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다시 Way back home

윤슬작가 짧은 소설

by 윤슬작가

“큰 아들은 Y 대학교, 둘째는 K대 학교를 다니고 있어요”

“정말 대단하세요”

“어쩜, 비결이 뭐예요?”


동네에서 지희 큰 아들이 Y 대학교, 작은 아들이 K대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텐데, 매번 처음 들려주는 말투와 처음 듣는 표정이다. 참 신기한 일이다. 어떤 포지션에 있어야 할지 방황하다가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괜한 심통이 생겨나는 것도 잠시, 제주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는 아들이 궁금해졌다.

「아들, 잘 지내고 있지? 엄마도 잘 지내고 있어 ♡」

아들에게서 답장이 왔다.

「네. 잘 지내고 있어요. 어머니도 잘 지내시죠?」

참 간단명료하다. 늘 그렇듯 오늘도 아들의 문자를 분석하고 재해석해본다.

「네. 어머니.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도 잘 지내고 계시죠? 건강 잘 챙기세요」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혼자 해석하고 나면 진짜 잘 지내고 있다는 생각에 안도하게 된다. 희한한 일이다.


아들은 어릴 때 몸이 많이 아팠다. 아니, 내가 아팠다. 누구 말처럼 죽을 고생하고 낳은 아들이다. 100일까지는 침대에 누워서 생활했다. 하나뿐인 손주 걱정에 친정엄마는 근심 가득이었다. 그런 엄마에게 어디서 나온 배짱인지는 모르겠지만, 큰소리로 단호하게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잘 자랄 거야. 튼튼하게 자랄 거야. 그것도 아주 튼튼하게”

바람대로 아들은 튼튼하게 잘 자라주었다. 너무 튼튼하게 잘 자라주었다. 185cm, 98kg이다. 중학교에 다닐 때는 유도부에서 활동했을 정도였다. 특별한 재능보다는 키가 크고 힘이 좋아 보인다는 이유로.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훈련은 기초 체력이 부족한 아들에겐 힘겨운 일이었다. 어느 날, 울상이 된 아들이 말했다.

“엄마. 나 유도 안 하고 싶어. 엄마. 나 힘들어. 엄마가 얘기 좀 해줘”

아들 바보인 나는 남편 핑계를 대며 선생님께 전화를 넣었다.

“선생님. 남편이 지금부터는 공부에 전념해야 할 때라고 하네요. 죄송해요”


계획에도 없던 아들의 공부는 그렇게 시작이었다. 다행히 공부에 대한 마음은 없었지만 방향은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아들 주위에는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SKY를 꿈꾸는 친구, 외국 유학을 준비하는 친구, 진로탐색을 통해 어떤 직업을 준비해야겠다고 말하는 친구까지, 지희의 둘째 아들이 그중에 한 명이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단짝이었는데, 같은 중학교에 가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다.


아들은 복(福)을 조금 타고난 것 같았다. 주위에서 운동 그만두고 나면 옆으로 빠진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다행히 아들은 그러지 않았다. 친구 따라 강남 가는 분위기였지만, 학원 등록도 자발적으로 선택했다. 성적이 눈에 띄게 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중간은 놓치지 않았다. 학교 선생님과 학원 선생님이 얘기하는 가장 어려운 구간, 중간, 그 중간에 아들이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상담을 갈 때마다 선생님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어렵게 상황을 전달했다.

“공부를 아예 잘해버리면 쉬운데, 원진이는...”

“네. 그렇죠?”

“공부를 못해서 포기하기엔 아깝고...”

“네. 그렇죠?”

유도를 그만둔 후, 대학 입학 전까지 가장 많이 들었던 소리였다. 처음에는 곧이곧대로 믿었다. 하지만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매번 비슷한 소리를 듣던 어느 날, 내 귓가로 이상한 아라비아어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공부를 잘하면 학교를 정하는 것도 쉽고, 방법도 찾기 쉬운데. 원준이는 그게 아니어서 많이 어렵습니다. 운에 따라서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아무래도 어머님께서 판단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결국 원진이와 내 몫이라는 결론이 났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원진이와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희미하기는 했지만 우리 둘은 그 어느 때보다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눴던 것 같다.

“원진아. 대학이 전부는 아니지만, 대학이 중요한 것은 맞아. 너는 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곳 있니?”

“S 대학교”

“어?”

“엄마, S 대학교!”

“서울의 S 대학교?”

