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댄힐 Aug 01. 2023

편지와 꽃

070610일




‘사랑할 때와 죽을 때(A time to love and a time to die)’라는 영화가 가끔 생각난다. 특히 아직 대지에 생기가 돋기 전의 늦겨울, 이른 봄의 매화꽃나무를 보면 더 그렇다.

아주 오래 전의 필름인 이 영화는 전쟁 때문에 파괴된 세대의 삶과 죽음을 그리고 있는 영화다. 원작은 레마르크의 동명 소설이고.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소련의 대평원에서 남자 주인공인 그레버는 2년 만에 고국인 독일에 돌아오지만, 고향의 거리는 황폐해져 있었다. 그는 잠시 휴가 온 고국에서 전선보다 오히려 더한 비정함을 느꼈다. 간신히 찾아간 집은 폐허가 되어 있었고 양친은 행방불명이었으며, 꿈꾸던 평화 대신에 불신과 억압, 기아와 도둑질이 난무하고 있었다. 짧은 휴가 동안에 그는 소년 시절의 친구인 여자 주인공 엘리자베스와의 재회와 사랑, 그리고 이별이 이루어진다.

     

영화에서 꽃나무가 나오는 장면이다. 안전지대로 보였던 레스토랑에까지 들이닥친 무자비한 포격을 피해 둘은 가까스로 해변의 거리로 빠져나온다.

“신기해요, 그래도 봄이 온다는 게. 여긴 파괴된 거리이고 봄이 올 이유도 전혀 없는데.”

엘리자베스는 문득 꽃을 피우는 나뭇가지를 보면서 말한다.

“꽃이 피고 있어요. 나무들에게는 지금이 봄, 완연한 봄이네요. 다른 건 나무들에게 아무 문제도 안 돼요.”


그 꽃나무 가지는 거리가 포격에 휩싸여도 때가 되어 생명을 싹 틔우고 있었다. 그래버는 엘리자베스의 얼굴과 숨결에서 전쟁의 불행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거듭 뻗어나가려는 생명의 끈질김과 맹목성을 느낀다.

그레버는 막 결혼한 아내와 헤어져 러시아 벌판 전쟁 속으로 다시 돌아온다. 전선으로 돌아와 보니 이미 많은 전우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전선이 무너진 채 아무 명분도 없는 대전투가 벌어진다. 보름간의 휴가 동안 아름다운 여인과 운명적인 불같은 사랑에 빠져 결혼식을 올리고 꿈같은 신혼을 보내지만, 곧 죽음의 터로 돌아가야 하는 주인공의 처지가 감수성 예민하던 사춘기 고교 시절의 내 눈엔 더없이 애틋하게 보였다. 아마 몰래 본 영화로 기억된다. 단체관람을 통해 본 영화는 아닐 것이다.


전장으로 온 그는 전쟁 와중에 아내가 보낸 편지를 읽고 있다가 자신이 구해준 지하 조직원의 총을 맞고 억울한 죽임을 당한다. 그때 떠내려가던 편지와 더불어, 함께 떠내려가던 꽃송이를 더욱 잊지 못한다. 흑백 영화에서의 그 꽃을 나는 매화로 기억한다. 독일에 매화가 있는지 없는지 그건 내 모르겠지만.


편지를 보낸 아내는 반나치 혐의로 희생된 스승의 딸이었다. 사랑과 결혼, 원대 복귀 후 가슴 아픈 전사(戰死)로 이어지는 영화 이야기는 진솔하게 가슴을 후볐었다. 마지막 장면은 가슴을 더욱 뭉클하게 만들었다. 아내에게서 온 편지를 읽는데 그가 풀어준, 그러니까 살려준 빨치산 청년이 그의 등을 쏘는 것이다. 소설에서 숨 막히는 이 장면은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그는 (자기가 살려준) 포로(소련인들)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젊은 여자를 앞세우고 한 덩어리가 되어 허겁지겁 달아나고 있었다. 젊은 사내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사내는 뜻밖에도 총을 들고 있었다. 그는 총을 치켜들고 겨누었다. 그레버는 검은 총구를 보고 있었는데, 그것이 차츰 확대되었다. 그는 크게 부르짖고 싶었다. 급히 소리를 질러야 할 것들이 무수히 많았다.”

