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윤슬작가 짧은 소설]

by 윤슬작가

참을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인 채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느꼈다. 무작정 차를 몰아 집을 나왔다. 새벽 6시, 아직 남편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던 그녀, 사실 처음에는 버스를 탈 계획이었다. 하지만 '자유'라는 이름에 버스는 어울리지 않았다. 시동을 켜 운전석에 몸을 기대었다.

'이혼하는 게 나아. 같이 사는 건 너무 힘들어. 아이들 모두 결혼시켰고, 이제부터라도 자유롭게 사는 거야'

멋진 다짐으로 엑셀에 발을 올렸다. 하지만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오는 데 이십 분이나 걸렸다. 양쪽에 주차한 차들이 너무 바짝 붙여놓은 탓에 초보운전자의 심장은 땅바닥에 붙어 떨어질 줄 몰랐고, 겨우 억지로 떼내어 조금씩 밀고 나왔는데 그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그렇다고 해도 자유에 대한 그녀의 갈증은 고속도로를 향해 달리는 동력이 되어주었다.

몇 년 전 결혼한 딸이 '운전면허증은 있어야 한다'라고 얘기하면서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해 주었다. 요즘같이 좋은 시절,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다니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딸의 마음이 내심 고마웠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운전면허증에 도전했다. 무엇보다 의아했던 것은 동그라미, 엑스로 자신을 평가받는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 싫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그라미가 모두 채워진, 100이라는 숫자 앞에서는 어떤 희열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쓸데가 있는 사람, 쓸모 있는 사람,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혼자 피식, 웃으면서 실기시험을 준비했다. 그런데 실기시험은 만만치 않았다. 필기시험과는 달리 실기시험은 단번에 붙지 못했다. 걱정했던 딸은 조금 벗어난 외곽에서 실기 연습을 도와주었고, 다행히 딸의 노력에 부응이라도 하듯 두 번째 시험에서 합격했다. 가고 싶은 곳에 마음껏 갈 수 있는 마법 양탄자를 얻었다는 마음에 식은땀 흘리면서 도로연수를 마쳤다. 그리고 그날 딸의 끈질긴 설득에 이끌려 중고차를 계약했다. 자꾸 미루면 안 하게 된다는 이야기, 운전면허만 따고 쉬어버리면 자신감이 줄어든다는 이야기, 나중에는 어떻게 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 충분히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그게 석 달 전이다.


핸들을 붙잡은 그녀의 손목에 힘이 들어간다.

'새벽 6시에는 차도 없을 테니까, 괜찮을 거야'

마음을 다잡고 서서히 자동차를 움직였다. 그런데 출발할 때의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그녀의 몸은 자동차와 한 몸이 되지 못한 채 자꾸 부딪쳤다. 5분, 10분쯤 흘렀을까.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이 그녀의 몸을 흥건하게 적셨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자유롭고 싶다는 마음으로 집을 나왔는데 핸들을 붙잡은 손이며, 정신없이 좌. 우를 살피는 두 눈에는 자유는 고사하고 알 수 없는 긴장감, 두려움으로 가득 차 버렸다. 자석처럼 핸들에 달라붙은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옆 차선에서 빵빵거리며 지나는 자동차들의 경적은 그녀의 머릿속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새벽에는 차가 없을 줄 알았지...'

'그냥 버스 탈 걸 그랬어...'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바깥 풍경은 마음과 다르게 빠르게 변해갔다. 부쩍 많아진 차들, 빵빵거리는 소리.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좌회전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우회전만 계속하던 중, 몇 바퀴째 같은 편의점 앞을 지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좌회전을 계획하고 닫힌 창문을 열어 힐끗힐끗 뒤를 보면 앞머리를 내밀었다. 그때였다.


쿵!

우지끈!


뭔가 묵직한 것으로 등을 한대 세게 때린 느낌이었다.

허리에 짧은 전율이 느껴지면서 뒷머리가 좌석의 헤드레스트에 닿았다.

