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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기동 일인가구 Nov 26. 2018

우울의 기록

 오랜 고독은 이젠 익숙하다. 오히려 편안하다. 원래 그런 사람으로 태어난 것 마냥 체화된 외로움 역시 별것 아니라고만 여겼다. 어느 순간부터는 뭐든 혼자 하는 것이 익숙했다. 타인과 함께하는 시간들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은 전혀 아니나, 사람은 참 각자가 너무나 다르다는 걸 일찍 알았다.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어 다분히 성가신 일들이 생길 때면, 고독과 외로움을 곱씹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늘 그립곤 했다. 크게 불편할 건 없는데도 여길 당장 벗어나 그 안으로 들어가고만 싶었다. 그게 그렇게 평화로워 보일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량이 정해진 약 처방 같은 것이다. 그렇게 느낄 때가 간혹 있다. 아니, 요새는 꽤나 자주 그렇다고 생각한다. 


뜻한 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 걸 느끼던 며칠이었다. 공기중에 떠 다니는 고독함과 이젠 감히 지겹다고 말할 외로움은 치사량에 다다르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을 편리하다고만 여기던 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냈던가. 이것이 원래 내 모습이라 후회할 것도 없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만, 약간의 아쉬움과 아주 조금의 슬픔 정도야 챙겨도 되겠다.  


지원했던 몇 군데의 회사에선 딱히 연락이 없었다. 피우지도 않는 담배 생각이 났다. 그날은 오랜 친구들과 꽤 여럿이서 만났었는데 자리를 잡아가는 친구들이 절반, 그렇지 못한 친구들이 절반이었다. 건네받은 명함이 생소했다. 이젠 더 멀어지겠구나. 얼굴과 표정, 행동과 말투보단 명함에 적힌 세 글자와 전화번호로 기억해야 할 사이가 될 지도. 친한 친구는 CPA 시험이 이번이 3수째다. 난 그가 결국엔 원하는 바를 이룰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그가 느끼는 불안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불안함 역시 나의 그것과 못해도 절반은 겹쳤을 테다. 오래 술을 마신 다음날 이른 새벽 직업군인인 친구의 차를 얻어타고 집에 돌아왔다. 우린 예전과 같으면서도 달랐다. 


오래 알다가 최근 들어 친해진 사람이 갑작스레 연애를 시작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와 크게 상관있는 일도 아니면서 괜히 우울했다. 그게 그렇게 마음만 먹으면 가능했던 일이었나. 최소한 내 경우엔 그렇지 않았다. 새로 산 수필집의 글을 읽는데 문장이 정말 유려하고 깔끔해서, 난 그게 미치게 좋으면서도 그날따라 내가 모자라 보였다. 사전적 의미에 가까운 질투심의 형태를 그때 보았다.  


술 때문에 풀리지 않는 속과, 어수선한 기분 탓에 어떤 것도 손에 잘 잡히질 않아 한 친구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녀에겐 감사하다. 그저 누군가 말을 들어줄 사람이, 이 답답한 마음을 조금 이해해 줄 사람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건 참 모순적인 일이다. 그래서 미안하기도 했다. 누군가를 절실히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 부질없다 생각하는 놈이 타인의 이해를 바라다니. 날선 나는 항상 내가 여린 사람은 아니라고 믿었다. 그러나 날섬에도 한계가 있다. 외로움, 지독한 고독에도 정량이 있다. 요새는 꽤나 자주 그렇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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