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창을 열면 눈을 똑바로 뜨고 "야옹" 인사하는 삼냥이 들입니다.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고양이라지만, 아무래도 인간은 길냥이들을 적당히 길들여놓고 만 것 같습니다. 사람엄마가 원했던 것은 아침 먹고 어디로든지 출근하여 하루를 보낸 뒤 저녁에 와서 차려준 저녁밥을 먹고 제집으로 가는 것이었지만 그건 사람엄마의 바람이었을 뿐입니다.
자유가 업(業)인데 집이라고 하나 뿐이겠습니까? 사람엄마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아침 먹고 데크에 느긋이 누워 따사로운 햇살아래 등을 비비기도 하고 지들끼리 "야옹"거리며 장난도 칩니다. 거기다 기분 좋으면 거실 앞 잔디에서 등을 비비며 놉니다. 깜냥이는 정원으로 내려가 마치 약이라도 올리듯 안에서 "왈왈" 거리며 흥분하는 세 마리의 강아지를 보면서 뒹굴기까지 합니다.
"나가라니까"
"아침 먹었으니 나가서 놀아야지"
사람엄마는 몇 번이나 들락거리며 녀석들을 내보내려 하지만, 강아지들 짓는 소리 나서 돌아보면 나갔던 삼냥이들은 어느새 마당 잔디에서 안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아무리 조용히 하라고 해도 강아지들에겐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과 함께 숨 쉬고 살아가는 강아지들은 사람을 닮기 마련입니다. 아니 제가 사람인 줄 알고 지키기 위해 애를 씁니다.
하지만 고양이들에게 집은 자유를 누리기 위한, 삶을 이어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합니다. 언제든지 버리고 바꿀 수도 있는 수단입니다. 천성을 어쩌겠습니까! 삼냥이들에게 우리 집은, 기억할진 몰라도 저들이 아기 때 엄마와의 추억이 담겨있는 곳이고,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밥도 먹을 수 있는 움직이는 집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나가서 놀아"라고 호령하는 사람엄마의 얘기도 장난스러움으로 받아들일지 모릅니다. 특히 깜냥이는 더 그럴 것입니다. 밥 먹을 때 "야옹"하고 인사하면 등도 쓰다듬어주고 목덜미도 긁어주어 때론 "골~골"소리까지 자연스럽게 나오는데, 뭐라 큰 소리를 하는 사람엄마의 행동은 이해되지 않습니다.
강아지들이 삼냥이가 지나다닐 때도 못 본척하면 좋겠습니다.
"배고픈 견생들이 우리 집에서 한 끼 먹고 가는구나 ~"
라고 느긋한 마음으로 봐준다면 좋겠습니다. 악수하며 인사하는 사이가 되진 않아도 "으르렁"거리는 사이는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당에서 만나도 반갑게 인사하지 않아도 고양이가 있는지 강아지가 쉬는지 상관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언감생심(焉敢生心)!"
바랄 것을 바라야 하는가요... 십 년 넘게 함께 한 보리의 천성도 못 바꾸는데... 한 해 겨울 돌봐온 삼냥이의 기질을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마당에서 놀 때도 셋은 나란히 함께 하며 엄마말씀에 순종하는 편이지만, 삼냥이들은 잔소리엔 아랑곳없이 제가 쉬고 누리고 싶을 때는 느긋하게 즐깁니다. 강아지와 고양이는 천성이 다른 개성이 다른, 변화시키기 힘든 존재인 듯합니다.
문제는 지금부터 늦가을까진 강아지들도 마당생활을 즐겨야 하는데, 삼냥이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려 아이들과 부딪히게 될 경우 혹여라도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점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어린싹들이 올라오고 구근들도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데, 삼냥이들이 정원을 헤집고 다니면서 흙을 파기도 해 정원을 흩트리는 것입니다. 라일락나무는 삼색이의 발톱훈련 장난감이 돼 버렸습니다. 온몸이 갈기갈기 긁히고 찢긴 몸을 보면 꽃이나 제대로 피울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긁고 있는 것을 보고 혼냈지만, 늘 지킬 수는 없는 법입니다. 낮에는 그렇다 치고 밤으로 들락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삼냥이들의 눈을 보면 알아듣는 것 같기도 한데, 행동을 고쳐지질 않습니다.
보리눈을 다친 후에는 강아지들 밖에 나갈 때는 더 철저히 확인합니다. 삼냥이들이 많이 컸고 올 여름되면 지금보다 훨씬 커질 것입니다. 덩치가 보리나 샐리보다 더 클 것 같습니다. 조심한다 쳐도 혹시나 하는 염려가 없어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식구들이 동물들을 워낙 좋아해 강아지는 강아지대로 사랑스럽고 길냥이들도 예뻐합니다. 하지만 강아지들과 고양이가 조금씩이라도 양보하지 않는다면... 지인의 말대로 밥을 그만 줘야 할지, 고민입니다.
이대로 밥집까지 문을 닫아야 할지... 밥집 문 닫는다고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삼냥이들의 출입이 통제될지, 마당이야 흩트린다 쳐도 강아지 삼 형제와 사이좋게 지낼 수만 있다면 그래도 안심하겠는데, 지금으로선 도무지 가망 없는 듯합니다. 길냥이들에게 제대로 된 식사를 주고 잘 지내게 해주고 싶은데 사람엄마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 아침도 삼냥이들은 "야옹"거리며 아침식사를 합니다.
어차피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입니다. 조금 손해 보듯 사는 것이 현명하게 사는 삶이라는 얘기를 늘 하면서도 "조금의 한계"에 부딪혀 양보하고 비우고 살기가 쉽지 않은 게 인생이기도 합니다. 마음의 짐을 덜어내기는 더욱 쉽지 않습니다. 마당의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적절한 양보와 손해를 보고 살기에 조화를 이루고 삽니다. 고양이와 강아지들도 서로 조금만 양보를 하면 좋겠지만, 어쩌면 이 아이들은 사람 곁에서 사람 닮고 살아온 아이들이라 양보에 어려움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너희에게 가는 안쓰러움도 욕심이라 생각하고 조금은 덜어내야 할 것 같구나..."
고양이언어를 배워야 할 무거운 숙제를 가슴으로 품어야 하는 햇살 좋은 봄날 아침입니다.
깜냥이를 보고 짖어대는 강아지들
삼색이가 발톱으로 긁어놓은 라일락나무 / 데크에서 낮잠을 즐기는 강아지들
깜냥이는 데크에서 여유롭게 낮잠을 즐긴다. 뻔뻔할 만치 자유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