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하면서도 단호한 눈빛은 "나는 지지 않을고야! 먹고 싶은 것은 기어코 먹고 말고야 ~~"한 톨 한 톨 골라가며 입맛에 맞는 것은 먹고 아닌 건 옆으로 뱉어낸다.
"어이구~~ 제발 그냥 먹어~~"
몇 주 전부터 보리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두 달 정도 전, 즐겁게 산책한 후 갑자기 저녁부터 열이 올라, 몸이 뜨거워졌다. 다음날 병원에 데려가니 몸에 염증이 있을 수 있다며 주사를 네 대나 맞고 약을 3일 치 지어줬다. 사흘동안 약을 먹어도 열이 잘 내리지 않아 다시 병원에 가 진료하고 일주일치 약을 지어 왔다. 선생님이 이 약 먹고도 낫지 않으면 큰 병원으로 가서 종합 검사를 해보라 셨다.
다행히 악을 다 먹기 전에 열이 내렸다. 약 먹을 동안 보조영양식에 비벼줬더니 그렇잖아도 고기 좋아하는 보리는 고기맛에 길들여 버린 듯했다. 그럭저럭 건강을 회복하나 싶었는데 물을 많이 먹기 시작했고 3주 전부터는 아예 밥을 먹으려 하지 않았다. 걱정이 돼 사흘이 넘기 전에 서둘러 서울로 올라갔다.
강아지 세 마리를 데리고 이동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보리와 승리는 타는 것에 익숙해 잘 있는 편이지만, 샐리는 너무도 힘들어한다. 케이지에 넣어 담요로 가리고 달래 가며 가는데 차에 타 내릴 때까지 흥분하면서 박박 긁어댄다. 그래서 샐리를 차로 이동하는 일은 되도록 하지 않는 편이지만 다들 노견이라 검사도 할 겸 이번엔 데리고 올라갔다.
다니던 병원에서 좋합검사를 했는데 보리의 염증수치와 간수치가 정상보다 높게 나왔다고 했다. 간과 담낭 초음파검사는 이상이 없었다. 염려했던 췌장도 괜찮다고 하시면서 반나절 입원해 수액 맞고 하루 약 먹은 후 내일 다시 검사하자고 하셨다. 그리고 보리 x-ray 검사 결과 허리가 약간 굽어 아플 수 있다고 한다. 워낙 소심한 아이라 눈치 보느라 구부정한가 했더니 허리뼈 사진을 보니 몇 번 몇 번 요추가 약간 굽어있었다.
샐리는 봄보다 심장소리가 탁해졌다며 너무 흥분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했다. 기침 경험상으로 미리 심장건강 보조제를 먹이고 있지만 워낙 흥분 잘하고 날뛰는 푸들이라 염려했는데 역시 주의사항이 나왔다.
다행히 다음날 염증수치가 많이 내려가 정상 수치로 되었지만 먼 걸음 했으니 며칠 경과를 보자고 해 약을 먹이고 사흘 후 검사를 했더니 지극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승리는 엉덩이에 조그만 혹 같은 것이 있어 검사했는데 양성인 것 같다고 두고 보자고 하셨다. 노견들이지만 큰 이상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간약은 2주 정도 먹어야 한다고 해, 염증약 3일 분과 간약 2주 치를 지어 내려왔다. 평소에 아이들을 잘 돌본다 해도 이렇게 한두 번씩 병원에 오게 되면 큰돈을 쓰게 된다. 이번에도 검사하고 약 짓고 영양제 사는데 많이 들었다. 사람 며칠 입원한 비용보다 훨씬 더 든다. 보험도 되지 않으니... 그래도 할인해 주셔서 고마웠다. 십 년을 훌쩍 넘도록 온전히 우리만 바라보고 사랑으로 충실하게 곁에 있어 온 가족이다. 좋은 옷도 멋진 미용도 안 시키지만 건강엔 소홀할 수 없다.
