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슬작가 짧은 소설
주말, 영규네 가족과 캠핑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미 두 달 전에 결정 난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캠핑을 갈 수 없겠다고 말하는 미혜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함께 캠핑을 다녀온 터라 아이들도 영규 삼촌이랑 함께 간다고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갑자기 캠핑을 취소해야 한다니,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확인이 필요했다.
"어제까지 캠핑 얘기하다가 갑자기 왜 그러는 건데?"
"준희 선생님. 이번 주말밖에 안 된다고 하시잖아. 나도 갑자기 연락을 받아서..."
"선생님? 누구? 준희? 준희가 무슨?"
"유명한 사고력 선생님인데, 어제 겨우 자리가 났단 말이야"
"어? 유명한 사... 고... 력 선생님?"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5살밖에 안 된 준희에게 무슨 선생님이 필요하다는 소리인지, 거기에 사고력 선생님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는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미혜야. 준희 이제 겨우 5살이야. 무슨 선생님이 필요해? 어린이집 다니는 것으로 충분한데, 무슨 사고력 선생님?'
"모르는 소리 하지 마. 자기는 준희가 학교 가서 다른 애들 모두 잘하는데 혼자 못하면 좋겠어?"
"어? 아니, 무슨 소리야? 아직 5살이야. 학교 갈 때까지 3년이나 남았어 "
“자기는 몰라서 그래...”
“내가 모르긴 뭘 모른다고 그래?"
"아니야. 자기는 요즘 어떤 시대인지 잘 모르지? 요즘 애들이 얼마나 똑똑한데? 우리처럼 학교에서 한글 배우는 시대가 아니야"
"나도 알아. 그 정도는. 그런데 미혜야... 준희는 이제 겨우 5살이잖아. 5살이면 한창 뛰어놀아도 부족해"
“내가 놀지 못하게 하겠다는 소리가 아니잖아?”
“그게 그거잖아...”
“그리고, 이렇게 미세먼지가 많은데 누가 밖에서 뛰어놀아?"
"어?......"
"거 봐. 자기야. 자기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공부 좀 해..."
미혜를 뒤로하고 혼자 안방으로 들어왔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갈수록 미혜와 대화하는 것이 힘겹게 느껴진다. 무슨 말만 하면 조선시대 사람 같다고 얘기하고, 거기에 몇 마디를 더 보태면 “공부 좀 해”라는 말로 끝이 난다. 처음에는 미혜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는데, 요즘은 정말 어디 가서 공부해야 하나, 혼자 속앓이를 하고 있다. 솔직히 어디 가서 무슨 공부를 해야 하는 건지도 잘 모르면서 말이다. 준희 문제에 참견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매번 고민이다. 미혜도 답답하겠지만, 답답한 건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아주 가끔씩, 아니 많이 궁금하다.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도대체 무엇이 미혜와 나 사이에 벽을 만들었을까.
우리 부부는 임신 전, 부모교육을 받았다. 3개월 과정으로 유명한 부모교육 강사에서부터 유아교육 전공 박사, 부부 문제 연구소 소장, 감정코칭 강사들로 구성된 센터에서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좋은 자녀교육법이 무엇인지 강의를 들었다. 임신에서부터 출산, 아이의 성장발달단계, 부모와 자녀 사이의 갈등 문제 해결까지, 소중하게 다루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얘기 나누며 정리했었다. 부모의 불안이 곧 아이의 불안이 될 수 있다는 강사님의 이야기에 서로의 가치관, 교육관을 확인했고 우리가 자녀 교육에 대한 가치관, 교육관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과정을 마쳤었다.
"난 아이 낳으면 자유롭게 키울 거야. 자식은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고 하잖아. 믿어주고 기다려줄 거야"
"내 생각도 비슷해.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어릴 때는 그거면 충분한 것 같아"
그런 우리 부부에게 조금씩 불협화음이 새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준희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유치원에서 함께 돌아오는 민수라는 친구가 있는데, 3살 때부터 한글 공부를 시작해서인지 지금은 7살이 읽는 책을 술술 읽는다고 했다. 그때부터였다. 식탁으로 반찬을 하나씩 옮겨 담으면서 미혜가 생소한 단어와 낯선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낮에 점심은 먹었는지, 준희가 하원했는지 궁금해 전화를 넣으면 민수 엄마와 함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떤 날에는 놀이 센터에 갔다고 했고, 또 어떤 날에는 부모교육 강좌에 갔다고 얘기했다. 상황을 완벽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미혜의 일상에 변화가 생기고 있음이 느껴졌다. 거기에 변화의 화살이 정확하게 준희를 향하고 있다는 불안한 느낌이 들었지만 애써 모른척하며 지내왔다.
'늦어도 5살에는 한글을 떼야 한다'
'6살에는 영어와 피아노 학원을 보내야 한다'
예전의 미혜라면 언급조차 하지 않았을 문장이 집안 곳곳을 채우기 시작했다. 나 역시 맞서는 마음으로 미혜의 문장을 단단히 무장하고 경계태세를 갖추고 있었는데, 아주 약간의 방심을 틈타 유명한 사고력 선생님이 밀치고 들어온 것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답답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미혜의 머릿속에서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열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또다시 얘기를 꺼냈다가는 반박도 못하고 “자기는 공부 좀 해”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문득 지난주에 아이의 첫돌을 축하해 주러 가서 만난 영훈이가 떠오른다.
'영훈아, 네 말처럼 어릴 때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노는 게 최고지. 나도 그랬어. 아니, 우리도 그랬어. 그런데 요즘은 잘 모르겠어.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 정말 내가 아는 게 없는 건지, 미혜가 아는 게 많은 건지... 도무지 모르겠어’
by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