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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Apr 09. 2021

스마트폰으로 쓴 스페인 기행기 2

세비야 (세비야 대성당)



2012.08.28. 

아침 7시 15분 세비아로 향한다. 스페인도 여느 유럽 유명 관광지처럼 소매치기 천국이라, 소지품을 조심해야 한다고, 가이드는 가는 곳마다 얘기한다. 세비야는 나지막한 평원의 구릉지대이고, 세빌리아로 불리기도 하며(우리에게 잘 알려진 롯시니의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배경지이기도 하다), 스페인의 남서부에 위치하고 있는,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다음으로 큰 대도시로 열정이 넘치는 축제의 도시로 통한다.  또한 중세 항해 시절에 많은 탐험가들이 왕래했던 곳으로 콜럼버스의 대항해 출발지이기도 하며, 이곳 세비야 대성당에 그의 묘가 있다. 세비야 대성당은 로마의 베드로 대성당, 영국의 세인트 폴 성당과 함께 세계 3대 성당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세비야 대성당은, 1248년 세비야가 기독교에 함락되면서 이슬람 사원 (알 마하 회교사원)을 교회로 사용해 왔으나, 점차 붕괴되면서, 1402년부터 다시 짓기 시작해 118년 만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지금 대성당에는 이슬람 왕조 전성기에 세운 모스크 양식의 히랄라 탑 일부만 남아있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성당과 모스크의 일부가 세월이라는 힘으로 조화롭게 유지되고 있는 모습은,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류의 역사엔, 적도 아군도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남겨진 문화유산을 통해서, 결국은 “함께”라는 “사랑의 계명(어느 신앙을 가졌든 간에)” 만, 남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하다. 20세기 위대한 역사학자 토인비의 말대로 인류의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다. 오늘날까지 존재하는 역사는 도전(Challenge)에서 응전(Response)한 민족들의 행보가 아닐까 싶다. 내게 주어진 오늘의 "여행"이라는 도전을 얼마나 멋지게 응전하여 내 것으로 느끼고 담을 것인가를 생각하며, 세비야로 향한다.


유럽은 대륙으로 이어져 있어, 단체 여행을 할 때는 주로 버스로 이동한다.  몇 시간씩 이동하는 피로감을 견뎌야 하기 때문에, 가이드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이번 여행 가이드도 상당히 박식한 분으로 긴 버스여행 내내 재밌게 설명을 해 주셨다.  버스 안에서 포르투갈의 국민가수 “아말리아 호드리게스”가 부르는  파두를 틀어주며, 포르투갈의 국민 노래 파두에 대한 얘기를 풀어놓았다. 파두는 19세기 초 리스본에서부터 유행한 포르투갈의 전통음악으로, 주된 정서는 사우다드(saudade)로 우리나라의 “한” 과 같다고 나 할까,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그리움과 외로움의 숙명과 운명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항상 검은 옷을 입고, 무반주로 파두를 불렀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파두 여성 싱어들은”제2의 아밀리아 호르리게스”로 부르는 것을 최상의 영예로 여긴다고 한다.  파두를 계속 듣다 보니, 뭔가 마음에 와 닿고, 친근감마저 든다. 검은 옷을 입을 수밖에 없었던,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를 떠난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한의 노래”라 그런 가. 포르투갈의 독재자 살리아르가 자신을 인정해 준(?) 국민들을 위해 (어쩌면 국민들의 정치적인 관심을 딴 데로 돌리기 위해) 조성한 것 세 가지가 축구, 종교 (파티마 성당에서…) 그리고 파두라고 한다. 국민들의 분노와 슬픔을 파두로 풀도록 유도한 것이라고 한다. 아무튼 우리나라에 아리랑이 있듯이, 스페인에는 플라맹고가 있고, 포르투갈에는 파두가 있었다.


가이드의 재밌는 역사이야기를 손가락으로 열심히 두드리다가, "아차" 하는 순간에 내용이 날아갔다. 손가락을 잘못 눌렀다. 손가락으로 필기하는 문명의 이기를 누릴 줄만 알았지, 그 이기를 조금이라도 잘못 다룰 경우,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는 생각 치 못하고 두드린 감성적인 인간이 겪은 아쉬운 실수였다. 주의해야겠다. 


가이드가 콜럼버스의 대탐험에 대한 이야기를 두어 시간 한 것 같다. 말하는 대로 다 받아 적진 못해서, 보충해 본다. 스페인 역사에 대해 재밌게 서술한 책들이 많다. 나도 여행 전에 상식으로 한 권 읽고 왔다. 이번 여행에서 스페인 역사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기는 어렵지만, 스페인과 이슬람과의 관계는 여행하는 곳곳에서 많이 연관되므로 잠깐 찾아본다. 아프리카 북부에 살던 이슬람교도인 무어인 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침략하여 가톨릭 교도들은 반도 위쪽 산악지대까지 쫓겨난다.  그 후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 왕국의 이세벨 1세가 결혼해, 이베리아 반도 내 있던 가톨릭 왕국들이 힘을 합쳐서 이교도 이슬람을 축출하고 가톨릭을 통해 스페인을 재통일 시키기 시작한 것을 레콩키스타(Reconquista / 711~1492년 국토회복운동 )라고 한다. 레콩키스타는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의 정복으로 완성된다. 알려진 대로 이세벨 여왕은 콜럼버스를 통해 신대륙 탐험 등 국토확장정책을 펼친다. 

