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하게 깎아지는 절벽
Day 4
2026년 2월 15일
이동구간 : 바랑코 캠프 (Baranco Camp 3900m) - 카랑가 캠츠(Karanga Camp 3995m)
총 이동거리 : 약 5-6km
소요시간 : 4시간 30분
고도상승: 약 50-100m (바랑코 월을 오를 때 약 250m~300m를 급격히 상승하며, 이후 카랑가 계곡으로 내려갔다 다시 마지막 캠프까지 오르는 구간, 이 구간 역시 up & down)
지대 : 고산사막지대(Alpine Desert zone)
신체반응 : 고산에 어느정도 적응하여 상태 좋음.
날씨 : 맑음 > 오후에 비
밤사이 바랑코 캠프에서는 비가 추적추적 많이 왔다. 텐트 안에서 빗소리를 듣는 건 낭만이지만 화장실을 가려면 정말 고역이다. 킬리만자로에 7일을 머무르면서 가장 좋았던 숙박지는 바랑코 캠프이다. 이름도 이쁘고 텐트 앞으로는 모쉬(Moshi) 시내가 보이고, 뒤로는 설산이 권위롭게 자태를 뽐냈다.
밤사이 하얗게 서리가 내려 텐트를 덮었고, 얇게 얼음이 얼어 바스락 거렸다. 이른 아침의 새벽공기는 맑고 차가웠다. 깊은 들숨으로 차고 맑은 공기를 폐 깊숙이 마셨다.
3900m의 높은 고도에서, 우아하게 테이블에 음식을 차려 두고 의자에 앉아서 먹는 호사를 누리다니…
- 데이빗! 오늘 운행은 어때?
-중간에 4200m를 한번 찍을 건데 경사가 많이 가파를 거야, 그러고 내려와서 3995에서 잘 거야.
어제의 눈물 흘리며 넘던 라바 타워캠프가 생각이 나면서, 4000m를 넘는다고 하니 다시 고산증이 올까 봐 긴장이 되었다. 아침을 먹고 화장실을 다녀온 뒤, 데이빗과 나는 8:30에 바랑코 캠프를 나섰다.
길을 나서자마자 눈앞으로 큰 벽(!!) 막아서고 있었다.
Baranco Wall, 바랑코 벽이다. 산 위로 개미처럼 사람들이 줄지어 올라가고 있다. 꽤 높고 가파르게 보인다.
정말 다들 대단하다.
포터들은 경이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우리도 서서히 그 무리에 끼어 고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멀리서 볼 때는 아슬아슬하게 가팔라 보였는데 막상 그 사이로 들어가니 멀리서 볼 때보다는 아찔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올라가다 보니 구간이 정체되었다. 그 사이 데이빗과 나는 인생사진을 건졌다.
나 혼자서 킬리만자로를 간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하는 걱정이 여자 혼자서 포터들이랑 그 깊은 산에 가면 위험하지 않냐는 거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는 게 킬리만자로는 워낙 유명한 산이다 보니 일 년 내내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온다. 나 혼자서 시작한 등반이지만 등반 내내 혼자 걷는 일은 절대 없다. 오히려 혼자서 걷는 기회가 생긴다면 이 유명한 킬리만자로를 전세 낸 거 같은 행운이다.
이렇게 깎아지는 절벽에서 포터들의 저 큰 짐들은 아슬아슬 아찔하다. 우리 모두는 앞에서 잡아주고 뒤에서 밀어주며, 처음 보는 사이지만 친밀함과 애틋함이 생긴다.
발로만 오르기는 어려워 손으로 안전한 바위를 잡고 이동을 하며 발도 함께 움직인다. 위험하고 힘든 구간은 데이빗이 먼저 올라가 내 손을 잡고 위로 당겨준다. 새끼오리가 어미 꽁무니를 따라다니듯 데이빗 뒤에 꼭 붙어 다닌다.
