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꺼지지 않는 방

윤슬작가 짧은 소설

by 윤슬작가

아버지 주무시는 것을 확인한 후, 불을 껐다.


여전히 많은 부분이 낯설다. 다정다감했던 엄마, 엄마가 아무 말도 없이 소풍을 끝냈다. 어떤 조짐이라도 보였더라면, 어디가 아프다고 얘기라도 있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급성심근경색. 뉴스에서 간간이 들을 때는 '설마 그럴 리가'했다. 그저 '안됐다'라는 마음이 전부였다. 그러면서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단정 지었던 기억이 난다. 그랬던 나에게, 전혀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이 불쑥 찾아왔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날 저녁, 아버지와 엄마는 외할아버지 제사에 다녀오셨다. 두 분은 다정다감한 편은 아니셨지만 그렇다고 사이가 아주 나쁜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가 조금 무뚝뚝한 편에 속한다면, 그에 반해 엄마는 정이 많은 분이셨다. 아버지는 대부분 ‘그런가 보다’에서 끝났지만, 엄마는 달랐다. 무슨 일이지,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는지,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한 것이 많았다. 그래서였을까. 엄마는 늘 시집을 가지도 않은 우리를 붙잡고 하소연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면 맞장구를 해줘야 되는데, 네 아버지는 그런 게 없잖아..."

"너희는 얘기 잘 들어주는 사람, 꼭 그런 사람 만나도록 해. 행복, 그거 별거 아니야. 얘기 잘 들어주고, 맞장구쳐주고, 그러면서 사는 게 행복이야"


너무 많이 들어서, 너무 자주 얘기해서 적당히 엄마 눈치를 살펴 화제를 다른 것으로 바꿨었다. 하지만 오늘처럼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날이 찾아올 줄 알았더라면, 그랬더라면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와 눈을 맞추면서 끝까지 이야기해보라고, 하고 싶은 말 모두 쏟아내도 된다고, 밤새도록 들어줄 수 있다고, 그렇게 얘기해 주었을 턴데. 그리움 가득한 눈물이 또 쏟아진다.


엄마의 장례식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침대에 몸을 웅크린 채 혼자 숨죽여 울고 있는 아버지를 발견했다.

"아버지, 아버지... 괜찮으세요?'

"아버지...”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본래 말수가 없던 아버지는 엄마의 죽음 이후 자물쇠로 잠근 것처럼 입을 굳게 닫으셨다. 아버지께서 받은 충격을 자식인 내가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 갑작스러운 헤어짐, 영원한 이별, '밤새 안녕'이라고 했던가, 잠자리에 함께 누웠다가 혼자만 눈을 떴다는 사실에 아버지는 힘들어하셨다. 익숙한 세상의 문을 열 동안, 전혀 다른 세상의 문을 열어 버린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충격이 커서일까. 아버지는 장례식 동안, 장례식이 끝나고도 지금까지 음식을 전혀 입에 대지 못하신다.

"아버지. 아버지. 일어나셔서 조금이라도 드세요"

"아버지 나중에 기력 없어져요. 얼른 이거라도 좀 드세요"


오늘은 어떻게 해서든 조금이라도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 거실에 있는 여동생을 불렀다.

"지희야, 오늘은 꼭 뭐라도 드시게 하자"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는 주말마다 여동생과 내가 함께 내려와 아버지와 하룻밤을 보내고 간다. 계속 그럴 수는 없겠지만, 당분간 아버지가 몸을 좀 추스를 때까지 주말만이라도 내려오자고 남편들에게 양해를 구해놓은 상황이다.

"지희야, 진짜 오늘은, 몇 숟가락이라도 드시게 하자"

"언니... 그러게 오늘은 조금이라도 드셨으면 좋겠어. 진짜..."

밥상을 가져와 지희와 함께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버지, 아버지. 조금이라도 드세요. 네?..."

"아버지. 언니하고 저, 둘 생각해서라도 조금만 드세요. 네?..."

계속 고개를 숙이고만 계시던 아버지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세웠고, 밥상 위로 억지로 손을 올렸다.

"아버지. 잘 생각하셨어요. 제발 조금이라도 드세요. 한 숟가락이라도"

쇠고깃국을 한 숟가락 떠서 입으로 가져가는가 싶었는데, 아버지는 이내 숟가락을 도로 내려놓았다.