   

콜럼버스는 이탈리아 제노바 사람으로 포르투갈 리스본에 먼저 정착했다. 대항해의 꿈을 가지고, 포르투갈과 스페인 왕실에 제안을 했지만, 포르투갈에는 이미 인도항로를 발견한 위대한 탐험자가 있었다. 포르투갈 황실에서, 외면당한 콜럼버스는 스페인의 이세벨 여왕에게 항해에 대한 원조를 요청했다.  스페인은 열정적으로 대탐험 항해지원을 한다. 그 당시 유럽에선 아메리카 대륙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대서양은 험해서 건너가기 힘들었다. 그는 미개한 신천지에 기독교를 전파하겠노라는 원대한 꿈을 말하지만 사실은 돈과 권력을 위해 떠났다고도 한다.  산타마리아호와 두 척의 배를 지원받아 1492년도에 출항한다. 긴 항해에 지친 선원들은 배에서 폭동을 일으키고, 콜럼버스는 삼일 더 가서 육지 나오지 않으면 회항하겠다고 선원들을 회유하여 계속 항해를 한다. 


하늘이 도운 것일까, 운 좋게도 3일 만에 바하마 제도를 발견하게 된다.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 울 산 대륙으로 인식 못하고, 인도로 알아, 아메리카 원주인에게 인디언이란 이름을 주었다고 한다.  명예와 부를 얻은 콜럼버스는 4차 원정까지 나갔지만, 지원해주던  이사벨 여왕이 죽은 후에는 쓸쓸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는 사후에 둘째 아들 때문에 세비야 대성당에 안치되고, 스페인 고대의 네 왕이 그의 관을 메고 있는 석관 안에 안치되었다. 스페인땅을 다시는 밟지 않겠다는 콜럼버스의 말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자기 나라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그의 업적을 기리는, 옛 스페인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콜럼버스의 업적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그가 위대하게 평가받는 것은 새로운 대륙을 발견한 것 못지않게, 먼저 생각하고 시도를 했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았던 그 시절에 무모할지도 모르지만, 꿈을 가지고 도전했다는 점이다. 계란을 깨서 바위 위에 세운 이야기가 전해 주는 교훈처럼, 생각하고 알고 있었던 것도 실행에 옮겨지지 못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 많은 사람들에 비해, 그의 용기가 단연 돋보인다. 


요즘 주식이 오르는 것을 보면서, 주변에서 "나도 사둘 걸" 하며, 후회하는 것을 본다. 그러나 오를 땐 또 떨어질지 몰라서 불안했고, 마침 그때 돈이 없어 못 사기도 했고, 못 산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는 법, 손해를 볼 각오를 가지고도, 이익을 위해 뛰어든 자들만이 오를 때도 벌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용감한 자 먼저 취하리라” 한 명언은 역사에만 존재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다른 사람 말할 것 없이 나부터라도 계획한 것을 행동에 옮기는 실행가가 되어야겠단 다짐을 해본다. 세비야 대성당에는 히랄다탑과 은의 제단, 많은 귀중한 성물들이 있었고 볼거리도 많지만, 콜럼버스의 묘를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둘 수 있었다.


 네 왕이 받치고 있는 콜럼버스의 석관  / 히랄다 탑         

세비야 대성당 은의 제단


세비아는 아름답고 볼거리가 많아 걷고 또 걸어도 지겹지 않다. 오후에는 마리아 루이사 공원을 찾았다. 원래 마리아 루이사 공원은 산텔모 궁전이었는데, 마리아 루이사 공주가 세비야에 기부하면서 시민들을 위한 아름다운 공원으로 재 조성된 곳이다. 공원 이름은 기부한 공주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스페인 광장은 지금은 시청사로 사용하고 있는 궁전 앞을 1929년 스페인 아메리카 박람회를 위해, 세비야의 건축가 아니발 곤잘레스가 만든 반원형의 아름다운 대리석 광장이다. 정원과 분수, 통일 이전의 4개 스페인 왕국을 상징하는 다리 등을 만들어, 세비야의 사랑받는 휴식처로 만들었다. 


숲과 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정원은 시민들의 휴식처이기도 하지만, 우리 같은 여행자들이 들러 쉴 수 있는 멋진 곳이기도 했다. 꽃이 많고 공원도 정말 예뻤지만, 계단에 앉아서 기타 연주하면서 노래 부르던 아저씨가 인상적이었다. 뜨겁고 파란 햇살이 내려 쬐는 하늘 아래  아름다운 건물에서 어떤 사연을 가지고 왔는지도 모를 사람들,  웃으며 사진 찍는 그들의 이야기와 잘 어울리는 음악도 아주 좋았다. 노래를 들으며 가볍지 않은 흥을 함께 느끼면서, 어제오늘 중의 일정에서 제일 좋았던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모처럼 이게 휴가인가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 머물 곳은 호텔 Andalusi Park Sevilla 수영장도 있는 좋은 호텔이다. 여기는 해가 아주 늦게 진다. 저녁 뷔페 식사에서 수박과 멜론이 너무 맛있었다. 이 호텔 이후부터는 과일이 적고, 먹을 것이 약하다고, 많이 먹어 두라는, 가이드 말대로 실컷 먹었다. 정말 다음 여행지부터는 이렇게 맛있는 과일을 못 먹었다. 

그래서 더욱 잊을 수 없는 맛있는 수박과 멜론이었다. 지금 8:11분인데도 우리나라 오후 다섯 시 정도 느낌이다. 호텔 정문을 바라보며 해는 조금씩 고개를 떨군다. 이 호텔은 서향으로 지은 건데, 신기하게 남향 느낌이 든다. 해가 잘 들어서 인지...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공원에서 누렸던 따뜻한 즐거움을 떠올리며, 스케치 한 점 긁적인 후, 지친 몸을 뉘어본다. 


로시니의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배경이 되었던 로지나의 집 베란다 / 거리의 악사  

 우리가 머물던 호텔, 수박과 멜론이 정말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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