    

쓰러지면서 편지를 손에서 놓치는데 떨어진 편지가 물에 흘러간다. 그는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사랑하는 아내의 편지를 붙잡으려고 손을 애타게 뻗지만, 그만 편지는 그의 손에서 벗어나 흘러가 버리고 그의 손은 움직임을 정지하고는 잠시 침묵 후에 영화는 끝이 난다.


편지와 더불어 꽃, 꽃송이, 꽃잎도 함께 떠내려갔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그 꽃은 매화다. 하지만, 잘못 봤는지도 모른다. 그 소설의 말미는 이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레버는 총에 맞은 것을 느끼지 못했다. 다만, 그의 시야에 잡초가 들어왔을 뿐이다. 밟혀서 짓이겨진 한 포기의 풀이 점점 키가 커지고 있었다. 그는 전에도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그것이 언제였을까? 그는 도저히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 마침내 풀이 무럭무럭 자라나 온 하늘을 가리게 되었다. 그는 눈을 뜨지 않았다.”      


편지와 꽃, 이는 이 영화가 내게 남긴 영상이다.

지난 3월 하순, 악양 동매리 뒷산, 그러니까 내 차나무 언덕 아래 산길에 매화가 활짝 피어 있었다. 큰 나무, 홀로 꽃이었다. 지금은 6월 6일, 망종 다음 날이다. 보리 베고, 모 심고 또 매실 따야 하는 절기다. K는 큰 차밭과 매화밭을 여기 인근에 가지고 있다. 곡우 전에 자기 밭 찻잎을 따가라고 했는데 시간이 없어 따지 못했다. 이번엔 또 매실을 따가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좋은 매실나무를 한 그루 남겨 두었다고 했다.


안내해 주는 대로 따라갔다. 가서 보니 세상에, 3월에 본 그 고목 매화나무다. 이 나무가 꽃으로 있을 때 그 열매를 우리가 따게 되리라고는 짐작 못 했다. 고목나무에서 매실을 땄다. 편은 나무에 올라가서 따고 나는 아래에서 딴 매실을 받았다. 따면서 둘이 마주 보고 웃기도 했다. 악양은 매실의 고을이다. 동매리는 이름이 암시하듯 더더욱 매실 마을이다. 망종 다음 날 우리는 땄다. 동네 이름으로도 절기상으로도 매실의 의미를 이보다 더 잘 살릴 수는 없다.     

그런데 ‘사랑할 때와 죽을 때’에서의 꽃이 매화인지 아닌지,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편지와 함께 꽃잎도 떠내려 가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일만 남았다. 밤에 시간이 많이 걸려 어렵게 자료를 발견, 확인하니 마지막 장면에서 떠내려가는 건 편지뿐이었고 영화 전반부에서의 해변가 꽃나무도 물론 매화나무는 아닌 것 같았다. 라일락이라고 하는 견해도 있던데 내 눈에는 라일락 나무도 아닌 것으로 보였다.


아무튼 좋다. 매화가 아니면 어떻고 마지막 장면에 꽃잎이 떠내려가지 않으면 어떤가. 여기 산기슭 언덕의 한 그루 고목의 꽃 매화를 보고 청소년기의 흑백 영화 ‘사랑할 때와 죽을 때’를 연상했다는 게 내겐 더 의미 있는 회상 작용 아닌가.     


편지와 꽃, 이는 매실을 따면서 지난 3월에 본 이 나무의 꽃을 떠올려 한 생각, 소중한 개념 획득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풍게와 자두 그리고 매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