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것을 지켜나가려는 노력

by 윤슬작가

"오늘, 기분 좋다"

"행복하다"
어제저녁,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남편이 한 말이다.
기분 좋다. 행복하다. 남편의 말에 나도 괜히 기분이 더 좋았다.
"오늘 무슨 좋은 일이 있었어?"
"아닌데, 집에 오니까 좋아서"
"?"
"집에 오니까 자기도 있고, 애들도 자기꺼 편안하게 하고 있고, 그러니까 좋아"
남편의 얘기를 듣고 나니, 그동안 어떤 마음으로 지냈는지 조금 더 짐작이 갔다.

몇 년 동안 부산스럽게, 정신없이 지낸 적이 있었다. 주위 사람들과 함께 시작한 일이 일상을 조금 더 분주하게 만들었고, 바쁜 마음은 주위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달음박질하게 만들었다. 달리고 있는지, 걷고 있는지 구분 없이 시간을 채웠다. 아침 9시 30분이나 10시에 출근해서 저녁에 10시에 퇴근했다. 처음에 남편에게 자리를 잡을 때까지만 이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일은 많았고 퇴근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을 보냈었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의 저녁은 남편의 몫이 되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저녁만 부탁했는데, 나중에는 숙제나 공부를 봐달라는 주문까지 함께 넘어갔다.


퇴근이 늦다 보니, 집에 와서 아이들을 돌보기엔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일이 바쁘면 당연히 함께 집안일을 해야 하고 아이들도 독박 육아가 아니라 함께 키워야 한다는 나의 의견에 남편은 말없이 협조했다. 불만을 토로하지 않고 몇 달을 버텨주었다. 그런데 계절이 몇 개 바뀐 어느 날, 남편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남편은 소주, 나는 맥주 한잔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었는데, 남편이 조심스럽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퇴근하고 돌아와 정리되지 않은 집을 정리하고, 저녁을 먹이고, 숙제를 살피는 일에서 아이들과 다툼이 생기는 일이 잦아졌고, 그런 과정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아이들과의 관계도 많이 나빠졌다고 고백했다. 남편의 얘기를 듣는데 순간 '아차'싶었다. 그랬다. 나도 그랬다. 지금처럼 바빠지기 전, 그러니까 집안에서 아이들을 돌보면서 함께 지낼 때 나도 많이 힘들어했던 부분이다. 아이들을 돌본다고 하는 일이 아이들에게 잔소리로 다가가고, 거기에 숙제나 공부를 점검하면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많이 답답해했다. 그러다 보면 저절로 소리가 높아졌고, 아이는 아이대로 서운해하고, 나는 나대로 힘들어했다. 인격수양이 부족하다는 생각, 학부모가 되어 가고 있다는 자괴감, 여러 생각이 나를 괴롭히면서 마음이 무거웠었다.


남편의 기분이 그때의 나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나는 외면할 수 없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 혼자 집안일을 해내고, 아이를 보살피는 일은 분명 벅찬 일이었을 것이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라고는 하나, 어떤 식으로든 성과를 내기 위해 계속 일에 매달리다 보니 한쪽에서 구멍이 생겼고, 하필이면 나의 소중한 가족이 그 구멍을 떠안고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친구와 상의하여 퇴근시간을 조정해 조금 더 일찍 귀가하는 방향으로 바꾸었다. 물론 일찍이라고 해도 7시 30분, 8시 정도였지만 그것만으로도 남편은 한결 편안해진 얼굴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저녁을 먹는 날도 있고, 아닌 날도 있지만, 식탁에서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나는 좋다.

"엄마, 오늘은 할 얘기가 많아"

"엄마, 우리 체육 선생님은 아, 얘들은 별로 고생을 안 하고 크는구나, 내가 고생을 좀 시켜줘야겠구나,라고 생각하나 봐"
"왜?"
"안 해도 되는 일을 계속 5번, 10번 시켜"
"누나 학교에도 그런 선생님 있어, 누나 학교에는..."
밥상에서 아이들은 학교의 일을 얘기해주고, 나는 어떤 일인지 궁금해하며 얘기를 물어본다. 그러면 불공평하다는 둥, 힘들었다는 둥, 운이 좋았다는 둥, 그날의 일을 자세하게 이야기해준다.


바쁘다는 핑계로 반찬을 여러 가지 만들지는 못하지만, 단품 식사에도 맛있게 먹어주는 아이들이 고마울 뿐이다. 일과 삶의 균형, 참 쉽지 않은 말이다. 하지만 쉽지 않더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은 중요한 것 같다. 일에 대한 압력과 삶이 주는 긴장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지켜내야 한다. 일상을 지키는 사소한 것들, 그것이 나를 떠받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동시에 함께 있다는 이유로, 알아주겠지라는 마음으로 눈여겨 살펴보지 않는 마음, 이 마음을 경계해야 할 것 같다.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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