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가야지

윤슬작가 짧은 소설

by 윤슬작가

조금 전까지 부엌에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남편이 보이지 않아 당황했다. 잠시 바람 쐬러 나갔다 보다 생각했다. 빨래와 설거지를 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30분이 흘러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고, 한번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에 신발을 신고 현관문으로 나설 때였다. 그때 가지런히 놓여 있는 남편의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또 어머님 방에 들어갔구나...'

여섯 살 많은 남편은 나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남편은 내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어떤 분위기가 몸 전체에서 흐르는 사람이다. 버스 노선을 모르는 나에게 그림을 그려가면서 하나씩 설명해 주고, 조리원에서 만난 사람들과 모임이 있다고 하면 자신에게 아이를 맡겨놓고 마음 편하게 다녀오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술을 좋아하지만 소주 한 병을 넘기지 않았고, 맥주 한 잔만 마셔도 대리운전을 부르는 사람이다. 그런 반듯함에 대해 누군가는 신사라고 말했고, 다른 누군가는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살다 보면 이건 아닌데,라는 말이 나올 법한데도 남편은 내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밤공기가 따뜻해 저녁을 먹은 후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자기는 정말 효자였을 것 같아. 진짜...”

내 이야기에 남편은 피식 웃으면서 웃었다.

“아니. 그 반대야. 불효자였어. 그것도 많이...”

“에이, 설마 자기가?”


남편 17살 때일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두 아들을 데리고 상경하셨다고, 그때부터 손에 붙잡히는 일은 무엇이든 악착같이 덤벼들었다고 하신다. 노점상은 물론 김밥 장사, 떡집, 중국집 나중에는 남는 시간에 우유배달까지. 하지만 그때의 남편은 그런 일을 하는, 정확하게 ‘먹고살기 위한’ 일을 하는 어머니가 부끄러웠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가 있는 근처로는 걸음을 하지 않았고, 대학 입학해서 공부하라는 어머니의 말을 귓등으로 넘겼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남편은 구미에 있는 전자제품을 조립하는 회사에 취직해 혼자 내려왔다고 한다. 제법 공부를 잘했던 남동생을 뒤로한 채 말이다. 다행히 남동생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다고 한다.


두 아들이 각자 자신이 먹고 살 궁리를 하고 있었는데도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살고 있던 집을 팔아 더 작은 곳으로 이사했다는 사실을 구미에 내려오고 2년이 지나서 알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남편이 어머니 집을 2년 동안 찾지 않았다는 얘기가 되는 셈이다. 그때는 모든 것이 싫었다고 한다. 어머니의 얼굴을 보는 일도,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와서 다시 무언가를 붙잡고 깎거나 오리거나 붙이는 모습이 싫었다고 한다. '지긋지긋'이라는 단어가 자신의 입에서 수시로 튀어나왔고, 그 지긋지긋한 삶을 버티기 위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지탱하고 있는 어머니의 손과 발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하다. 구미에서 부산으로, 다시 대전으로 회사를 여러 곳으로 옮겨 다니는 동안 남편은 어머니에게 전화로만 살아있음을 전했다고 한다.

“풀 붙이는 거 그만 좀 하세요”

“밤 깎는 일, 아직도 하세요?”


조금 솔직히 얘기하면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 남동생이 있다는 생각에 회피하면서 지냈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들춰내고 싶지 않은 것이 있는 것처럼, 남편에게는 서울이, 서울에 있는 어머니와 남동생이 그랬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들과 거나하게 회식하고 자취방으로 향하는데 현관문 앞에서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형. 형, 어머니 치매 진단받았어”


이번 일은 그냥 지나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남편은 다음날 회사에 가서 휴가를 받아 서울로 올라갔다고 한다. 집이 어디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용케 찾아들어갔다고 한다.

‘끼익’ 대문 여는 소리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섰을 때 어머니와 남동생이 소리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때였다.

“준범아. 이제 오는 거야?”

“네? 네”

“요즘 공부한다고 힘들지?"

“네?”

“이제 얼마 안 남았어. 그래도 대학은 가야지”

“네? 어머니?...”

