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타나
란타나
멀리도 왔다.
별빛조차 닿지 못한 거리에서
밤의 심장을 태우며
우리 사랑은 소리 없이 무너졌다.
오랜 시간의 균열 속에서
서로의 궤도를 벗어나
찾다가 놓친
오색의 별똥별들.
그대 발길 스쳐갈까
빨간 등 걸었다가
노란 등 걸었다가
헤매다 지친 밤마다
바스러진 상처의 향기로
혼자서만 타올랐다.
그대 기쁨의 뜰에
저무는 노을이 되어
허공을 디디는 발소리 곁에
흔들리는 초롱불 하나 걸어 둔다.
그대 발길 묶어둘까
일곱 번 옷 갈아입고
마음의 그늘에서 피어난 꽃.
그리움의 온기가 식어버려도
헤픈 웃음으로
무수한 추억을 끌어안고
비단 조각 기워 붙인 얼굴로
끝내 등을 밝힌다.
찾다가 놓치고
불러도 닿지 않던 사랑이
한 송이 꽃 안에 모여 앉아
등불을 켰다.
그리움조차 말라
끝내 만나지 못한 그 사랑은
가까이 갈수록 섞이고 복잡해져,
제 몫의 빛깔로 세상을 색칠하고
시간의 한 귀퉁이에서
미워하다가도
다시 사랑하게 된다.
꽃말
나는 변하지 않는다.
엄격함, 엄숙함,
색깔별 꽃말
빨간색: 엄격함
분홍색: 사랑스러운, 달콤한 감사
주황색: 창의성
노란색: 기쁨, 우정
이름
라틴어 'lentus'(유연한, 끈질긴)에서 유래되었거나, 꽃차례가 유럽산 가막살나무(Viburnum lantana)와 비슷한 데서 유래
다른 이름
칠변화 (七變花): 꽃 색깔이 흰색, 분홍색, 오렌지색, 노란색, 붉은색 등으로 계속 변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오색매 (五色梅)
마영단 (馬纓丹)
란타나 꽃에 대하여
란타나 꽃의 학명은 Lantana camara L.이고 영어명은 Spanish Flag, West Indian Lantana, Common Lantana, Shrub Verbena인 떡잎식물 통화식물목 마편초과의 관목이다.
속명인 Lantana는 라틴어의 lentara ‘만곡하다’ 또는 ‘맺다’의 뜻으로 옛 식물명인 유럽산 Viburnum lantana의 화서(花序)와 비슷한 데서 유래되었다 한다.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열대지역이 원산지로 1909년도에 한국에 처음 들어와 겨울철에는 실내나 온실에서 월동하며 더위에 강하고 꽃색이 다양하고 오래가기 때문에 정원수나 분화용으로 많이 이용된다.
키가 3m까지 자라는 란타나(L. camara)는 생명력이 강해 다양한 환경에 적응을 잘하며, 특히 따뜻한 환경을 선호한다.
아메리카 대륙 열대지역에서는 잡초로 여겨지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정원수로 많이 심는다.
꽃은 6~10월에 노란색, 오렌지색, 분홍색, 흰색, 붉은색 등이 여러 가지 조합을 이루며 계속해서 빽빽이 달리며 핀다. 배수가 잘되는 토양과 충분한 햇빛을 좋아하며 일부 지역에서는 번식이 빨라 환경 위해 식물로 분류되기도 하며, 전초와 열매에 독성이 있다.
약성 및 활용
란타나의 이용부위는 잎, 뿌리인데, 잎에는 키니네(quinine)와 같은 경련성의 성분 란탄닌 (lantanine)을 가지고 있다. 이것들은 기관지 질환, 눈병, 해열에 사용된다.
해독성을 가진 뿌리는 위통(胃痛)이나 복통(腹痛), 해열(解熱)에 사용한다.
식물 전체에 독성이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맹독)
란타나의 이런 독성을 천연농약으로 이용할 수 있다. 전초를 물에 달이거나 생즙을 내거나 알코올에 우려내어 사용한다.
