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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Apr 10. 2023

가족의 근간은 무엇일까. 길냥이가족을 보면서...


 길냥이 가족의 단란한 한 때를 보고 있자니 동물세계에서도 '가족이라는 존재는 본능이구나' 싶다. 집안에개나 고양이를 키우더라도 미와 아비, 아기들을  다 거두긴 힘들다. 그래서 새로운 가족이 태어나도 대부분 분양으로 이별을 맞게 된다. 우리 집에 깃들인 길냥이 식구는 "정착"이라는 의무 없이 그저 만난 묘생들이 자연스럽게 한가족이 되었고 다행히 밥을 거둬주는 집을 만났기에, 얼마간이라도 가족이 함께 사는 것이 가능했을지 모른다.


가족의 근간(根幹)은 무엇일까? 방대하고 거창한 주제지만 사실, 제일 소중하고 알아야 하며 곁에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가족관계에 대해선 누구라도 뭐라 단정 지을 순 없다. 구성원이 다양하고 삶의 방식도 다르며 각각의 가정마다 사연을 품고 살아가는, 작지만 가장 원초적인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구성체이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 세상은 1인 가족도 많고, 가족이라는 정의자체가 더 다양해지긴 했지만 아무튼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것이 "가족"이라는 사회다.


깜냥이는 배 깔고 햇살을 즐기며 누렁이는 뛰어노는 새끼들을 보호라도 하듯 앉아서 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다. 동물들에게도 자식에 대한 애정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아기냥이 세 마리는 개성이 있다. 깜냥이 2세는 어디든 쑤시고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먹는 것도 제일 많이 먹는지 살도 많이 올랐다. 하악질을 하는 것이나 거실앞쪽의 정원에서 따뜻한 햇살을 쬐며 늘어져 있기를 좋아하는 모습도 제어미를 닮았다. 까만 콧수염을 달고 다니는 콧선생은 비교적 얌전해 보이지만 나를 봐도 잘 피하지 않는 것이 제법 용감하다. 제일 예쁘게 생긴 삼색이는 소심하고 까칠하지만 성깔은 있어 먹는 것도 밀리지 않게 잘 먹는다.

개성이 다양한 길냥이 가족을 보면서 느낀 몇 가지를 적어 본다.

사랑은 본능적인 책임감과 더불어 내리사랑이다.

누렁이는 확실히 아비답다. 나는 고양이를 잘 모르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길냥이들 밥을 주면서 고양이를 예뻐하게 되고 나름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아비는 자식들이 먹을 때 먹지 않고 양보하고 있다. 밥도 물도 새끼들과 마누라가 먹고 난 후에 먹는다. 배고프면 현관 앞에 앉아 기다린다. 밥을 주면 새끼들과 깜냥이는 본능적으로 또 달려든다. 그러면 누렁이는 먹지 않고 쳐다본다. 제 새끼들이, 제 가족이 먹는 것을 보기만 해도 배 부르다는 것은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얘기가 아니었음을 누렁이를 통해 배운다. 암컷이 하우스 안에 들어가 있으면은 그 문 앞에 앉아서 보호하고 있다. 미도 새끼들을 끔찍이 아끼고 보호한다. 바람이 덜 들어오는 안쪽은 새끼들 자리고, 바람이 들락거리는 비닐 문 앞에 어미깜냥이가 앉아 있다.

자주 함께 한다. 현재를 함께 나눈다.

햇살이 좋은 날엔 온 마당이 저희들 놀이터다. 노란 잔디를 온몸에 묻히고 강아지들이 짓어도 정원과 돌틈 사이로 헤집고 다닌다. 낮은 장미가시에 찔리지나 않을지 걱정될 정도다. 제 집 옆에 있는 라일락나무는 발톱훈련용으로 긁었는지 상처투성이다. '나가서 놀아'라고 야단을 쳐도 꿈쩍 않다가 한 번씩 나가면 하룻밤도 안 들어올 때가 있다. 그래도 새끼들을 데리고 다닌다. 밥을 먹은 후엔 다섯 마리가 같이 논다. 어쩌면 올봄에 다 성장해 각자 따로 다닐진 몰라도 가족이란 걸 아는 듯 늘 함께 하는 편이다. 삼냥이들은 배를 채운 후 데크에서 논다. 길냥이사랑을 받고 있는 집냥이던 간에 고양이의 본능은 순간순간을 즐기는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즐겁게 지내고 있다. 솔방울을 굴려가며 아주 귀엽게 논다. 강아지들이 안에서 난리를 치는데도, 이 아이들은 얻어먹는 신세인지 또 나가야 될 신세일지도 모르지만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기들의 본능에 충실하다.

그들만의 행동으로 늘 대화한다.

비와 어미 고양이는 서로 툭툭 건드리며 장난을 잘 친다. 사람으로 치면 뭐라 말을 주고받는 것 아닐까? 