"내가, 내가 말이다"

"네..."

"내가, 느거 엄마한테 불 끄고 자자고 했어. 내가, 내가 그랬어..."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지... "

"아버지, 엄마 생각 나시죠? 우리도 그래요...."

"근데 아버지... 엄마가 아버지 이렇게 지내는 거 하늘에서 보시면 많이 속상해하실 거예요..."

"아버지. 언니 얘기 들었죠? 그러니까 아버지..."

"아니야, 아니야. 그게 아니야"

아버지는 한 손으로 눈물을 훔치더니 천천히 밥상을 밀어냈다.

"아버지. 조금만 더 드세요..."

"그게 아니라..."


"내가 그날 느거 엄마한테 그랬어. 그만 불 끄고 자자고... 내가 불 끄자고 하지 않았어도..."

아버지는 엄마가 돌아가신 전날, 그러니까 같이 잠자리에 누웠던 마지막 날의 얘기를 들려주셨다.

"여보, 울 아버지가 나를 자전거에 태워서 읍내 곳곳에 데리고 다녔잖아.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 그 생각만 하면 기분이 좋아져..."

외할아버지 제사에서 돌아온 날이어서인지 엄마는 부쩍 외할아버지 얘기를 많이 한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나 시집가서 아이가 안 생긴다고 얼마나 걱정하셨는지. 참 올해는 꼭 지희한테도 애기가 들어서야 할 텐데..."

“벌써 결혼하고 3년이나 지났는데 왜 소식이 없지? 지희 말로는 다른 문제는 없다던데..."

"그게 인력으로 되는 일이야?"

"요새 수희한테는 통 연락이 없네... "

“지난번에 보니까 수희가 얼굴이 핼쑥해서 애가 맘고생이 많은지...”

엄마의 얘기는 끝이 없었다고 한다.

끝날 것 같으면 이어지고, 이제 끝났나 싶으면 또 다른 이야기를 꺼내왔다고 한다.

그러다 나중에는 이상한 소리를 했다고 한다.

"당신은 나 만나서 행복했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

"아니... 당신은 행복했는지 궁금해서..."

"이 사람이 음복도 안 했는데, 취했나... 할 얘기가 없으면 얼른 자..."

“사실 울 아버지만 아니었어도 안 만났을 텐데. 아버지가 이만한 사람 없다고 자꾸 얘기하길래..."

"진짜 그럴까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정신 차려보니까 결혼식이 끝나 있었어...."

이불을 덮고 관심 없는 척하면서도 아버지는 모두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작은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겨우 참았다고 하셨다.


장인어른.

사람이 가진 것이 없어도 이만하면 자식들 굶겨 죽게 만들지 않는다고, 나를 누구보다 믿어줬던 장인어른, 그렇게 황망하게 돌아가실 줄 몰랐다.

“장인어른이 사람 볼 줄 아신 거지”

피식, 이번에는 엄마가 이불 속에서 작게 웃었다고 한다.

"나 아주 좋지는 않았는데 괜찮았어. 당신이 내 얘기 조금만 더 잘 들어주면 좋을 텐데. 나이 들면 좀 변한다고 하던데, 변하려나?"

“실없는 소리 그만하고, 얼른 불 끄고 잠이나 자자고...”

“수희하고 지희가 있으니까 그래도 다행이야. 아들 없어서 당신은 별로였지?”

“어허. 이 사람이 자꾸 실없는 소리를...."

"나는 수희하고 지희가 내 얘기 잘 들어줘서 좋은데, 당신은 좀 심심하지?"

아무리 해도 얘기가 끝나지 않겠다 싶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난 아버지가 불을 끄면서 얘기했다고 한다.

“글쎄, 알았다니까...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 얼른 잠이나 자자고..."


아버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것이 엄마와의 마지막 대화가 될 거라고는.

엄마가 유언을 남기고 있을 거라고는.

그렇게 엄마를 떠나보낸 후부터 아버지는 하루 종일 불을 켜놓고 생활하신다. 환한 대낮에도. 24시간 불을 끄지 못하신다. 지희와 내가 아버지와 함께 보내기 위해 내려온 토요일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자신이 불을 꺼서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생각하시는 아버지. 불을 끄면서 엄마와의 인연을 끊었다고 생각하시는 아버지. 엄마가 떠난 그날, 아버지 마음도 불이 꺼졌다.


by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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