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001
작두를 사야겠다고 생각한 건 몇 해 전부터다. 특히 고구마 줄기를 퇴비에 섞으면서 그 필요성을 크게 느꼈다. 줄기를 토막 내지 않고 통째로 넣으니 좀처럼 썩지 않아 퇴비 더미를 뒤집는 일이 고역이었다. 줄기식물이라 썩기 힘들 거라 짐작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심했다. 그때부터는 작두로 잘게 썰어 퇴비를 만들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고구마 줄기를 작두로 잘게 썰어 퇴비로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어 깻단과 들깨 단도 토막 내어 퇴비로 만들자는 생각이 들었다. 들깨 단과 깻단은 화력과 향기 덕분에 좋은 땔감이기도 하지만, 쌓아 두니 의외로 잘 썩어 훌륭한 퇴비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가을에 무성하게 자란 풀을 잘라 퇴비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결국 한마디로, 퇴비를 더 잘 만들기 위해 작두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작두를 사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그러나 눈에 자주 띄는 건 ‘작두 도령’, ‘작두콩’, ‘작두 장군’, ‘작두타기’ 같은 단어들이었다. ‘작두’ 자체도 많이 검색되었지만, 대부분 농업용이 아니라 약재용이나 제본용이었다. 결국 작두라는 말은 본래의 농업 도구보다는 무속이나 약재 이미지로 더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원하는 정보를 인터넷에서는 얻을 수 없었다.
오늘은 악양 지리산 남부 능선 끝자락에 있는 우리 밭에 가는 날이다. 남해고속도로 하동 나들목을 빠져나오자마자 철물점이 보였다. ‘과연 농사용 작두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고 들어갔다. 절단기가 있는 요즘, 누가 재래식 작두를 찾겠는가.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다들 없을 거라고 했었다.
그런데 주인아주머니가 단박에 “있다”라고 대답했다. 곧장 창고로 가더니 내가 찾던 바로 그 물건을 내주었다. 인터넷에서 괜히 헤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머니는 건네주며 “조심하세요” 하고 말했다. 나는 “작두인데 당연히 조심해야죠” 하고 대답했다.
차에 싣고자 들려는데 아주머니가 또 “조심하세요”하고 말한다. "두말하면 잔소리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때는 단순한 당부쯤으로 여겼다.
들깨를 베어내야 하는 오후,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터뜨릴 듯 어두워졌다. 가뭄 끝에 오는 비라면 반가운 일이지만, 이날만큼은 미뤄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주저할 틈이 없었다. 충분히 익은 들깨를 그대로 두고 부산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낫질에 몰두하는 동안 새로 산 작두는 뒷전이었다.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다.
일을 마치고 작두를 살펴보았다. 밟는 방식이 아니라 눌러 써는 방식이었다. 한 손으로 풀을 날 아래 넣고, 다른 손으로 손잡이를 눌러 썰어야 했다. ‘내 조심성을 철물점 아주머니가 알 리 없지. 그러니 거듭 조심하라고 했던 거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조심조심 썰었다. 사실 작두를 쓴다고 하면 누구라도 “조심해라” 할 것이다. 나 역시 그럴 테니.
막상 썰어보니 잘 잘렸다. 마른풀들이 “싹둑” 소리를 내며 단번에 잘려 나가는데, 그 소리가 시원하기까지 했다. ‘올해 퇴비는 질적으로 한 단계 더 높아지겠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했다. 사기를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사고의 위험이 뻔하므로 아이들에게는 당분간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
건초를 다 썰고 작두를 들어 옮기다, 문득 뒤집어 보았다. 그제야 비로소 알았다. 아주머니가 왜 그토록 ‘조심하라’고 거듭 말했는지를. 날이 아래로 서 있는 구조, 바닥을 가려주는 판조차 없는 모습. 사용 중의 위험보다, 다루다 무심코 손을 베기 쉬운 함정이 거기에 숨어 있었다.
며칠 후, ‘대학 특성화 수립을 위한 학부 학과 발표회’가 열렸다. 커피 시간에 후배 교수를 만났다. 차나무, 매실나무, 참깨, 들깨 수확 이야기를 하다가 어제 산 작두 이야기를 꺼냈더니, 그는 곧바로 “그럼 작두 신선이시네요” 하고 웃었다. 지리산 기슭에 자주 가는 나를 두고 평소 "신선놀음한다"라고 하던 그 후배였다.
내가 그을린 얼굴과 손등을 내보이며 “이런 신선도 있더냐?” 하니, 그는 태연히 대꾸했다. “진짜 신선은 신선 같지 않은 법입니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도둑같이 생긴 도둑 본 적 있습니까? 오히려 그렇지 않은 이가 더 그러곤 하지요.” 그 말속에서 나는 읽었다. 날 선 도구를 다루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경지, 그것을 신선의 자리에 빗대어 건네는 그의 격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