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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faitement imparfaite Sep 27. 2020

영혼을 위한 카스텔라죽

무화과 생각을 하다보니 또 쏘울푸드 생각이 났다.


내가 어릴 때 한참 수족구라는 병이 유행했다. 원래 어린이들에게 흔하게 생기는 병인 것 같은데, 입안과 손발에 물집이 잡히고 감기몸살처럼 앓는 병이다. 나도 8살때인가  이 수족구에 걸려서 입안에 하얀 구멍이 몇십개가 났는데, 하나만 나도 종일 아픈 그 구멍이 몇십개가 있었으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당시 우리 동네 소아과 의사선생님은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셨는데, 수족구 걸린 아이들의 부모님에게 "포카리스웨트 마시게 해주시고 쉬고 하고싶은 거 하게 해주세요"라는 처방을 내려주셨다. 아마 밥을 못먹으니 포카리스웨트라도 마시게 하라고 한 것일텐데, 하고싶은 것을 해주라는 이야기는 음..애가 스트레스를 받을까봐 그랬을까?


당시 나와 같이 수족구에 걸린 친구의 남동생은 그 처방덕택에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로봇장난감을 샀는데, 당시의 나는 '수족구랑 저게 무슨 상관...?'하고 갸우뚱했으니, 아주 합리적인 어린이었거나 아니면 그 나이에도 참 심보가 배배 꼬였었나 보다.


아무튼 우리 엄마는 반신반의하며 포카리 작은 통을 사오고 장난감 따위는 사주지 않았는데, 그건 괜찮았지만 도무지 입이 아파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서른이 넘은 지금도 입에 구멍 하나 뚫리면 알보칠을 바르네 오라메디가 어딨냐 하며 밥먹을 때마다 오만상을 쓰는데, 그때는 오죽했을까.


아무튼 당시 매일 우리집에 놀러오시던 외할아버지는 귀한 손녀딸이 식음을 전폐하자 애를 태우셨는데, 그러다 만들어진 것이 바로 카스텔라죽이다. 죽이라고는 하지만 별거 없고, 그냥 빵집 카스텔라에 우유를 부어 말아서 티스푼으로 조금씩 떠먹이는 것이다. 그것이 쌀죽도 알갱이가 있어 씹기 힘들었던 당시에 내가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음식이었다.


물론 혼자서도 떠먹을 수 있었지만 환자 코스프레를 하느라 할아버지가 직접 떠먹여주셨는데, 할아버지 한입 나 한입 하며 받아먹은 카스텔라 죽은 그 와중에도 어찌나 맛있던지! 포인트는 예쁜 유리컵에 그걸 담아서 티스푼으로 깨작깨작 받아먹어야 한다는 것인데, 티스푼으로 먹는 이유는 입이 아파 조금씩 먹으려는 것이지만 그렇게 쪼금씩 받아먹으면 감질맛이 나서 더더욱 맛있었다!


그 이후 카스텔라죽은 내가 아플 때마다 제조해먹는 환자 특식이 되었는데, 성인이 되어서도 한참 아플 때면 굳이 카스테라를 사와 그릇에 담고 흰우유를 자작하게 부어 이불 에 앉아 떠먹고 있노라면 당시 할아버지가 먹여주시던 그 맛이 떠올라 어딘가 마음 한 켠이 말랑해지면서 웬지 더욱 어리고(??) 병든 환자가 되어가는 느낌에 도취되고 마는 것이다.


최근엔 달달한 것들은 좀 지양하느라고 아파도 카스텔라 죽을 먹지 않았는데, 전에 남자친구한테 이 얘기를 해주다가 한번도 카스텔라를 이렇게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하길래 "말도 안돼!!이걸 평생 안 먹어봤다고?"하며 만들어줬더니 한 5초만에 카스텔라 한개를 순삭해버렸다..내가 이걸 요새 안 먹는 이유도, 이게 부드러워 씹지도 않고 꿀꺽꿀꺽 넘어가다보니 먹는 건 순식간인데 칼로리는 어마어마 하기 때문. 흑흑..


아무튼 입에 염증이 나서 구내염이 생겼는데 뭔가 맛있는 건 먹고싶다, 할 때 강추한다. 포인트는 최대한 환자처럼 이불을 뒤집어쓰고 티스푼으로 최대한 야금야금 먹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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