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히 덥던 지난여름은 언제 그랬었냐는 듯 채 두 달을 못 채웠고, 너무 잠깐의 가을이 벌써 내 일상에서 멀어지려 하고 있다. 사람은 참 간사하고, 9월까지 에어컨을 틀고 자던 내가 이젠 창문도 꼭꼭 닫고, 이불도 잘 덮고 잔다. 그리고 아직 눈은 감은 채 의식만 돌아온 아침이면 지난밤 어깨까지 덮고 잤던 이불이 머리 위로 올라와 있는 걸 느끼고는 한다. 현실과 꿈의 사이에서 간질간질한 기분을 즐기며 잠을 이어갈지, 그만 깨어날지를 고민하며 이불을 살짝 걷어내면, 지난 몇 시간 갇혔던 더운 숨이 흩어진 차가운 집 안 공기가 대부분의 경우 후자를 택하게 만든다. 적당히 큰 창문 밖 하늘은 맑고, 씻고 나면 헤어드라이기 바람이 따뜻하게 느껴질 만큼 바람이 나름 차가워졌다. 그래도 아직은 잠깐의 가을이다.
해가 일찍 지는 계절들이 좋았다. 난 오랜 기간 야행성 동물이었다. 밝은 햇빛 아래보다 세상의 채도가 낮아지는 노을 아래에서, 저녁의 푸르스름한 색과 공기에서, 밤의 그늘과 어두움, 온통 검은색 시야에서 더 안정감과 포근함을 느꼈다. 지금도 이건 별반 다르지 않으나, 올해 중 바로 지금은 빨리 지는 해가 또 다른 하루의 끝을 일찍 보채는 것만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곤 한다. 11월이 성큼 다가왔고, 그 한 달과, 그다음 한 달이 지나면 또 나이를 먹는다는 게, 그때쯤이면 내 일상도 지금의 모습에서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라는, 달라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지는 해에 조금은 애가 타는 내 모습을 설명한다.
익숙한 새벽의 공기는 이제 꽤나 차다. 잠깐의 가을, 가을의 아침과 밤 사이 고작 몇 시간의 새벽엔 이미 겨울의 한 쪽이 자리하려 한다. 집 앞 편의점에 갈 땐 편한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이 고정이었으나, 이젠 나가기 전에 한 번씩 잠깐은 망설인다. 물론 아직까지는 '뭐야, 왜 이렇게 추워' 이 정도의 사족만 입에 달아주면 잠깐 다녀올 만은 하다.
옷장에는 아우터 없이 입어야 예쁜 디자인의 셔츠들이 꽤 많은데, 욕심만큼 많이 입지 못하고 시즌오프를 해야 하는 듯해서 아쉽다. 아우터를 같이 입어도 그 친구들이 결코 나쁜 건 아니다만, 특유의 맛이 안 산다고 해야 하나, 위에 뭐를 덮어 가리기엔 실루엣이나 디자인이 예쁜 그런 것들이 있다. 대충 무슨 느낌인지 알지?
지난봄에 자주 입었던 당근색 니트 가을에도 애용해볼 생각이었는데 그러지는 못했던 것 같고, 아끼는 노란색 맨투맨 이제 단독으로는 못 입겠는 게 아쉽고, 긴 소매의 오버핏 셔츠, 가벼운 니트와 입으면 예쁜 하늘하늘한 소재의 오픈카라셔츠, 딱 가을색 예쁜 핏의 티 몇 장, 가벼운 재킷 등등 가을에만 입기 좋을 옷들 좀 더 입을 걸 하는 생각이 남는다.
이제 벌써 트렌치코트들에, 트위드 코트들에, 코듀로이 셔츠들에, 터틀넥에, 지난겨울에 산 아가일체크무늬가 큰 네이비색 니트와 쨍한 빨간색 니트에, 울 소재 바지들에 슬슬 눈이 갈 날씨다. 겨울이 금새 올 거야. 밤과 새벽이 좋은 나에겐 더 금방 올 테다.
잠깐의 가을이 지나 겨울이 완연해졌을 때, 난 어떤 일상을, 어떤 하루들을 보내고 있을까. 지난여름의 말미와, 지금의 이 짧은 가을의 유예는 길지 않고 오늘도 어김없이 지는 해가 안타깝다. 오늘도 늦은 새벽 이불을 꼭 덮은 채 잠을 청하겠지.
곧 난방을 틀어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