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그때 시골 우리 과수원 외또리 집은 서쪽 방면이 확 트인 언덕 위쪽에 있었다. 외또리 집이니까 뚜렷이 갈 데가 없을 땐 그 언덕으로 갔다. 탱자나무 울타리를 나와 언덕에 서면 공군부대(지금의 사천 공항) 활주로 끝 지점인 중선포 바다가 보이고 그 바다 끝자락의 백일홍 군락지인 강지섬도 보였다.
공항 활주로 확장으로 없어진 그 섬은 내 유소년의 섬. 그리고 그 너머에는 남해로 가는 길목인 하동군 진교면의 금오산이 우뚝 솟아 있었다. 그래서 탱자나무 울타리 밖의 윤 샌 영감님 밭 그 언덕은 유소년-청소년-청년기를 거치는 동안 나에게 미지로 향한 전망을 열어준 지평의 언덕이었다.(배채진의 산문집 5 『와룡산 블루 수채화』 145-151, ‘금오산 동경 담채화’에서 발췌)
<전설>
진주와 사천의 경계 지점에 있는 진주시 정촌면 강지(강주) 마을에는 '강지(강주) 섬' 전설이 아직도 구전되고 있다고 한다.
“요 앞에, 동네 들어오는데 보면 산이 하나 있어요. 그 산이 예전에는 그런 모양이 아니었어. 홍수가 크게 나서 산이 잘려 나갔는데, 그게 저쪽 사천 축동의 중선포까지 떠내려 간 거라. 그런데 중선포의 한 아낙이 떠내려가는 산을 보고는, ‘아이고 저기 산이 떠내려가네’라고 하자 산이 그만 그 자리에 멈춰 서버린 거라. 그게 바로 강주섬이라. 그게 지금 사천비행장 활주로 남쪽 맨 끝에 있었는데, 활주로를 만들면서 그거, 강지섬을 다 날려 버렸어.”
<홍수 설화>
홍수 설화는 홍수가 핵심 사건 또는 배경으로 등장하거나 홍수 이후의 현상이 나타나는 이야기다. 강지섬 얘기도 홍수설화 중의 하나이다. 한국에서 홍수설화는 700여 개나 되는데 이것들은 대체로 간단한 구조의 지명전설 형태로 전승되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전승되는 홍수 설화 중에는 완벽한 신화의 서사적 구성을 띤 것이 드물다. 이건 강지섬 설화도 마찬가지이다. 강지섬은 아주 작은 섬이지만 유독 백일홍 나무 자생지였는데 물이 빠지면 사람들이 그 섬의 큰 나무 아래에서 공을 들이려 드나들곤 했다. 비행장 활주로 확장공사 때문에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최근 사천시지명위원회에서는 '강지섬' 지명을 존치하기로 했다고 한다. 즉 역사성과 후손에 대한 교육을 위해 지명을 남겨두자는 의견에 따라 그렇게 하기로 의결했다는 것이다.
<아버지 추억>
강지섬이 시야에 들어오는 반경 이내에서 살았던 사람이나, 실제 강지섬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강지마을에 살았던 사람의 추억창고에는 강지섬이 아직도 뚜렷하게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 그건, 아직 지구를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는 우리 고향친구들에게도 그렇다. 지금도 만나면 강지섬이 화제에 떠오르곤 한다.
내게는 또한 더욱 뚜렷한 강지섬 추억이 있다. 강지섬이 보이는 사천군 축동면 하동의 우리 집 과수원 땅으로 6.25 한 달 전에 진주에서 이사 내려와 면에서 부면장으로 근무하시던 아버지가 초등학생인 나를 이 강지섬에 두어 번 데리고 오신 적이 있기 때문이다. 강지섬이 보이는 마을의 아버지 친구네 집에서 점심밥을 얻어먹은 후 물이 빠진 섬 가까운 개펄에서 게를 잡은 기억은 지금도 아련히 살아난다.
강지섬은, 걷고 있는 노년의 길에서 발걸음을 뗄 때마다 눈앞에서 가끔 그려지는 내 유년의 섬이다. 최근 남명 조식과 퇴계 이황의 족적이 남아 있는 이 지역 몇 군데를 답사하는 중에 들른 경남 사천시 축동면 구호리의 쾌재정 터, 거기 언덕에 서서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중선포 바다와 그 바닷속의 강지섬 위치를 기억 더듬어 다시 짚어 봤다. 그렇게 다시 살려낸 섬, 강지섬 백일홍 나무 근방에 중절모를 쓰신 아버지의 모습도 어른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