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를 탈 때마다 부족한 글을 한 편씩 쓰게 된다. 유로스타는 아니지만, ktx를 탈 때마다 먼 곳에서 기차 여행 했던 추억을 펼치며 나름의 여행을 즐겼기 때문이다.
떠오르지 않는 시상은 남겨둔 채, 복잡한 일상들은 날려 보내며 오늘도 ktx를 타고 간다.
이른 아침 ktx안에선 열차 한량을 전세라도 낸 듯한 어르신이 큰 목소리로 전화를 하고 있다. 요즘 줄긴 했어도 간혹 지하철이나 버스, 기차 안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불편은 아랑곳없이 본인 취향대로 행동하는 분들이 있다. 대표적인 행동이 전화 통화가 아닐까 싶다. 자신의 얘기를 펼쳐놓는 것은 보통사람들이라면 좋아하지 않을 행동인데, 오히려 즐기기라도 하듯 세세하게 큰 소리로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아무도 사고 싶어 하지 않을 물건들로 가득 찬 보따리를...
모두들 반기지 않는 표정이지만, 그냥 참고 넘긴다. "대충 그러려니~~" 하고, 이해하고 마는 우리의 공중도덕 현실이다. 개인적으론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려 산다는 어느 나라의 국민성, 도덕성을 존중하는 편이다.
오늘 아침 ktx 안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어느 어르신의 호기로 이해하기엔 너무 크다. 아침나절 조용히 여행을 즐기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나직한 꿈을 짓밟는 행위로 보인다. 모난 품성의 나는 잠시 일어나 뒤를 두리번거려 본다. 우연찮게 어느 어르신과 눈이 마주쳐버렸다. 그분인 것 같았다. 나도 놀라 즉시 앉았고, 잠시 후 기차 안은 조용해졌다.
역시 나는 성질 고약한 인간인가 보다. 어쩌면 대충 너그럽게 넘어갈 수 있을 일들 ~ 물론 평소엔 "그럴 수도 있지~"하며 잘 넘어가고, 의식조차 못할 때도 많은데... 하지만 기차여행은 조용히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오늘은 승리를 데리러 간다. 승리 오른쪽 허벅지에 이태 전에 작은 혹이 생겼다. 매끈하고 말랑거려 병원에서도 나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며 두고 보자 했는데 몇 달 전부터 부쩍 커졌다. 여러 해 전부터 왼쪽다리 관절이 안 좋아, 아이가 작고 노견이라 수술은 위험하니 관절영양제로 보호해 주는 것이 좋다고 해 고가(?)의 영양제를 계속 먹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나마 오른쪽 다리로 지탱하고 있는데, 아파하진 않았지만 커져서 아이를 괴롭히고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 다니던 병원에 사진을 찍어 보내고, 주말에 가족 편으로 올려 보냈다.
다행히 어제 수술을 잘했고, 혹을 떼어냈다. 노견이라 전신마취는 어렵고(심장도 안 좋다), 국소마취를 했는데 승리가 잘 견뎌주었다고 했다. 병원에서 하루 치료하고, 데려오기 위해 올라가는 것이다.
노견을 볼보는 것은 여러 면으로 힘든 일이 많다. 경제적인 면도 무시할 수 없다. 그래도 지내온 세월에 함께 했던 사랑이 있기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승리는 좀 힘들 수 있겠지만, ktx덕에 품에 안고 편안하게 (운전하지 않으니...) 올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기차 안에선 아이가 보이지 않도록 잘 감싸야한다. 내가 좋아하는 만큼 좋아하지 않는 그 누군가도 있을 수 있으니...
ktx는 분명 무생물이지만, ktx는 생명이기도 하다. 함께하는 사람들의 수만 가지 사연에 공감하며 동참하기 때문이다. 오늘 승리와 함께 하는 ktx는, 소중한 인연을 회복시켜 주고 사랑으로 품어주며 안락한 가정으로 실어오는, 요즘 현란한 AI 이전부터 있어 왔던 감성 깊은 AI 열차일지도 모른다.
자고 있는 승리, 안심한 듯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