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
물방울
사람마다
가슴 깊은 곳에
작은 샘 하나쯤은 숨겨 두고 산다.
눈물은 흘려도 남고
참아도 남아
마르지 못한 물기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안과 밖이 서로 등 돌릴 때
그 틈을 메우는 것은
늘 보잘것없는 것들이었다.
멈춰 선 눈물도
스며야 할 곳으로 스미고
흘러야 할 곳으로 흘러가며,
늘 그래 왔듯
금방 말라 사라질 줄 알았던
그 작은 점들이
지워져야 마땅할 흔적이,
조용히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바다는
멀리 있지만
언제나 물방울 안에 있었다.
혼자 울 때는
마냥 외로웠던 눈물도
그 바다에서 다시 만나면,
너도 그랬구나.
떨어질 때,
혼신을 다해 투명해져서
한 번쯤은
마른 마음을 적시는 일로
이 세상에 왔구나.
겨울비가 다녀간 뒤,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들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맑지만 알 수 없는 애잔한 마음으로 바라보던 물방울 위로
화가 김창열의 화폭이 겹쳐 떠올랐다.
평생을 물방울 하나에 매달려 그림을 그렸던 사람.
그의 물방울은 더 이상 단순한 사물이 아니었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과, 그것을 지우고 싶어 하는 마음 사이에 위태롭게 놓인
투명한 눈물 알갱이처럼 보였다.
그가 겪었을 전쟁의 참상, 삶의 바닥까지 데려갔을 수많은 상실과 트라우마들이
물방울마다 알알이 스며 있는 듯했다.
물방울을 집요하게 그리는 행위는 고통을 되새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서서히 지워내는 의식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은 머물지 않는다.
잠시 모였다가 어느 순간 증발하여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허공으로 돌아간다.
그에게 물방울은 붙들고 싶은 집착을 흘려보내어
마침내 ‘무(無)’로 돌아가는 과정이었으리라.
그래서였을까?
화폭 위 물방울들은 한 점의 물이 아니라, 상처를 꿰뚫고 지나가 고요한 치유를 전하는
투명한 거울처럼 보였다.
삶의 마디마다 상처 위에 맺혔다 사라지는 셀 수 없는 눈물들을 모두 기억한다면,
버거워 못 견딜 수도 있겠지만 결국 모든 것은 흘러가고, 스러지고, 사라진다.
그러나 그 사라짐을 다 지나서야 비로소 마음은 맑은 고요에 닿는다는 것을,
도무지 말로 할 수 없는 어떤 순간들이 내 안의 샘에서 조용히 물방울을 길어 올린다.
그렇게 언젠가
깊이 상처 입은 사람의 삼켜 둔 눈물 곁으로 흘러가
한 사람의 바다가 되어 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