'이건 뭐지?'

차에서 내려야 한다는 것도, 어떤 일이 그녀 모르게 생겨났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컴퓨터를 초기화한 것처럼 머릿속을 지우개로 하얗게 지운 느낌이었다. 갑자기 후들후들 다리가 떨려오면서 도무지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100점짜리 시험지에 뭐라고 적혀 있었는데, 도로 연수할 때 선생님이 어떤 얘기를 해준 것 같은데, 딱 거기서 생각이 멈추고는 더 이상 진척이 없었다.


똑똑똑.

똑똑똑.

"아줌마. 차에서 좀 내려보세요"

"네...에...?"

참하게 생긴 청년의 입에서 다행히 험한 말은 나오지 않았다.

"아줌마... 거기서 갑자기 들어오시면 어떻게 해요?"

"네?"

"미리 신호를 주셔야 줘..."

"갑자기... 아닌데요... 창문 열어서 보고 있었는데요..."

"하여간... 보험회사에 전화하세요. 저도 보험회사 부를게요"

"보험회사? 왜요?"

"왜요라니요? 보험회사에서 나와 사고 처리해야죠"

"아... 어디에?"

"아줌마... 자동차 보험 계약하셨으니... 거기 전화하시라고요"

"제는 계약 안 했는데요..."


청년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뚫어져라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줌마 정말 보험 안 들어놓으셨어요?"

"제가 안 하고 남편이 했는데..."

"난 또... 남편분께 전화하셔서 보험회사 연락하라고 하세요"

"네?..."

"남편분이 보험회사 아시니까 전화하시면 되잖아요..."

얘기가 길어져서 화가 난 건지, 시간에 쫓기는지 참한 청년의 얼굴이 조금씩 달아오르고 있었다.

"네...에..."

가뜩이나 풀이 죽은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더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전날 다투면서 "서로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살자, 앞으로는 남남처럼 살자"라고 먼저 큰소리쳤는데, 그래서 보란 듯이 아무 말도 없어 새벽에 길을 나왔는데, 이런저런 속 사정을 모르는 청년이 당당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자꾸 재촉했다.

“아줌마”

"아줌마. 늦었어요..."

"빨리 사고 처리하고 가야 되니까 서두르세요"

"네...에..."

뚜... 뚜... 뚜...

얼마나 흘렀을까, 전화기 너머로 잠이 덜 깬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 보... 세.. 요"

"난데..."

“네? 어?”

“저기...”


걱정 없어 보이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닳아버린, 다른 일에는 관심 없다는 무심한 온도였다. 이를 어쩌나.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지. 마치 패자가 승자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처럼 속에서 따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보다 아까부터 계속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청년의 시선은 더 따가웠다.

“저기..."

"..."

"내 차 보험회사 어디지?"

“뭐? 보험... 회사...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니... 그게”

"..."

"보험 회사가 어딘지 얘기해달라고..."

"보험회사?...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뭔가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전화기 건너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 지금 밖이야?"

"어..."

"혹시... 차 몰고 나갔어?... 사고야?”

간신히 붙잡고 있던 정신줄이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자존심을 내세울 상황도, 마음도 아니었다.

“그래... 그래, 그렇다고..."

"... 알았어. 알았으니까... 지금 어디 있는데?"

"그러니까. 집에서 나와서 편의점 있고... 거기서..."

그다음부터는 어떻게 됐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녀의 남편이 왔다는 것, 참하게 생긴 청년에게 미안하다며 사과하던 남편의 뒷모습이 간간이 떠오를 뿐이다.

"몸은 괜찮고?... 병원 안 가도 돼?..."


청년과 이야기를 끝낸 후, 전날 다툰 기억이 없는 사람처럼, 걱정이 잔뜩 담긴 표정으로 바라보는 남편을 피해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신경 쓰지 말고 살자고 했는데...'

'남남처럼 살자고 그랬는데...'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by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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