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슬라우터스의 그림들
남편과 시아버지가 싸웠다. 이들 싸움의 역사는 길지만, 이번에는 심상치 않은 것 같다. 작은 단어 하나에서 시작된 불씨는 몇 번 오고 간 메시지 끝에 극단적 선언으로 이어져 대화재가 되었다. 화재 후 퍽퍽하게 널브러진 잔해를 치워야 하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이들과 함께 사는 ‘여자’들이다. 참 고리타분하다. 아니나 다를까, 이틀 후 시어머니께서 내게 만남을 요청했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두 남자. 각각 지구 반대편에 서서 뻗어도 닿지 않고 불러도 들리지 않는 이 관계를 과연 여자들이 바꿀 수 있을까? ‘당신이 어떻게 좀 해 봐’라며 여자 등을 떠미는 두 남자를 상상하니 자연스레 ‘도긴개긴’ 단어가 떠올랐다.
시어머니와 나는 여성이라는 사실 외에 그림을 그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시어머니는 오랫동안 취미로 그림을 배우셨다. 그래서 만날 때마다 요즘 관심 있는 화가나 새로 시도하는 재료의 어려움 등 미술 얘기를 나눈다. 내가 사는 도시인 덴 보스(Den Bosch) 중심에 있는 노드브라반트 뮤지움(Het Noordbrabants Musuem)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은 것도 그림을 보며 얘기를 나누는 게 제일 편할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뮤지움의 상설 전시관에는 시어머니와 내가 매우 좋아하는 그림이 있다. 바로 중세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Jheronimus Bosch)와 더불어 덴 보스가 배출한 또 다른 대표 화가인 얀 슬라우터스(Jan Sluijters 1881~1957)의 그림이다.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네덜란드 현대미술의 발판을 만들었다고 평가되는 인물이다. 파리에서 시간을 보낸 후 암스테르담을 근거지로 삼아 후기 인상파, 큐비즘, 야수파, 미래파 등 시대의 흐름에 맞춰 여러 사조의 그림을 그렸는데, 그래서인지 3개의 방에 걸쳐 전시된 그의 그림들은 방마다 스타일이 매우 다르다.
첫 번째 방은 고흐처럼 강한 붓 터치가 돋보이는 후기 인상파 풍의 풍경이, 두 번째 방은 사실적이지만 색채와 위트가 도드라지는 어린이 초상화가, 세 번째 방은 큐비즘과 야수파 스타일의 실험적인 그림들이 걸려있다. 하여, 그림 옆에 붙어 있는 정보를 읽지 않는 한 같은 작가의 그림이라고 믿기 어렵다. 시어머니와 난 어린이 초상화 5점이 걸려있는 첫 번째 방에서 오래 머물렀다. 인형이나 장난감을 안고 정면을 쳐다보는 아이들의 아련하고도 순수한 눈이 발목을 잡고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명에 따르면 이 아이들은 슬라우터스의 자녀라고 한다. 자연스레 아버지의 커다란 구두를 신고 해맑게 웃는 내 어린 시절 빛바랜 사진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런 노스탈지어를 안고 다음 방에 들어서면 약간의 당황스러움으로 이런 말을 하게 된다. ‘이게 같은 화가라고?’
얼마 전 난 추상화를 시도했다. 풍경을 그리는 게 다소 지루해졌기 때문이다. 난 내 안에서 요동치는 현재의 마음, 즉 주류에 끼지 못하고 회색지대에서 겉도는 이방인의 마음을 추상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동시에 항상 그리던 사실적인 색연필 그림에서 벗어나 새로운 스타일을 발견하고 싶었다. 여러 시도 끝에 길쭉한 물방울 형태들이 '나'로 대표되는 정육면체 주변을 빠르게 도는 내용의 추상화를 4점 완성했다. 난 이 시도가 기뻤다. '내가 이런 그림을 그리다니!'라는, 나도 몰랐던 나의 발견이랄까? 발견과 변화는 종종 탁구처럼 주고받기 마련이니, 앞으로 내 그림에 변화를 가져다줄 중요한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변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물방울 형태를 보고 '이거 가지야?' 혹은 '오이야?'라고 물었고, 정육면체를 보고 '이거 배꼽이야?' 혹은 '젖꼭지야?'라고 물었다. 웃기고도 당황스러운 반응의 연속. 오죽하면 남편이 이런 말까지 했을까.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지 말고 팔리는 그림을 그리는 건 어때?” 입꼬리가 땅까지 꺼질 만큼 기가 죽은 난 끙끙댔다. 주제가 너무 직설적인가? 아니, 너무 은유적인가? 유화로 그리면 달라질까? 새로운 스타일의 발견이란 내 능력 밖의 일인 걸까?
