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 매니저, 포지티브 피드백의 루프를 끊어야 합니다.
임원님은 그날도 빨간펜 선생님이 빙의되셨습니다. 별거 아닌 월간보고 자료는 방금 소라도 때려잡은 백정처럼 피로 칠갑을 하고 있었죠. 문장 하나, 아니 단어 하나, 아니 아니 토씨 하나까지 첨삭지도를 받는 우리는 교육방송에 나오는 어린이인 양 활기찬 리액션을 보여드리고 있었고요.
오전에 시작한 보고서 점검회의는 점심시간을 살짝 넘겨서야 임원님의 폐회사와 함께 끝이 났습니다.
"그렇게 수정해서 다시 가지고 와."
이 핑계로 점심시간을 길게 쓰고 1시 넘어서 들어와야겠다며 희희낙락하는 스스로의 모습에서 '이것이 직장인의 심리인가?'하는 자괴감과 괴로움을 느끼기도 했고요.
밥을 먹고 이런저런 단톡 방에서 지인들과 상사 뒷담화를 나누다 보니 우리나라 직장상사들은 하나같이 마이크로 매니징을 즐기는 꼰대들인 것 같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직장상사들 사이에는 분노조절 장애가 흔하더군요. 아, 이래서 여기가 헬조선인 건가, 혹시 이게 전염성 꼰대증 같은 신종 질환인 건 아닐까, 나도 커서(?) 저렇게 되는 건가 등등의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는 사무실 대신 근처 서점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에헤라 어차피 펜글씨 타자만 쳐 넣으면 되는 보고서 수정, 늦게 시작한들 어떠하리!"
이 책 저 책을 기웃기웃 거들떠보니 소제목 하나가 눈에 뜨입니다. 챕터를 속독으로 읽으며 머릿속에 요약을 해 봅니다.
결핍의 그림자, 터널 비전 1)
○ 결핍은 사람을 자신이 결핍된 것을 채우는 데만 집중하게 함
- 결핍 요소와 무관한 분야에 대해서는 인지능력과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향
- 뇌의 한정된 인지능력의 대부분을 결핍 요소에 할당하기 때문
○ 또한, 결핍은 사람의 자기조절 능력을 약화시켜 충동적이게 만듦
○ 결핍의 수준이 과도한 경우 결핍 충족 이후에도 그 효과는 장기간 지속됨
- 어린 시절 심한 결핍을 경험한 경우, 결핍 요소에 일생동안 집착하는 것도 가능
- 유년기에 결핍을 많이 경험한 사람들은 충동 억제능력, 집중력, 인지능력이 상대적으로 저조
'흐음, 흥미로운 걸?' 하다가 갑자기 무릎을 탁! 쳤습니다. '왜 직장 상사들 중에는 마이크로 매니저 꼰대들이 많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여기에 있었던 거예요.
많은 조직들이 임파워먼트 수준이 낮다고 이야기들을 합니다. 그러니까 하급자들은 의사결정 권한이 없고, 심지어 자신의 과업수행에 대해서도 높은 수준의 통제를 받고 있다는 것이죠. 뒤집어 말하면 조직 구성원들은 의사결정과 통제력에 대한 심각한 결핍을 느끼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공무원 조직은 말할 것도 없고 기업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로, 신입 직원은 관리자의 자리까지 올라가는데 참으로 많은 세월을 보내야 합니다. 2016년 기사를 보니 신입사원이 부장까지 가는데 18년, 임원까지 가는데 22년이 걸린다고 하네요.2) 한 마디로 결핍이 매우 장기간에 걸쳐 누적이 된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성장한 직원이 관리자가 되었다고 칩시다. 이제 의사결정 권한과 통제력을 손에 쥐었습니다. 그럼 이제 이 사람이 어떻게 할까요? 그동안 결핍되어 있던 것들에 대해 집착을 해야 하겠지요? 최대한의 통제력을 행사하고 의사결정을 독점하는 형태로 말입니다.
"그런데, 잠깐! 이거 포지티브 피드백인데?"
혼잣말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들었더라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여겼을 겁니다. 다행히 시간이 시간인지라 매장에 그 말을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말입니다.
일단 의사결정 권한과 통제력에 대한 결핍을 체험한 직원이 관리자가 되면, 하급자에게 더욱더 심한 마이크로 매니징과 꼰대 짓을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아래서 성장한 차세대 관리자들은 하급자들에게 한층 더 심한 마이크로 매니징을 행할 것이고, 그러면....
"하아아.. 답이 없다... 탈조선만이 답인 건가?"
이미 시계는 한시 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제 사무실로 뛰어가야 할 시각입니다. 하지만 한번 시작된 생각은 멈추지를 않습니다. 이번엔 최소한 깨지는 동안 할 딴생각 거리는 생긴 것 같습니다.
○ 조직 내 관리자들은 심각한 통제력 결핍을 경험하며 성장함
- 조직은 임파워먼트 수준이 낮아 하급자는 과도한 통제력 결핍을 경험
- 조직원은 성장 속도가 느려 통제력 결핍이 장기간에 걸쳐 누적
* 신입 직원이 관리자가 되는데 까지 18년이 소요 (임원까지는 22년 소요)
○ 관리자가 경험한 통제력 결핍은 차세대 관리자의 통제력 결핍을 심화시킴
- 통제력 결핍을 경험한 관리자는 자기 결핍 요소의 충족을 위해 하급자의 통제력을 박탈
- 심화된 통제력 박탈 환경에서 성장한 라세대 관리자는 하급자의 통제력을 더욱 심하게 박탈
* 이러한 경향은 포지티브 피드백을 통해 점점 더 심화
○ 조직의 성장을 위해서는 통제력 결핍을 유발하는 피드백 루프의 단절이 필요함
- 관리자의 통제력 집착은 구성원의 창의성과 책임의식을 저해3)
- 포지티브 피드백 루프가 지속될 경우 조직은 온전한 기능을 할 수 없는 지경에 도달
- 주석 -
1) 정재승, "열두 발자국", 어크로스, 2018. p.95-110
2) 조선닷컴, "사원에서 부장까지 몇 년" 임원은 언제쯤?", 2016.05.16
3) 다음 브런치 "조직을 말려 죽이는 micromanager", 장영학, 2017.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