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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Sep 03. 2024

겸손송에게

겸손송謙遜에게


수그려져 고개조차 제대로 들지 못했던 네가 눈에 밟혔다. 

들여올 때부터 안쓰러웠지만 기특하게도 몇 해가 지나도록 그 모습을 잃지 않았다.

구부러진 몸뚱이에 하늘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달랑 얼굴 하나로, 나에게 왔다.

그래도 너는 진실한 소나무였어라,

봄이면 울긋불긋 화려한 얼굴 돋보이는 꽃나무속에서도

배롱나무의 진분홍 꽃잎이 펼쳐지는 더운 여름철에도

유월부터 초가을까지 향기 날리며 피고 지는

장미들 속에서도

파아란 옷 입고 시작한 한 해를 붉게 단장하고 마무리하는 청단풍에게도,

사시사철 푸르게

존재의 의연함을 잃지 않았고

함께 뿌리 속에 붙어 곁다리로 왔던 나리까지 보살피며

한결같은 푸르름으로 고고하게 제자리를 지켜왔다.

겨울이면 몸뚱이보다 무거운 눈이 입혀준 옷으로 고개는 더 젖혀지고 

혹여 목대라도 부러지지 않을까 염려하는 마당지기의 근심을 알아주기라도 하듯

하얀 눈옷 사이를 비집고 나온 푸르른 육신은 당당하기까지 했다.

고마운 너를 보며

겸손은 언제까지라도 계속되어야 함을 배운다.

주변의 온갖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의지와 실천으로

유독 더웠던 올여름에도 고귀한 푸르름 잊지 않고

잎이 타들어가는 고통 속의 친구들까지 보듬은

가슴 따뜻한 너는,

오늘 아침 빗방울에 오랜만에 촉촉해진 얼굴로

어느새 흠뻑 자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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