
강아지들이 제 앞으로 오면
이상하게 저도 모르게 손부터 올라갑니다.
이제 날이 풀어지면 강아지들은 마당에 더 자주 나올 것입니다.
집도 만들어줘 아기들을 데리고 들어왔는데...
아무래도 나가야 할 때가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바깥에 나왔다 보니 집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지난주 보리사건 이후로 부쩍 예민해지신 것은 알았는데,
집까지 사라져 버릴 줄은 몰랐습니다.
보리가 병원에 다녀온 날도 그다음 날도 밥도 잘 주시고 챙겨주셨거든요.
야속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합니다.
집이 없어지고 나니, 다시 찾고 싶은 마음도 적어집니다.
하지만 사람엄마를 원망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봄이 곧 올 것입니다.
잘 자라 준 아기들은 동네를 자유롭게 휘젓고 다닙니다.
물론 걱정도 늘어나기는 했지요.
그래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고양이입니다.
그러니 다가오는 봄에는 더 활발하게 살려고 생각합니다.
"야옹~ 야옹~ 야옹~
사람엄마!
독립할 계절이 와서 나가는 것이니
너무 미안해하지 마세요!
보리언니!
뭐라 말해야 알아들을지 모르지만,
미안한 이 마음은 꼭 전해 주고 싶어요.
야옹~ 야옹~~ 야아옹~~~"
나는 고양이입니다.
원하는 곳 어디서나
풀풀한 자유를
집보다 밥보다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고양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