가끔씩 비가 새끼를 누르는 듯한 시늉도 한다. 그러면 새끼는 뭐라 야옹거린다. 아마 생존을 위한 가르침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도로 발전한 첨단 기술덕에 인간은 혼자서도 심심치 않다. 손 안의 컴퓨터는 친구고 이웃이며 가족이고 자신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오히려 '불멍' '물멍' '잔디멍'등 잠시라도 비운, '멍' 한 상태를 가져야 한다고 권장? 하는 시대기도 하다. 모든 것이 채워지고 넘쳐나고 모자람이 없으니 요구할 것도 없다. 그러니 굳이 말할 필요성도 못 느끼는지 모른다. 21세기 가족의 문제점으로 화두에 오른 '대화의 단절'이다. 대화가 드문 인간 가족들을 향해 길냥이 가족들은 '야옹~야아 옹'의 의사전달 방식의 한계를 아는지 몸을 구르며 행동으로 서로를 교감하고 있다.

난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다.

 

길냥이들도 더 자라면 어디론가 다 자기 길로 갈 것이다( 이건 나의 착각에 불과했다. 삼냥이들은 지금까지 아침저녁으로 출근해 밥을 먹고 가고 있다). 어쩌면 이 아이들의 활동 반경 범위는 우리 동네에 불과하겠지만 아무튼 길냥이 아비, 어미는 아이들이 충분히 자라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각각의 특성에 맞춰 놀아주고 야단도 치는 듯하다. 어떤 때는 누렁이가 한 놈씩 데리고 나가 며칠 동안 들어오지 않은 때도 있었다. 얌전한 아이도 있고, 잠시를 쉬지 않고 저지리를 하는 깜냥이 같은 아이도 있다. 상관하지 않는 것인지, 개성을 존중하는 것인지(가끔씩 에비가 목을 누르는 것을 보긴 했다) 제 성정대로 날아다니도록 놔둔다.

사람 사는 집에서 얻어먹고 다니려면 때론 사람비위도 맞춰야 하건만 자유를 맛보고 누릴 줄 아는 즐거움을 태생 때부터 몸에 배도록 전수받은 탓인지 '싫으면 밥 주지 마세요'라며 제 아비어미도 인정해 준 성정을 버리지 않겠다고 할 것 같다.


얼마 전 영국의 한 동물원에서 늑대무리의 우두머리가 죽자 남은 무리들을 결국 안락사시켰다는 얘기를 들었다. 늑대의 가족관계는 유명하다. 늑대는 평생을 일부일처제로 살며 한쪽이 죽어 혹 재혼하더라도 있던 새끼들을 부양한다. 수컷은 사냥을 담당하고 암컷은 육아를 담당하며 형제간의 서열이나 협력관계도 인간사회와 비슷하다 할 정도로 동물세계에선 독특하고 끈끈한 가족관계로 이어져 있다. 그러니 우두머리가 죽은 후 남은 늑대들이 이상행동을 보여 전문가들과 의논하고 고심 끝에 안락사를 시켰다고 하지만, 여기저기서 동물학대라며 반대의견이 분분하다. 늑대가족은 오직 하나로 뭉쳤었기에 가족을 위해 가족을 몰살시킨 것이다. 물론 길냥이의 가족 사회를 늑대 사회와 비유하긴 어렵겠지만, 길거리를 떠돌아야 하는 운명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 환경에 적응해 가며, 새끼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제 가족들을 이해와 사랑으로 지켜냈기에 오늘날까지도 길냥이가 생존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길냥이 아비 에미가 자식교육은 확실하게 시켰다는 것매일 보고 지낸다. 2월에 길냥이 하우스를 치워버린 후, 어미와 아비는 가끔씩 얼굴 비치러 올 때 있지만 발을 끓었다.

그래도 삼냥이들은 아침저녁으로 사이좋게 밥 먹으러 온다. 셋이 한 뱃속에서 같이 자라고 태어난 형제라는 것을 잊지 않함께 다니는 것 같아 기특하다.

깜냥이는 아예 우리 집 고양이가 된 것처럼, 콧선생과 삼색이가 나가도 한 참을 놀다가 가곤 한다. 좋다고 비비고 오니 만져주고 예뻐해 주지 않을 수 없다. 길냥이로써 떠돌며 살아야 하는 험난한 세상살이에 어떻게 적응하고 살아가야 할지를 어미와 아비에게 확실히 배운 것 같긴 하다.

"가족은 화목하고 서로 배려하며, 함께 하는 거란다..."

"그리고 기다려 줘야 해..."

바람처럼 자유로운 묘생을 택한 삼냥이는 한 끼 밥 제공하는 밥집 엄마에게도, 배운 대로 감사 인사를 잊지 않고 오늘도 "야아 옹"거리며 마당을 훑고 다닌다.



작년겨울 길냥이 가족들이 따뜻한 한 때를 즐기고 있다

에비 누렁이와 새끼 깜냥이의 다정한 모습


아기 길냥이 삼 남매가 훌쩍 컸다. 비 온 다음날 아침 창문을 여니 세 녀석이 밥 달라며 "까르르 냐옹" 아침 인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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