벽을 넘고 나니 이렇게 시야가 확 트였다. 그와 함께 날씨도 순식간에 바뀌었다. 며칠씩 등반을 하다 보니 나와 겹치는 등반팀들이 있었는데 운행 중간중간 그들을 만나면 반가웠다. 마차메 루트 7일 등반 중 한국팀은 한 팀도 보지 못했다. 한국인들은 산장에서 잘 수 있는 마랑구 루트로 많이 간다고 했다. -이 글을 읽으시는 한국분들, 마차메 루트로 가세요. 훨씬 볼거리가 많아 눈이 즐거울 거예요-
카랑가 캠프 도착과 함께 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며, 안개로 시야가 가려졌다. 여전히 축지법을 쓰는 포터들은 미리 도착해서 텐트를 다 쳐두었다. 4200m의 바랑코 벽을 넘어왔는데 어제처럼 고산증 때문에 고생하진 않았다. 하루 사이 다행히도 몸이 고산에 꽤 적응을 한 모양이다.
일찍 도착해서 오후는 통째로 쉴 수 있다. 이렇게 7일 코스로 오면 느긋하게 쉬엄쉬엄 산을 즐길 수 있다.
일찍 도착해 여유롭게 팝콘을 즐긴다.
마스크팩, 토너패드 등등 많이 챙겨갔는데 이렇게 포터들에게 쥐어주고 같이 오손도손 얼굴을 닦으며 친목도모(?)를 한다.
데이빗은 가이드이고, 아담은 포터이다.
데이빗은 나와 함께 산행을 하며 나에게 길을 안내하고 내가 킬리만자로에 대한 질문, 식물에 대한 질문 등등 온갖 질문을 하면 다 자세히 알려준다. 등반 내내 나의 친구이자 가이드이다. 내가 가장 많이 한 질문은 이거다. “여기 고도 몇이야?” “얼마나 더 가야 돼?”
아담은 내 짐 전용 포터이고 내가 캠프의 텐트에서 쉴 때 나를 전담 케어해 준다.(다른 포터들은 짐만 운송한다).
음식배달, 뜨거운 물 제때 배달, 자기 전에 뜨거운 물주머니에 물 넣어주기 등등. 하루 운행에 내가 메는 짐은 5-7킬로 정도 되고 이걸 뺀 나의 모든 짐과 음식 먹는 테이블, 의자를 아담이 등에 지고 이동한다고 보면 된다.
한국인 오지랖이 발동한다.
아담과 이야기를 했다. 괜히 난 저런 게 궁금하다.
-나 : 아담!! 왜 가이드 안 해? 가이드하면 포터 하는 것보다 좀 덜 힘들 거 같고 돈도 더 벌거 같은데..!
(한국인은 극한의 효율주의 민족. 이왕 힘들게 일하는 거 돈 좀 더 벌고 덜 고생하는 거 하는 게 더 좋지 싶어 물어봤다)
-아담 : 가이드하려면 Mountain School(산 배우는 학교)에 가서 배우고 수료해야 된다. 그 돈이 아마 1400불 (한화 약 200만 원) 정도 될 건데, 그 돈이 없다.
- 나: 산에 계속 다닐 거면 그 학교 나와서 꼭 가이드해!!
- 아담: 어. 나도 그러고 싶다. 그런데 일단 올해는 둘째 애기가 태어나기 때문에 일단 돈을 좀 모아야 된다.
- 나: 그래!! 아기 낳는 거 축하하고, 꼭 가이드 됐으면 좋겠다.
- 아담: 알겠다 고맙다.
운행을 빨리 끝내서 오후는 느긋하게 여유를 부려본다. 5일 등반 일정이라면 이런 여유는 부르기 힘들듯 하다. 텐트 안 침낭 속에 누워서 듣는 빗소리는 꽤 낭만적이다. 빗소리와 함께 낮잠을 한숨 자고 텐트밖으로 나왔더니 해가 쨍하다. 이렇게 킬리만자로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그렇지? 나 지금 거의 4000m의 고산에 있지?!
오늘 등반도 무사히 끝냈다.
정상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내일은 이제 정상 바로 밑의 바라푸 캠프까지…
아산티 사타( Asanti Sana, Thank you so mu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