배시시 웃으면서 얘기하던 원진이의 얼굴을 떠올리면 지금도 입꼬리가 올라간다.

“아니~~ 제주에 있는 S 대학교!”

“어? 제주?"

순간적으로 속마음을 드러낼 뻔했다.

"원진아, 거기 가기 힘들어. 거긴 네 성적으로는 힘들어..."라고 말이다. 하지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S 대학교? 생각해둔 과도 있었니?”

“관광 복합 학과? 거기 생각해보고 있어”

“그래?”

“지금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어. 엄마, 걱정 마. 내가 좀 더 찾아보고 준비할게”

“엄마 도움 필요하면 얘기하고...”

“넵! 어마마마”

원진이 서글서글한 대답이 환한 미소와 함께 반짝거렸다.


사실 그 이후로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 원진이는 정보를 알아왔고, 필요한 것들에 대해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카페를 통해 궁금한 것을 찾아보면서 차근차근 준비했다. 남아있는 2년 동안 원진이는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했다. 지희와 함께 집 앞에 새로 생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문자가 왔다.

「엄마. S 대학교 합격했어. 친구와 축하 파티하고 친구 집에서 자고 감」

피식 웃으면서 아들의 문자를 분석하고 재해석했다.

「어머니 S 대학교에 합격했어요. 기분이 너무 좋아요. 친구들과 함께 축하 파티하기로 했어요. 밤새 놀고 친구 집에서 자고 갈 것 같아요. 그렇게 해도 되겠죠?」

한결 마음이 편해진 마음으로 아들에게 답장을 보냈다.

「축하해. 재미있게 지내다가 오렴」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는 지희에게 원진이 소식을 전했다.

“잘 됐네. 자기가 원하는 곳에 합격하면 된 거지”

“그렇지. 참, 진수는 합격했지?”

“응. 지난주에 들었어. 오늘 출국한다고 했어. 친구들하고 일본 간다고 하던데...”

“너도 축하해. 고생 많았어”

“원진이도 잘 됐어. 진짜”

딱 거기까지였다. 멈추는 지점을 우리 둘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넓은 들판에서 자유롭게 날아오르려는 아이들을 애써 커피 잔 속으로 끌어들이지 않았다.


지희는 초등학교 학부모 모임에서 만났다. 원진이와 지희의 둘째, 지훈이가 같은 반이 되면서 알게 되었다. 나이가 동갑이라는 사실은 보다 확실한 연결고리를 만들어주었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고백하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는 경쟁심에 공부 잘하는 진수와 공부에 흥미 없어 보이는 아들로 인해 혼자 속앓이를 했었다. 하지만 지희와 나는 서로에게 다른 종류의 아픔과 슬픔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후로는 갈림길이 생길 때마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응원해 주는 사람으로 남기로 했다. 우리 모두 아이를 처음 키우는 사람이라는 것, 자기 아이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는 위, 아래는 없다는 것, 내 아이만큼이나 친구 아이도 소중하다는 것 등등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들이 있어 불편함 없이 지금까지 잘 지내오고 있다. 오히려 주위의 시선이나 맥락 없이 던지는 조언이 마음을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진수 엄마와 같이 있으면 힘들지 않아요?”

“괜히 비교도 되고, 원진이가 못나 보일 수도 있고, 나라면 그럴 것 같아요”


주변에서 들려오는 어떤 이야기도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지희와 나의 관계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러고 보면 원진이만 아니라 나도 복(福)이 좀 있는 사람 같다.


멈춘 시간 속 잠든 너를 찾아가

아무리 막아도 결국 너의 곁인 걸

길고 긴 여행을 끝내

이젠 돌아가 너라는 집으로

지금 다시 Way back home


숀의 <Way Back Home> 노래와 함께 전화가 울렸다.

지희였다. 학부모 강연이 끝난 모양이다.

“여보세요?”

“어디 있어? 안에 있는 줄 알았는데, 강연 끝나고 보니까 안 보이네”

“밖에 나와 있어. 잘 끝났어?”

“응. 어디야?”

“신호등 건너편에 바로 보이는 카페, 나 아메리카노 마시고 있는데, 뭐 마실래?”

“아메리카노”

“천천히 와”

“응”


숀의 노래를 다시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볼륨을 높였다.


멈춘 시간 속 잠든 너를 찾아가

아무리 막아도 결국 너의 곁인 걸

길고 긴 여행을 끝내

이젠 돌아가 너라는 집으로

지금 다시 Way back home


by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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