방마다 다른 슬라우터스의 그림을 보며 난 그가 새로운 사조를 맞이할 때마다 어떻게 탐구하고 사유했을지를 살폈다. 눈앞에 걸린 대형 큐비즘 그림은 옆 방의 어린이 초상화와 대비를 이루며 그가 거쳤던 내면의 싸움과 투쟁의 결과를 보여줬다. 정체하는 순간 발전을 꾀할 수 없는 예술가는 끊임없이 주변을 관찰하고 영감을 찾아내고 동력을 끌어내 새로운 자신을 발견해야 한다. 고전에서 배우고 동시대 예술과 연대하며 생각을 치열하게 거르고 걸러 스타일의 변화를 이룬다. 그림의 호불호를 결정하는 건 관람자의 몫이지만 작가는 그저 작품으로 내면의 발견 과정을 전달할 뿐. 시어머니와 나는 슬라우터스의 이런 과정에 감탄하면서도 어린이 초상화가 제일 마음에 와닿는다는 의견에 합의했다. 문득 내가 진득한 ‘내면의 발견 과정’ 없이 추상에 접근한 건 아닐까라고 자각할 때, 시어머니가 이런 말을 덧붙이셨다. "난 네 추상화가 좋으니, 누가 뭐라고 하든 추상화를 멈추지 말렴."
자, 이제 내 안의 싸움 말고 두 사람의 싸움에 관해 얘기해 보자. 전시를 본 후 우리는 뮤지움 카페에서 점심을 먹었다. 둘 다 두부샐러드를 시켰고 난 녹차를, 시어머니는 탄산수를 시켰다. 그리고 에두를 것 없이 애초 이 만남의 근본적인 이유였던 남편과 시아버지의 관계를 에피타이저로 테이블 위에 올렸다. 서로 최대한 중립적이고도 정치적인 태도로 자신의 남자를 대변했다. 우리가 무슨 변호사도 아니고, 이게 웬 수목 드라마 같은 장면인가 싶어 살짝 헛웃음이 나왔지만, 어쩌겠는가. 가족의 평화를 위해 뭐라도 해야지. 자식을 사랑하지만 표현이 서툴러 단호하고 모질게 말하는 아버지와 그 말을 거부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아들. 그래도 시어머니와 내가 한 발짝 떨어져 두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자 애쓴다는 게 고무적이었다. 쓰디쓴 에피타이저와 본 요리를 지나 달콤한 디저트의 포만감 끝에는 어떤 연대가 있었다. ‘이 철없는 남자들을 어쩌란 말인가!’라는, 측은지심에 기반한 연대. 과연 인간 사이의 아슬아슬한 관계는 무엇으로 변화시킬까? 이 역시 자신을 돌아보는 ‘내면의 발견 과정’ 없이는 어렵지 않을까? 부디 이들 사이에 흐르는 커다란 강물에서 애꿎은 사람이 (시어머니, 나, 그리고 딸아이) 익사하지 않기를.
며칠 후, 혼자 다시 뮤지움을 찾았다. 슬라우터스의 어린이 초상화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기 때문이다. 초상화 방의 벤치에 앉아 5개의 그림을 바라보았다. 아이가 껴안은 인형을 보자 목공이 취미인 시아버지께서 남편의 이름을 새겨 만든 의자가 생각났다. 땀 흘리며 의자를 만들던, 젊은 아빠였을 그가 지금의 상황을 안다면 뭐라고 할까? 의자를 받고 즐거워했을 어린 남편과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셨을 시아버지를 상상했다. 그 의자는 지금 우리 집 창고에 있다. 안타깝지만 당분간 이 둘 사이의 긴장 관계는 쉽게 풀리지 않을 듯하다. 그림을 보다가 난 그 자리에서 시어머니께 메시지를 보냈다. 이들이 자아 성찰의 계기가 없는 한 결코 변화는 없을 거라고. 하여, 당신과 내가 이 고집불통 불쌍한 양반들을 도와주자고. 발견과 변화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법이니 지치지 말자고. 그리고 추신, 추상은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으니 좀 미뤄두고 다시 풍경을 그릴까 한다고. 내가 발견해야 할 것들이 여전히 많다고.
그림의 아이들이 내게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