"그래! 아깝지 않다. 우리가 덜 쓰면 되지... 건강하게 오래오래 곁에 있어다오 ~~"
병원은 잘 다녀왔지만 문제는 아침저녁 식사, 먹는 것이었다.
염증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온 후에는 이전보다 활달하고 밥도 먹으려 했다. 그런데 맛있는, 제 입맛에 맞는 밥이라야 잘 먹는다는 것이다.
십 년 이상 사람과 살아온 아이들은 서로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 보리는 밥을 잘 안 먹어야 맛있는 것을 섞어준다는 나쁜진리를 이미 터득했던 것이다.
컨디션은 좀 나아졌지만, 이전보다 보양식(강아지에게 좋은 식품들로 만들었다는...)을 많이 먹다 보니 입맛이 까다로워졌다. 샐리나 승리는 워낙 식탐이 많아 무엇이던 잘 먹고 늘 더 달라 하지만, 보리는 원래도 고기를 좋아하고 입맛이 까다로운 편이었다.
맛있는 고기와 약을 비벼준 부분을 일차로 먹고 나면, 맡겨놓은 물건 돌려달라듯이 나를 쳐다본다.
"고기 더 비벼줘야죠?"
"보리야 ~ 여기도 고기로 비벼진 거잖니? 먹어야지 ~"
몇 번을 달래다가 다시 고기를 조금 넣어 비벼준다. 용케도 고기 많이 뭍은 밥만 먹고는 다시 쳐다본다.
밥 먹을 때마다 몇 번씩 반복하니 점점 화가 난다. 보리가 아무래도 나의 의지력을 시험하나 보다.
"아니! 밀당도 정도껏 해야지? 며칠 째니?"
어리석은 인간은 빤히 쳐다보는 강아지를 보면서 화를 낸다. 제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이다.
이런 상태면 배고플 때 먹겠지 하는 심정으로 안 먹어도 그냥 둬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다. 강아지를 오래 키워 아이들의 습성을 잘 알기에 며칠 굶겨볼까 생각하다가도 3.2kg 연약한 아이라 어떤 방법을 써서 라도 먹이려고 한다. 그런 마음까지 간파했는지 한 번씩 질 먹는다. 샐리와 승리는 2~3분도 안 걸려 식사를 마친다. 제 식사 끝내고 곁에 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본다. 보리가 고기만 골라 먹고 뱉은 밥을 벌써 주워 먹는다. 이번에 샐리는 300g 정도 몸무게를 빼야 한다는 주의도 받았고 승리는 워낙 작은 아이니 조심해야 한다. 뭐든 먹고 싶은 대로 주는 것이 뭐가 어려울까마는 먹는 대로 살이 찌니 조절할 수 밖엔 없다.
"먹지 마 너희는 다 먹었잖아 ~"
밥그릇을 뺏아 올려놓고 다시 고기를 조금 섞어 들이민다. 또 골라먹고 ~~ 반복이다.
오늘 저녁엔 약 먼저 먹인 후 밥은 안 먹으면 그냥 뺏아버려야지 결심하면서도 막상 그 여린 몸에 밥이라도 제대로 안 먹으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또 고기를 비벼준다.
"그래! 13년 이상을 살았으니 사람으로 치면 어르신이지... 그래도 너는 항상 아기야 엄마가 돌봐줘야 하는 아가~"
우리 아이들은 자라 제 길을 찾아 떠나지만, 강아지들은 늙어 떠날 때까지 품 안의 자식이다.
그러니 사랑으로 보살피고 품에 안을 수밖에 없다.
"보리야! 제발 오늘 저녁부터는 밥 잘 먹자 그래야 건강하게 산책도 잘하지 ~~"
언제나 밀당견(犬에) 지고 마는 것은 밀당인(人)이다.
애당초 사랑해서 품에 안은 책임은 밀당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늙어 추레해지고 약해져 가는 사랑이라고 팽개칠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