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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진 May 28. 2017

다시, 떠나기까지

  그렇게 인도에서 돌아왔다. 갈 때는 추운 겨울이었는데 돌아오니 봄의 시작인 3월,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잠시 홍콩을 경유했는데 자꾸만 인도 생각이 나서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아침에 인천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야 집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인도는 참 여운이 많이 남는 여행지인 것 같다. 돌아오자마자 다시 인도에 가고 싶었다. 짐을 푸는 것조차 아쉬웠다. 틈만 나면 어플로 인도로 향하는 저렴한 비행기 티켓을 검색하며 인도 여행 블로그를 드나들었다. 가보지 못한 다른 지역들이 더 잘 눈에 들어왔다.

  그러다 3월에 병이 났다. 인도에서부터 마른기침이 멈추질 않았는데 한국에서도 계속되었다. 안 좋은 공기 때문이려니 생각했는데 점차 심해졌다. 답답해서 피검사에 폐 사진도 찍었는데 아무 이상도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기침만 계속 해대다가 하루는 열이 치솟고 구토 증세가 보여서 응급실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정신이 혼미했다. 더 답답한 것은 응급실에서도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몸이 안 좋은데 이유가 없다니! '내가 정말 인도에서 정체모를 바이러스에 감염이라도 된 것인가. 이렇게 인도에 갔다 와서 정말 죽는 건가.',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긴 했지만 이렇게 죽긴 싫은데...' 넋을 놓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한 신종플루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다. 확실히는 알 수 없었지만 인도에서 걸린 것 같았다. 그래도 인도에서 이렇게 아팠다면 병원 가기도 힘들었을 텐데 돌아오자마자 증상이 본격적으로 악화된 것이 다행스럽기도 했다. 

   병원에서는 입원해야 한다고 했지만 이미 여행 갔다 온다고 준비도 제대로 못한 채 시작해버린 학기라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매일 눈물을 머금고 기침을 달고 학교 과제와 수업에 치여 3월을 보냈다. 인도 여행의 후유증은 그렇게 만만치 않았다. 그렇게 한바탕 앓고 나니 다시 인도를 찾겠다는 열망이 좀 가라앉는 듯했다.

   한 달이 지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인도에서 입었던 두 벌의 펀자비를 손빨래했다. 아직도 인도 냄새가 배어있는 듯해서 빨아버리기가 아쉬웠다. 이 옷을 입고 누볐던 델리 시내와 타지마할, 바라나시 골목의  먼지와 바람을 다 씻어내고 나면 정말 기억 저편으로 추억이 될 것 같아 계속 미뤄왔던 일이었다. 비누를 박박 문질러 옷감을 문지르니 빨간 물, 노란 물 염료가 빠져나왔다. 깨끗하게 빨아 거실에 널어놓으니 얇은 옷감이 햇살을 통과시켰다. 밝은 햇살에 말라가는 빨래를 보며 나도 인도에 대한 그리움을 점차 날려갔다. 물기 하나 없이 바싹 마른 옷을 곱게 접어 옷장 깊은 곳에 넣으면서 언젠가 이 옷을 꼭 다시 꺼내 입고 인도에 갈 날을 기약했다.  

  어느새 1년이 지났다. 때로는 인도가 그리운 마음에 힘들기도 했지만, 때로는 인도에 다녀왔던 시간들이 일상의 괴로움을 견디게 해주기도 했다. 또다시 한 해가 밝아 2월이 돌아왔고 '이맘때쯤 작년엔 인도에 갔었지...'라고 떠올리게 되는 시간도 지나갔다. 그 후 5개월 동안은 머리에 쥐가 날 만큼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며 논문을 썼다.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아이디어와 씨름하며 보냈다. 그 무렵 한번 더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엔 유럽. 인도와 또 다른 문명과 문화를 만나러 가고 싶었다. 그리고 인도에 다녀온 지 1년 반 만에 완성된 논문을 과사무실에 당차게 던져놓고 다시 한번 두발로 고대했던 유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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