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노자도 계급이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위치상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이에 있다. 그러다 보니 이곳에 와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도 살면서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나라의 사람들이 많다. 새로운 나라 사람을 만나면 새로운 나라에 간 것처럼 호기심이 생긴다. 그 사람들을 보며 내가 정말 아프리카 대륙에 가까이 있구나 실감한다. 나라는 사우디 아라비아이지만 정작 본토 사우디 사람을 만나는 게 어렵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 사람의 origin이 어딘지 궁금해 물어보고 그러다 진짜 사우디 사람을 만나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냥 반갑기까지 하다.
- 공항에서 호텔까지 이동할 때 택시기사는 파키스탄 사람
(이 나라의 드라이버들은 거의 인디아, 파키스탄 쪽)
- 호텔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네팔, 방글라데시 사람
- 사우디 유심을 꽂을 사우디 전용 핸드폰을 사러 갔는데 거기에서 폰을 파는 사람은 아프리카 수단 사람
- 현재 일하는 곳에서 만난 에티오피아, 모로코, 케냐, 소말리아, 이집트 사람들
- 그리고 전 세계 어디를 가던 너무 쉽게 만날 수 있는 필리핀 사람들
(이들은 아기 돌보는 내니, 간호사, 하우스 키핑 등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
- 그 외 미국, 뉴질랜드, 프랑스, 영국인 등등
- 눈에 띄게 많은 건 아니지만 한국인은 간호사, 건설 쪽에 많이 종사하는 듯하다.
이렇게 많은 외노자들이 사우디에서 돈벌이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외노자들 사이에서도 계급이 존재한다. 정확히 선을 그어 나눈 계급은 아니지만, 노골적으로 사람들을 다르게 대우하는 게 씁쓸했다. 피라미드의 제일 꼭대기에는 이 나라의 주인인 사우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피라미드 꼭대기 아래, 외노자들의 계급은 출신국이 어디냐에 따라 결정된다. 출신국이 경제적으로 부유하면 대우가 좋다. 출신국이 가난하면, 좀 격한 말로 “종” 부리듯이 부린다. 너무 그 온도차가 심해서 몇 번 놀란 경우가 있었다.
그럼 한국인 외노자 위치는?
현재 전 세계가 K 열풍이다. 한류 열풍으로 어딜 가나 코리안이라고 하면 너무 친절하고 대우가 좋다. 이럴 때마다 국뽕이 차오른다. 나라 잘 두고, 시기 잘 타서 K-열풍에 나도 살짝 한 발 담근다. 그래서 코리안 외노자의 서열은 피라미드의 위쪽에 있다고 보면 된다. 감사하다 ;)
그리고 이곳이 이슬람 종주국이다 보니 근처의 아랍국의 무슬림들이 이곳에 많이 있고, 그들이 조직에서 좀 중요한 자리에 있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제3 국 노동자를 대하는 걸 보고, 저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저것밖에 안 되는 것에 또 한 번 놀란다. 하나의 가벼운 예로, 나는 스파에서 일을 하다 보니 고객 관리 후 타월 정리와 여러 뒷정리를 내가 하고 그게 당연한 거다. 그런데 나의 무슬림 co-worker는 본인이 고객관리가 끝나면 필리핀 co-worker에게 전화해 "종" 부리듯 뒷정리를 시킨다. 그럼 그 필리핀 아이는 또 아무 말도 안 하고 가서 뒷정리를 하고 있다.
그들의 의식 수준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건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내 기준에서 본 거고, 그 아랍 레이디들은 그동안 쭉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어쩌면 이렇게 사람 부리는 걸 당연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모던한 2022년에 사는 그녀들이 조금 더 성숙하게 사람을 대한다면 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