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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댄힐 Aug 07. 2023

토마토와 춤

070707토

글자 ‘춤’은 참 ‘춤답다’는 생각이 든다. 춤답다는 말이, 말이 되는 말인지 그건 모르겠다만. 추어지고 있는 춤을 글자를 통해 연상해 보니 글자란 참 묘하다는 생각도 든다. ‘지랄’이라는 글자는 또 참 ‘지랄답다’는 생각을 들게 하니 말이다.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자마자 토마토와 고추부터 살펴봤다. 자라는 키에 비해 지지대가 작아서 특히 토마토 나무가 쓰러지지나 않았을까 걱정하면서 왔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 그루는 완전히 쓰러져 있었고 두 그루는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토마토가 주렁주렁 달려 그 무게를 지탱하느라고 지지대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내년엔 좀 더 큰 지주대로 받쳐 주어야 하겠다. 다행히 토마토 줄기가 분질러지거나 가지가 꺾이지는 않았다.      

심은 작물들이 다 잘 자라고 있었다. 부직포를 이랑에 씌우지 않고 심은 참깨도, 부직포를 이랑에 깔고 거기다가 구멍을 내어 그 속에 심은 참깨도 잘 자라고 있었다. 사실 부직포에 구멍을 내어 심는 과정이 좀 어려웠다. 부직포는 풀 자람을 억제하기 위해 덮어씌우는 거지 작물 멀칭 용도로 쓰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멀칭 구멍에 흙을 제대로 채워 주지 못한 모종은 말라비틀어져 있었지만 다른 대부분은 다 잘 살았다. 이번엔 콩, 참깨, 들깨를 제법 많이 심었다. 제대로 자라 수확하게 되면 그 양이 제법 될 것이다. 김을 매어 준 고구마도 잘 자라 순이 제법 많이 뻗어나갔다.     

오늘 할 일의 1순위는 연못 둘레 풀 뽑는 일이다. 그래서 도착하여 짐을 풀고 아침을 먹자마자 바로 이 일을 시작하였다. 4시 45분에 부산 집을 출발, 6시 40분경에 도착하였다. 편이 새벽 4시경에 일어나 밥을 지어서는 아침과 점심으로 싸주었다.  

    

연못 둘레의 돌담 아래 난 풀들은 무성하기 그지없지만 뽑기는 쉬웠다. 키가 크고 잎만 무성했지 버티는 힘은 약했다. 그래서 아주 잘 뽑혔다. 풀이 잘 뽑힌다고는 하지만 제초 작업이 쉬운 일은 아니다. 땀을 무척 많이 흘렸다. 그리고 풀 독이 오를까 봐, 뱀이 있을까 봐 무척 조심하면서 일을 했다. 연못 위의 돌담 둘레 풀을 다 제거한 후 연못 안의 돌담 풀까지 다 제거하고 나니 속이 다 시원하다. 허리를 펴고 연못 앞의 밭을 바라보니 어린 차나무들을 풀들이 덮고 있었다. 봄에 씨앗으로 심은 건데 모두 다 발아한 것이다. 그런데 저 풀들은 어제 다 뽑는담?     

일을 마칠 무렵 배가 고파 시계를 보니 열 시 반이었다. 간식을 먹기 위해 가지고 온 떡 포장을 풀고는 토마토를 따기 위해 밭으로 내려섰다. 익은 토마토를 하나 따려고 살피는 중에 잘 익은 놈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순간, 이런 생각이 퍼뜩 들었다. 저건 춤추고 있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사실 토마토는 정물이다. 제 발로 움직이지 못하고 매달려 있을 따름이다. 그런 토마토를 보고 순간적으로 든 생각이, ‘저건 춤추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참 뜬금없다. 춤, 난 춤을 출출 모른다. 춤을 잘 추는 인생이 부럽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딴 토마토를 들고 펼쳐 논 떡보따리 앞으로 와서 앉아, 깨물기 전에 손바닥에 얹어놓고는 새삼 바라본다. 말랑하면서도 팽팽한 토마토의 만져지는 촉감이 좋다. 계속 주시하니 새삼 신기하다. 내 손으로 심은 결실이어서 그랬으며 표면이 팽팽해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아 그랬다.   

   

간식을 먹은 후 이번에는 연못 물 정비 작업에 착수했다. 우선 물막이 둑부터 제거했다. 그리고 바닥의 펄을 긁어내었다. 하지만, 펄을 다 긁어낼 수는 없었다. 그리고 펄에서 아무 냄새도 안 난다. 물이 일급수, 아니 특급 수라는 말이다. 나는 이 물을 특급 수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리고 호스를 통해 물을 뽑아 올리는 일을 했다. 이게 시간을 좀 끌었다. 시계를 보니 한 시 반, 점심때를 한참 넘겼다. 늦은 점심을 먹은 후 어찌나 피곤한지 잠시 눈을 붙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깜빡 잠들었을 때 편이 전화를 했는데 신호음을 듣지 못했다. 또 K도 왔었다는데 차 소리를 듣지 못했다. 해 질 무렵 K가 다시 와서 그렇게 말해 주어 알게 되었다.  

    

손전화기의 단축키 1번을 눌렀더니 오늘도 “여보시오”다. 오늘 한 일을 미주알고주알 보고했다. 그리고는 “임자가 심은 토마토, 드디어 익었더라, 그중 한 개를 따서 먹었다”라고 들뜬 음성으로 말했더니, "더 따서 자시지 않고"라고 한다. 더 따 먹기는, 내일 갈 때 따서 갖다 바치겠다고 결의를 다지고는 묵묵히 다른 일 했다. 본격적인 장마 첫날인지라 할 일이 더욱 많았다. 고구마 밭이랑을 매고, 들깨밭의 풀도 또한 뽑았다. 지난주에 세운 간이창고 바닥에 타일 붙이고, 그늘막을 손질하고는 이틀 보낸 후 부산 집으로 돌아갔다. 

밭 입구에 피어있는 춘자국들 보고 "집 잘 지키고 기다리고 있거라"라고 말하고는 밭을 빠져 나왔다. 부산으로 가는 중 고속도로 진주를 막 지났을 때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토마토를 안 따 온 것이다. 따서는 갖다 바쳐, 점수를 좀 따려고 했던 건데…. 도착하여 그 말을 했더니 “내나 내가 머라 쿠데요. 익은 거 다 따서 묵으라 안 쿠데요. 애끼면 뭐 되는 거, 그거 모리요?” 한다. 그러고는 또한 “그거 산짐승이나 새들이 파먹을 테니 우리가 못 먹어도 그것들의 먹이가 되면 그것도 좋은 일 아니냐”라고 하기에 나는 “아닐 걸, 춤추다가 제풀에 지쳐 땅으로 떨어지고 말 걸. 바람에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던데”라고 대꾸하고는 편의 핀잔에 머쓱해진 기분을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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