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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파랑 Dec 10. 2016

알바 & 대기업 노동자

<두장의 타임라인>  12월 10일


아침 6시만 되면 귀신처럼 잠이 깨어집니다. 나이가 들어서이기도 하거니와 수십년의 직장생활에 학습된 결과이기도 합니다. 전날 지인들을 만나서 술자리가 있었던 기억을 갈증과 무거운 머리가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소주 한 병, 생맥주 한두 잔에 이렇게 힘들어서야.... 아들을 깨웠습니다. 아직  고3 수업이 종료된 상황이 아니지만 방과 후에 <알바>하겠다고 일하고 있습니다. 늦게 귀가해서 아이도 눈을 쉽게 뜨지 못합니다.  수능 마치고 돈을 벌겠다고 근처 <학원 보조교사>로 일하기 시작했고, 난생처음 일 하고 페이를 받을 수 있다는 설렘에 며칠 동안은 말이 참 많았습니다.

"아무리 알바라도 근로계약서는 써야 하는 것 아닌가요?"

"주 40시간 넘어가면 가산임금을 받아야 하는 것 같은데..."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따질 것은 따지려 하는 비판적 태도가 참 믿음직해 보였습니다.


월화수목금금금.

개발부서에 근무하다 보니까 항상 <위기 상황> <경쟁력>이라는 단어를 일 년 내내 달고 사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휴일 근무수당이라는 개념도 없이 그리고 <근로기준법>의 개념도 없이 토요일 일요일 할 것 없이 매진했던 1990년대의 노동 현장. 복잡한 회로의 구성과 동작이 정상적인지 그리고 가혹 조건에서 문제가 없는지 시뮬레이션으로 돌리고 검증하는 작업. 경쟁사 대비 하루라도 빨리 긴박하게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우리의 경쟁력이었습니다. 정작 노동자 자신에게는 그것이 얼마나 가혹 조건이었는지는 예측하지도 못한 채....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미싱이 잘도 돌고 돌 듯이, 하얀 셔츠 짧은 치마 뜨거운 그 여름 시뮬레이션은 잘도 돌고 돌았습니다.


2003년 되어서야 1963년에 국제 노동기구 (ILO)가 권고한 주 40시간 근무에 대한 법안이 2004년에 국회를 통과하 드디어 우리도 토요일에 쉴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짧은 제품 개발기간은 엔지니어들이 숨을 쉴 수 있는 여유를 주지는 못했습니다. 월간 수십 시간의 잔업이 한참 바쁘면 100시간을 넘는 잔업이 주 5일제를 무색하게 하였고, 일등을 위한 회사의 목표는 또다시 쌍칠년도의 개발 드라이브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달려가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3일 밤을 새우고 하 집에 가서 잠깐 눈을 붙이고 속옷을 갈아입고 또다시 밤샘을 한 어느날 오후, 가물가물한 눈을 치켜세우고 컴퓨터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는데 어디서 인지 삐~~~ 하는 기계음이 들렸지요. 뒤쪽에 앉아있는 동료가 졸음을 이기지 못해 컴퓨터 좌판에 머리를 처박고 기절해서 잠이 들었던 풍경입니다. 컴퓨터 화면에는 kkkkkkk.... 가 연속적으로 타이핑되고 있었습니다. 2012년에 시행된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의해 최장 근무시간에 대한 법적인 제한이 생기면서 살인적인 근로는 조금씩 완화되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입사 초기 <Top 10>을 목표로 했던 회사는 이미 글로벌 넘버원 반도체 회사로 자리매김을 했습니다. 이만 원대의 주가는 수백만 원이 되었고 한국 경제의 가장 중요한 축으로 누구나 부러워하는 최고의 회사가 되었습니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의 중심에는 <삼성전자>가 있습니다. 금주 진행된 국정감사장에서 이재용 회장은 상속세, 증여세를 얼마나 냈는지에 대한 질문에 '모른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만 빼고 온 국민이 다 알고 있습니다. 20년 전 60억 원 에버랜드 주식으로 시작된 길고 긴 상속 작업은 아이러니하게도 고비 때마다 국민의 대표기관 국회에서 법률을 어떠한 방법으로든 개정되면서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다지 변했을 것 같지 않은 국회의원들은 나는 책임이 없다는 듯 호통질입니다. 그리고 작년에는 국민의 피와 땀 <국민연금>까지도 도와주었습니다. 이 마직막 완성을 위해 정유라에게 말을 사주고 집을 사주고 생활비 대주고....

잘 모르겠습니다. 이 것이 이 나라의 경제 정의라는 것인지...  


'잘 모른다. 송구하다.'

논평으로는 이들의 겸손모드는 청문회 준비를 하며 수십 번의 학습을 통해 잘 연출된 행동이라고 분석합니다.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회사에서는 정당한 토론보다 앞서고 있는 '갑과 을'의 수직적 관계를 수없이 경험하고 있을 테니까요. 단지 그 자리는 그 역할이 살짝 바뀐, 후진적 제국주의 문화가 몸에 밴 자연스러운 행동이겠지요.


월화수목금금금.

그렇게 벌어서 부자가 된 회사는 탐욕스러운 재벌의 먹잇감이 되어 지분 싸움의 중심에 서고, 대기업 근로자가 재벌 오너와 버금가는 액수로 납부한 세금은 대통령의 <마늘주사> <백옥주사> <태반주사> 구입에 사용되고, 필요 없다고 안 내고 안 받고싶은 <국민연금>은 오천억의 손해까지 기꺼이 감수하면서 재벌 승계 도와주고...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참고 참고 참고 일을 해왔던 것인지?  굳게 쥐었던 맨주먹은 제 가슴을 쳐야 하고 용솟음쳤던 젊은 피는 분노가 되어 거꾸로 솟아오릅니다.


아르바이트.

물론 근로소득세 내지 않겠지요. 그리고 국민연금도 내지 않겠지요. 부러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그 학원은 잘 못된 대한민국의 사교육 시장에서 겨우겨우 먹고 살지언정, 적법하게 실력으로 1점이라도 더 받기 위해 밤 열 시까지 아이들을 붇잡고 있을지언정, 불법으로 대학을 진학시키는 비선의 따님을 위해서 승마 과외 자금을 제공하지는 않겠지요. 대기업 근로자라서 대한민국 국민이라서 창피한 나날들. 아들이 시작하는 최초의 경제 활동 일주일, 그 과정이 삼십 년 일류기업의 노동자가 일군 노동의 가치보다도 신성하게 느껴지는 주말입니다.


탄핵을 통해 <시대의 사기극>은 일단락되었지만 길을 잃은 대한민국은 어떻게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는지 지금부터 오던 산길로 다시 돌아가야겠지요. 그 과정에는 또 다시 자본이라는 거대한 가시덤불과 자본에 부역하는 정치세력들이 순탄하게 길을 열어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늘 날씨는 제법 추워진다고 하니 광화문 광장에서 차가운 LED 대신 따뜻한 양초로 다시 불을 켜야 할 것 같습니다. 차가운 겨울 흰 눈이 온 세상에 소복소복 쌓이면 하얀 공장 하얀 불빛 새하얀 노동자들의 얼굴들... 그리고 하루하루 청춘이 저물고 저물도록 미싱은 잘도 돌고 돌아가고 있습니다.


노찾사 (사계)


알바노조의 광화문 시위. 2016년 7월 12일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 출석한 재벌 총수들. 2016년 10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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