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同床異夢)

윤슬작가 짧은 소설

by 윤슬작가

"우리 같이 아르바이트해볼까?"

처음 진주가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와 상관없는 일인 것처럼 지나갔어야 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알 수 없는 일이다.


6월 초, 계절의 변화보다 계절을 따르지 못하는 마음이 문제였다. 좋지도 싫지도 않은 미적지근함에 슬슬 싫증이 나고 있었다.

"피부숍에서 일을 하면 피부관리를 더 잘할게 될 거야"

"저절로 살 빼는 방법도 배울 수 있을 거야"


아르바이트라고는 A 호프 주방 서빙이 전부였다. 천직이라고 여겨질 만큼 일은 어렵지 않았고, 재미있기까지 했다. 하지만 여름방학 전, 보름 정도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가게 되었고 예상하지 못한 휴가를 받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진주가 아르바이트 제안을 해왔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화장품 가게 이모가 운영하는 피부숍이라고 했다. 화장품 가게도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피부숍이라니.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아니야, 그건 내 일이 아니야라고 말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날 무엇에 홀린 것인지, 경계를 무너뜨리고 싶다는 마음인지, 변덕스러운 계절 탓인지, 하여간 덜컥 '알겠어'라는 문자를 보냈다. 피부숍에서 무엇을 하는지도 몰랐기에, 얼굴에 화장품 발라주는 정도로 생각했었기에 깊은 고민을 하지 않았다.


진주와 함께 찾아간 첫날, 원장님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피부관리. 체형관리 경력 벌써 20년이야. 단골도 상당하지. 둘 다 이 일은 처음이라고? 일 잘할 것 같아 보여. 체형관리 마사지 팀에 사람이 필요한데, 정확한 지점을 세심한 터치로 자극해서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면 되는 거야"

가만히 듣고만 있던 진주가 웃으면서 얘기했다.

"원장님. 저는 마사지 아르바이트를 해 본 적은 없어요. 하지만 체형관리 마사지를 받아본 적이 있어요. 정말 개운했어요"

"그렇지? 진주가 좀 아네"

원장님이 나를 보며 물었다.

"민정? 민정이라고 했지? 민정이는 마사지 받아본 적 있어?"

"저요? 저는... 한 번도..."

"그래? 일단 내가 좋아야 다른 사람에게도 권할 수 있는 법인데..."

"네?"

"민정아, 저기 탈의실에서 가운으로 갈아입고 올래?. 옷은 벗고 팬티만 입고 그 위에 가운 걸치면 돼"

"네에?"

"뭐. 라. 고. 요?"


은장도를 품고 다니는 조선시대 여인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가운을 걸친다고는 하지만 팬티만 입고 나오라는 것에 대한 당혹함은 말문을 막히게 만들었다. 당황해하는 나에게 진주가 속삭였다.

"원래 체형관리 마사지 받으면 그렇게 하는 거야. 얼른 입고 와. 진짜 좋겠다. 일하러 와서 공짜로 마사지 받고"

윙크를 보내는 진주를 뒤로하고 탈의실로 걸어가는데 진흙 위를 걷는 것처럼 땅속으로 푹푹 빠지는 느낌이었다.

'아... 누굴 탓해.... 내 잘못이지. 뜬금없이 괜히 피부숍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사장님은 왜 갑자기 호프집 리모델링을 하시는 거야... '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가운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있었다.

"일단 뒤로 누워봐... 가운 벗고. 그래야 마사지를 하지"

"네에?"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이렇게 환한 대낮에 옷을 벗고 침대 위에 눕는 일은, 그것도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진주도, 원장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미치겠네. 진짜... 괜히 한다고 해서... 내가 생각했던 건 이게 아닌데... 하긴 생각도 없었지... 그렇다고 해도 이건...'

마사지라고 해도 맥주병 같은 것으로 여기저기 밀어줄 거라고 상상했는데, 차원이 달랐다. 원장님이 진주에게 '이렇게 하는 거야'라는 설명과 수시로 내게 느낌과 의견을 물었다.

"좋지? 몸이 개운해지는 느낌이 들 거야. 이게 마사지의 매력이야. 한번 받은 사람은 또 받고 싶어지거든"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자꾸 생각이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네...에"


"자, 이제 정면으로 누워봐"

"네...에?"

동공에서 지진이 일었다.

"뭐. 라. 고. 하셨어요?"

"이제 뒤는 끝났고 앞쪽에 할 차례야"

그때부터는 아예 눈을 감았다.

'차라리 눈을 감자'

멀쩡한 정신으로는 나를 주무르고 있는 원장님과 눈을 반짝이며 하나라도 배우겠다고 덤비고 있는 진주를 바라볼 수 없었다.


'단번에 거절했어야 했는데....'

피부숍이 뭐 하는 곳인지도 모르면서 따라왔다. 2주 정도 시간이 생겨서 그 기간에 조금이라도 돈을 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본래 시간이 이렇게 늦게 흘러갔던가. 몸의 긴장을 풀어준다고 하는데, 내 몸은 시간이 갈수록 단단하게 경직되고 있었다.

"민정아. 힘을 빼. 힘을 빼고 편안하게 있어. 근육이 많이 뭉쳐있네..."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허공을 향해 외쳤다.

'원장님... 힘이 저절로 들어가요. 도무지 힘을 뺄 수가 없어요. 이건 아니라고요. 제가 생각했던 건 이게 아니라고요'

"자, 끝났다. 민정아 개운하지? 수고했어"

"이제 가서 옷 입고 와. 식물 성분 오일로 조금 더 신경 썼는데, 괜찮았지?"

"네...에"

친절한 원장님의 설명이 정말 좋았다는 진주, 내일 몇 시까지 오면 되는지 재차 확인하는 진주,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한 채 진주의 입만 멍하니 바라보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감사... 합니다"

"민정이는 직접 마사지를 받아봤으니까. 느낌이 올 거야. 내일 아침에 10시까지 오면 돼. 예약 손님이 있어"

"네...에"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이상하게 억울한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일까. 너무 좋았다는 진주,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말을 이어나가고 있는 진주, 어느새 진주는 피부숍 원장님이 되어 있었다. 6월에도 더위를 먹나,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걸었다.

'제정신이 아니었어... 알아보지도 않고...'

'다음에는.. 다음에는.. 무턱대고 하겠다고 덤비지 말아야지...'

'진짜... 진짜...'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고 했던가.

피부숍을 빠져나오는데 진주와 내가 딱 그랬다.


by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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