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발 런던행 내리기 싫었던 11시간의 짧은 기록
몇 년 전에 어느 외과의사의 일등석 후기라는 유머러스하면서도 소탈한 글 (http://bestsurgeon.kr/220534063217 )을 봤습니다. 중견 회사 사장님이나 부동산 부자가 아니라도 마일리지 신공으로 저 같은 여행 덕후나 비행 덕후도 한 번쯤은 탈 수 있겠다는 설렘을 준 글이었죠. 저도 그 동안 쌓아왔던 대한항공 비행 마일리지와 스카이패스 제휴 카드 마일리지를 탈탈 털어 2월에 일등석 자리 예약에 성공 합니다. (제휴 마일리지 쌓기 위해 얼마나 개 같이 벌고 펑펑 소비해 온 게냐...) 왕복 16만 마일리지 들었네요. 일반석 마일리지 항공권 예매는 성수기 여부나 좌석 상황에 따라 어려울 때가 많은데 일등석 예약은 1A부터 시작해서 널널하게 가능합니다. 다만 1A 자리는 상징적이긴 하지만 2A 자리보다 작다는 얘기를 들어 자리는 둘 다 2A로.
일단 이번 게시글에서 쓸 것은 런던행 A380 일등석 후기로, 제가 탄 A380 기종은 아쉽지만 코스모 스위트 1.0 버전입니다. 인천으로 돌아올 때는 B747-8i 신형 비행기로 돌아 왔는데 그 때는 코스모 스위트 2.0이었습니다. 돌아올 때의 후기는 다시 남기겠습니다. 코스모 스위트 2.0은 슬라이딩 도어로 문까지 닫히는 버전입니다 ㄷㄷ
새로 생긴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 도착해서 맨 우측 A 카운터 쪽으로 가면 위풍당당한 프리미엄 체크인 카운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즈니스석 이상 또는 Sky Team Priority 이상이라면 입장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프리미엄 체크인 카운터에 들어가면 우측에 다시 일등석 고객 전용 체크인 라운지가 있습니다. 들어가면 체크인, 위탁수화물 비닐 래핑 등을 다 처리해 줍니다.
라운지가 아니고 '체크인' 라운지인데도 깔끔하고 고급스럽네요.. 여기서 오렌지 주스를 하나 여유 있게 마시면서 직원 분이 체크인 처리를 완료해 주는 걸 기다립니다.
입국 수속과 보안 검색을 마치고 이제 본격적인 퍼스트 클래스 라운지를 즐기러 이동합니다.
KAL 프리미엄 라운지 도착하면 우측엔 다시 퍼스트 클래스 전용 라운지 입구가 등장합니다. 평소라면 어이쿠 들어갔다가는 큰일날 것 같은걸! 하고 되돌아갔겠지만 앞에서 탑승권을 보여주고 성큼성큼 들어갑니다.
깔끔한 입구를 들어서면 비행기 일등석 처럼 개인 공간을 꾸며서 편안하게 쉴 수 있게끔 배려해둔 일등석 라운지가 나옵니다. 늘 PP카드를 사용해서 북잡북잡한 마티나 라운지에 줄서서 들어가다가 조용한 라운지에 들어서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습니다.
자리에 착석하면 직원 분이 태블릿 메뉴를 들고 와서 주문 메뉴를 설명해 줍니다. 간 타이밍이 점심 전이여서 조식인 계란 요리들이 주르륵 있어서 프라이 메뉴를 주문하고, Food & Beverage 코너로 가봅니다. 양주, 와인, 각종 드링크가 깔끔하게 구비되어 있고 무엇보다 술을 잘 못 먹는 저에게 단비와 같은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이 잔뜩 쌓여 있습니다. (결국 녹차맛, 초콜릿맛 두 개를 먹고 나옵니다 ㅋㅋ)
조식 메뉴로 시킨 프라이가 정갈하게 나오고....
부페 카운터에서 가볍게 음식을 더 집어서 먹습니다. 술을 못 마시는 약점 때문에 눈물이 앞을 가리지만 잭 다니엘에 콜라를 섞어서 간단히 잭콕을 만들어 먹었네요.
뭔가 아쉬운 마음에 12시가 지나고 나서 점심 메뉴도 따로 주문 가능하냐고 물어보니 다양한 메뉴를 보여줍니다. 비행기 타서도 바로 식사가 서빙될 것이기 때문에 무리 하지 않고, 작은 스테이크 하나만 주문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라운지 화장실도 광활하게 넓고 깨끗했던...
저렇게 편하게 누워서 쉴 수 있는 자리도 있구요. 편하게 쉬다가 일등석 라운지 서비스로 만들어주는 메탈 러기지 태그도 선물로 받았습니다. 먼저 해주신다는 얘기는 없어서 민망하지만 직원 분께 태그 서비스 가능하냐고 물어보고 받았던 헤헤...
라운지에서 편히 쉬다가 이제 본격적으로 탑승 하러 갑니다. A380은 프레스티지석이 전부 2층에 있고, 일등석이 1층 맨 앞쪽, 이코노미석이 그 뒤로 있어서 입구도 3개로 나뉘어 있습니다. 역시나 고요한 일등석 입구 통로로 들어갈 때 기분이 묘했던...