가축이 몸무게 1kg당 3mg 이상 란타나 전초를 섭취하게 되면 중독 증세가 나타난다. 가장 먼저 간과 신장이 큰 타격을 받는다. 세포조직이 변질되면서 혈액순환시스템에 장애가 발생하고 근육 무력, 소화 장애, 악성 황달, 광과민반응 등을 나타내며 심하면 죽음에 이른다.
몇 해 전, 화원 한편, 구석 자리에서 보글보글 모둠꽃을 매달고 선 화분이 눈에 들어와 별생각 없이 집어 들었는데, 아마 그때 이미, 작은 인연 하나가 시작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화단에 심자마자 란타나는 쑥쑥 키를 올리더니 두 달이 안돼 수십 송이 꽃을 한꺼번에 달아올렸다.
색색의 꽃이 한데 모여 피어날 때마다 ‘이렇게도 쉽게, 이렇게도 화려하게 피어도 되나’ 싶을 만큼 풍성했다.
우후죽순 자라는 가지를 삽목을 해 보았다.
흙에 슬쩍 꽂아두었을 뿐인데 금방 자라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꽃을 매달기 시작했다.
아무 곳에 꽂아두어도 살아나고, 뿌리내리고, 다시 피어나는 꽃.
울타리 안팎으로 수백 개의 꽃등을 켜 단 란타나를 바라보며 그야말로 눈 호강을 했다.
하루하루 자라나던 두 그루는 어느새 내 키만큼 커져 ‘나무’가 되어 겨울에는 집 안으로 들였다.
울타리 밖에 있던 란타나들은 그래도 혹시나, 이중으로 비닐을 덮어 월동을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뜨거운 땅에서 온 열대의 식물이 영하의 추위를 버틸 만큼 강인하지는 못했다.
란타나가 독성이 있다는 말을 듣고, 낮게 자라난 삽목이들이 강아지와 냥이들에게 혹시라도 해를 입히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결국 키 큰 두 그루만 남겨 삼 년째 곁에 두고 지냈다.
햇살 좋은 창가에 두면 겨울 내내 꽃을 피웠다.
이른 봄날, ‘이제 괜찮겠지’ 싶어 강전지를 하고 밖으로 내보냈더니 시름시름 앓다 꽃별로 떠나버렸다.
너무 잘 자라고, 너무 쉽게 피는 꽃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조금 느슨해졌던 탓이다.
돌봄이란, 때로 어려움이 있을 때, 더 간절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나무에 수백 송이 꽃이 끊임없이 피고 지던 장관을 다시 볼 수 없게 되고 나니, 빈자리가 허전하기 그지없었다.
살아 있는 것들과의 인연은 언제나 망설이게 되지만 다시 한번 란타나를 들여왔다.
란타나의 매력은 수많은 꽃이 피는 것도 아름답지만 피고 지는 내내 꽃색이 끝없이 변해가는 그 모습을 보는 일이다. 마치 노을이 피었다 지는 동안 변화무쌍한 모습과 꼭 닮았다.
같은 가지에서도 노란 속꽃과 분홍과 주홍, 빨간색이 함께 매달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즐거웠다.
향기도 그렇다.
은근하고 부드러운 향기가 장미를 닮아 있으면서도 어딘지 묘하게 매혹적으로 마음을 붙잡는다.
잎을 만지면 아주 짙은 허브 냄새가 나는데 곤충을 쫒는다고 한다.
일곱 번이나 옷을 갈아입으며 ‘나는 변하지 않는다. 는 꽃말로 스스로를 포장하는 꽃이라니.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척하는 꽃.
그건, 어떤 사랑이라도 붙잡고 싶어 끝없이 모습을 바꾸고 꾸미는 바람난 여자의 마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독을 잔뜩 품고 있다니 그 마음이 조금 애틋하다.
한번 심으면 손 안 가는 숙근초로 쉽게 꽃을 보고 싶은데,
꽃과의 인연에 마음이 자꾸 흔들려 란타나의 묘한 바람기를 놓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