“조금만 기다려. 준희도 앉아 있고, 엄마가 얼른 밥 가져올게”

두 아들을 향해 해맑게 웃으면서 일어서는 어머니를 말릴 사이도 없었다.

어머니가 자리를 뜨자 그제야 남동생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계속 어머니가 이상한 거야. 회사 마치고 집에 오는데, 자꾸 나더러 형 이름을 부르시잖아. 준희라고 몇 번을 이야기하고 나면... 형은 요즘 공부한다고 통 얼굴을 못 보는 것 같다고... 언제쯤 오려나... 그러시잖아"

"어... 그래"

"그래서 병원을 모시고 갔는데 치매가 많이 진행되었다고 해... 요즘 약물치료 중이신데, 형한테는 알려야 할 것 같아서...”

“더 빨리 연락하지. 그러면 형이.... 형이... ”

뭔가를 할 수 있는 입장이기를 거부했으면서, 가까운 곳에 서 있는 것을 외면했으면서, 이제 와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 소용없다고 느껴졌는지, 남편은 입 밖으로 나오려는 말을 돌돌 말아 목구멍 속으로 밀어 넣었다고 한다.

'그래도 빨리 얘기하지... 형이 조금이라도... 형이랑 같이...'


밥상 앞에서 어머니는 입안으로 밥이 들어가는 모습이 마냥 즐거운지, 아이처럼 계속 얘기를 이어나갔다고 한다.

“요즘 힘들지? 그래도 조금만 고생해"

"네..."

"준범이 너도 알잖아. 네 아버지, 너 대학 보내는 게 꿈이셨잖아”

“네...”

“준희야. 너도 형처럼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가야지?”

“네...”

“너희 대학 졸업식에 가보는 게 네 아버지 꿈이었잖아...”

“네...”

“이번 물김치가 진짜 달아. 얼른 많이 먹어... 자, 한 숟가락 푹 떠서...”

“네...”


늦은 나이, 그러니까 27살의 남편이 대학 정문을 들어선 것이 그해 겨울이었다. 그 이후는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강의실 문밖에서 서성이는 남편에게 말을 먼저 건넨 사람도 나였고, M.T에 같이 가자고 얘기한 사람도 나였다. 선하게 웃는 모습이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어도 가슴 안에서 좋은 기운이 솟아나는 느낌이었다. 마음이 끌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그 자연스러움은 졸업을 하자마자 주위 반대에도 불구하고 혼인 신고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어머니는 남편과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5년째 되던 겨울, 아버님을 만나기 위한 여행을 떠나셨다. 뱃속에는 첫 손주가 자라고 있었고, 남편이 대학 졸업 후 다시 잡은 직장에서 대리로 승진되던 해였다. 어머니를 보내드린 후 남편은 그럭저럭 잘 보내는 것 같았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저녁 먹고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면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화장실에 있나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남편은 나오지 않았다. 화장실에도 없고, 어디 갔지 궁금해하며 찾아보다가 어머님 방을 열게 되었다. 혼자 웅크리고 앉아있는 남편을 발견하고는 '여기서 뭐하고 있어?'라고 물으면서 다가갔다가 발이 땅바닥에 붙은 것처럼 얼어버렸다. 결혼식 사진을 들고 울고 있는 남편, 두 손으로 환하게 웃는 어머니 사진을 쥐고 있는 남편. 그랬다. 남편은, 남편은 아직 어머니를 보내드리지 못했던 것이다.

"여... 보"


따뜻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렀지만 남편은 대답이 없었다. 혼자 아주 먼 곳에서 소리 없이 꺼져가고 있는 가로등 사이를 걷고 있었다.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조금의 위로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두 손으로 가만히 어깨를 감싸 안아주고는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다. ‘그래, 나도 아직 어머님 얼굴이 생생한데, 작은방에서 문을 열고 나오시던 어머님이 생생한데... 자기는, 자기는 더하겠지...'

결혼식을 대학 졸업식으로 착각하신 어머님, 결혼식을 마친 후 내 손을 꼭 잡아주었던 어머님, 끝나지 않는 영화의 엔딩 장면처럼 나는 그날을 잊어본 적이 없다. 단 하루도.


“선생님, 준범이 공부시킨다고 고생이 많으셨죠? 아이고,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


by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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