일등석 자리를 앉게 되면 내 자리 하나에 창문이 무려 4개나 붙어 있는 모습에 감동하게 됩니다. 이렇게 시야가 넓어지다니.. 크흑. 웰컴 드링크로 샴페인을 승무원이 따라 주시고, 그 유명한 마카다이마 땅콩도 까서 나옵니다. 마카다미아 땅콩은 역시 맛있었습니다.
파노라마 모드로 찍어본 2A 좌석입니다.
다리를 쭈욱 뻗어도 닿지 않는 거리에 깜놀하고, 무엇보다 큰 스크린에 또 깜놀합니다.
런던까지 가면서 식사가 총 2번 제공되는데, 식사 메뉴는 깜박하고 못 찍었네요. 저는 첫 식사는 제동한우 스테이크, 두번째 식사는 제동닭 가슴살 요리를 주문하였습니다. 제공되는 와인도 이렇게 다양하지만.. 저 같은 술 쑥맥에게는 아쉬운 먼 나라 얘기입니다.
그래도 목은 조금씩 축여야 하니 화이트, 로제, 샴페인을 각각 부탁드려서 먹어 봅니다. 다 맛있지만 A380 기종에만 탑재되고 푸아그라와 잘 어울린다는 맨 우측의 샤또 리우섹이 매우 달달한 게 초딩 입맛인 저에게 매우 딱이었습니다 ㅋㅋ
코스 요리 시작으로 귀여운 새우 요리가 첫 서빙이 되고...
그 다음으로 다양한 빵들이 나오고 저는 술빵 비스무리한 것과 마늘빵을 달라고 하여 먹었습니다. 푸아그라도 별도의 월넛 브레드와 함께 제공되는데 이것도 잼과 함께 발라서 먹으니 맛있더군요 ㄷㄷ
그 다음으로 차례대로 스프와 샐러드가 준비 됩니다. 승무원 분이 샐러드도 하나하나 담아서 사진 찍기 이쁘게 데코해주셨네요.
코스 요리의 하이라이트인 한우 스테이크가 나왔습니다. 굽기는 미디엄으로 요청 드려서 잘 익혀서 나왔습니다. 이미 라운지에서도 많이 먹고 이전 애피타이저로도 배불러서 고기는 정말 혼신의 힘으로 먹고 토마토와 감자는 절반 밖에 못 먹었네요 ㅠㅠ
대만족의 기념 사진을 남겨 봅니다. 낭만닥터님처럼 장미꽃을 입에 물지는 못 했지만... ㅋㅋ 기억에 오래 남을 사진이 될 듯!
식사 후 과일 디저트와 치즈를 서비스 받아 먹었습니다. 폭염 때문에 과일을 많이 못 먹어서 그런지 공중에서 먹는 수박은 더 달고 맛있네요!
식사를 마치고 편히 누워서 자거나 쉴 수 있도록 침대 자리를 만들어 주십니다. 시트도 깔고.. 이불도 두툼한 걸로 준비되어 있는데 잠옷이 얇아도 푹신하게 잘 수 있겠더군요.
승무원 분이 침대 자리를 만들어주시는 동안 일등석 서비스로 제공되는 프랑코 페레 디자이너가 디자인했다는 잠옷으로 갈아입습니다. 부들부들하게 촉감도 좋은 것이... DAVI 의 어메니티 꾸러미와 이 잠옷은 가져갈 수 있는데 실제로 런던 도착해서 여행하는 동안 너무 꾸준히 잘 입었습니다!
식사를 배부르게 먹었지만 시간이 지난 후 출출해져서 라면을 부탁해 봅니다. 반찬과 함께 한 그릇 푸짐하게 서빙되는 라면이 참 맛있었네요. 역시 일등석하면 라면!!
침대 같은 넓은 시트에서 푹 자다가 어느덧 착륙 1시간 30분 정도를 남기고 두번째 식사가 제공됩니다. 탑승할 때 주문했던 닭 요리가 나왔네요. 샐러드도 그렇고 닭 요리도 그렇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내리기 전 송별 샴페인을 홀짝여 봅니다.. ㅠㅠ
광활한 모니터에서 에어쇼 화면이 곧 런던에 착륙할 것임을 알려줍니다. 이코노미 탔을 때 그렇게 안 가던 시간이 왜 이리 야속하게 빨리 지나가는지.... ㅠㅠ
넓은 런던 근교의 땅이 보입니다. 여행에 대한 설렘보다는 이 좋은 자리에서 곧 내려야 한다는 아쉬움이 실제로 더 큰 순간입니다.
무사히 런던으로 도착하고, 게이트가 열리면 1번으로 내리게 됩니다. 인천에서 런던까지 무사히 데려다 준 A380을 기념으로 한 컷 찍어 둡니다.
비닐 래핑되고 퍼스트 태그가 붙은 짐을 찾음으로써 즐거운 비행이 끝났습니다.
인생은 한 방으로 살면 안 되지만 마일리지는 한 방에 쓰라고 당부하셨던 낭만닥터님의 조언을 다시금 떠올리며, 역시 타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격적 여행은 이제 시작이고, 프랑크푸르트에서 인천 돌아올 때 코스모스위트 2.0 일등석 후기도 곧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글 읽으시는 모든 분도 일등석 포함해서 마음 속 버킷리스트 하나씩 금방 지우시길 기원하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