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슬작가 짧은 소설
"몸이 아프면 모든 것이 힘들고 귀찮아지는 것 같더라. 내 몸을 챙기는 것이 가장 먼저인 것 같다. 몸 잘 챙겨"
세상에 이런 친절한 사람이 없다. 허리가 아픈 페이스북 친구에게 남기는 댓글은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한 남편이었다.
서울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여자 후배에게는 하늘에서 내려온 약간 뚱뚱한 천사였다.
"고생 많지? 나도 예전에 길을 잃어서 고생한 적이 있었어. 늦게 도착해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아. 참 예뻐"
놀라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후배의 결혼식에 남긴 축하 인사는 기절초풍(氣絕-風)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축하한다. 살다 보면 가끔 힘든 날도 있지만, 그래도 어두운 길을 혼자 걷지 않는다는 것에 위로가 되는 날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결혼 축하하고, 잘 살아라"
정말 이 사람이 내가 함께 살고 있는, 이십 년 동안 같은 이불을 덮고 살아가는 사람인가 싶었다.
남편에게 페이스북을 가르쳐준 사람은 나였다. 친구들과 소식을 나누는 것도 즐겁고, 간혹 잘 모르는 페이스북 친구와 댓글을 주고받는 재미가 쏠쏠했다. 매일 신문만 보고, 핸드폰으로 뉴스만 찾아보는 남편에게 이번 기회에 한번 SNS를 배워보라고 적극적으로 권해준 사람이 나였다.
"페이스북, 이거 생각보다 재미있어. 페이스북에 친구가 늘어나는 것도 좋고. 또 댓글을 달아주면 기분도 좋아지고"
SNS에 대해 별로 관심 없었던 남편은 그렇게 페이스북에 가입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슬쩍, 슬쩍 읽고 지나가는 분위기였다. 한 달쯤 지났을까. 내가 올린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눌러주었다.
'이 사람, 페이스북이 영 싫지는 않은 모양이네'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남편의 발전은 실로 놀라웠다. 친구들과의 모임 얘기, 초등학교 동창회, 대학 동창들과 떠난 여행 소식에 대해 '좋아요'로 끝날 줄 알았는데, 남편은 서서히 댓글과 친분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좋은 시간이었네"
"좋은 여행이었네"
"좋아 보이네"
남편의 아주 짧은 댓글에 친구들 반응은 대단했다.
"지희 남편 정말 다정다감해"
"야, 넌 진짜 시집 잘 갔어"
"와이프 페이스북에 댓글 달아주는 남편 우리 중에 없잖아?"
"그러니까..."
"우리 남편은 일부러 모른 척하던데...."
"그러면 다행이지? 우리 남편은 거긴 또 언제 갔냐고 묻는데... 완전 깜짝 놀랐어"
"내 친구도 남편 눈치 보여서 페이스북 안 한다던데..."
"그런 거 보면 부부끼리는 페이스북 서로 안 보는 게 나은 것 같기도 하고..."
친구들과 남편의 페이스북 반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잠깐이지만 기분이 좋았다. 어떻게 표현하면 적당할까. 나는 이 정도 대접은 받고 살아, 남편에게 난 이런 사람이야, 아니 이 정도는 기본이지,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남편이 페이스북에 친구와 후배에게 남긴 댓글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몸이 아프면 모든 것이 힘들고 귀찮아지는 것 같더라. 내 몸을 챙기는 것이 가장 먼저인 것 같다. 몸 잘 챙겨"
"고생 많지? 나도 예전에 길을 잃어서 고생한 적이 있었어. 늦게 도착해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아. 참 예뻐"
"축하한다. 살다 보면 가끔 힘든 날도 있지만, 그래도 어두운 길을 혼자 걷지 않는다는 것에 위로가 되는 날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결혼 축하하고, 잘 살아라"
목욕탕에서 미끄러지면서 다리를 다쳐 고생한 적이 있었다. 친구와 함께 동시에 넘어져 둘 다 몇 달을 집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친구 남편이 몸이 아픈데 집에서 무슨 요리를 하냐면서 맛있는 음식을 사 오거나 외식을 권할 때, 남편은 집 밥이 최고라는 생각을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자기는 김치만 있으면 밥 먹는 사람이라며 대충 먹으면 된다면서 말이다. 김치만으로 밥 먹는 사람을 곁에 두고 있는 나에게 "당신은 행운아야"라는 소리를 빠뜨리지 않았다. 평소 아프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던 터라,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아프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내가 다리를 다쳤다는 것, 그리고 붕대를 감고 생활한다는 것은 기억 저편에 던져놓은 듯한 남편, 그런 남편을 보면서 어쩌면 내가 뭔가를 잘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참 예뻐"라는 댓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내가 이날 아침에 뭘 잘못 챙겨주었나, 혼자 생각했다. 20년 전, 커피숍에서 프러포즈를 하면서 들었었나, 큰 아이 임신 소식을 전했을 때였나, 이미 나도 들었던 말이라고 기억을 더듬어보지만, 도무지 떠오르는 장면이 없었다. 지난번에 수원에서 지하철을 잘못 타서 고생했다는 얘기를 전했을 때, 남편은 건조한 단어를 무심하게 던졌었다.
"좀 잘 보고 다니지"
그런 남편이지만, 후배의 결혼을 축하하는 남편의 댓글은 정성 가득이었다.
'어두운 길을 혼자 걷지 않는다는 것에 위로가 되는 날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절정이었다. 당황스러웠다. 남편이 복수 전공을 했었나, 요새 따로 글공부를 하고 있나, 심경의 변화가 생겼나, 남자도 갱년기가 온다는데, 벌써 갱년기인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남편은 '좋은 시간이었네, 좋은 여행이었네, 좋아 보이네'였다. 그랬던 남편이 햇살 가득한 봄날 같은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다. 남편은 내가 자신의 페이스북 댓글을 봤다는 것도 모르는 눈치이다. 며칠째 고민이 깊다.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말을 안 하려니 억울하고, 달랑 댓글 몇 개 읽고 이야기한다고 핀잔을 줄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퇴근하는 남편을 볼 때마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 탓에 마음이 복잡해진다.
'나한테 쓴 댓글이랑 다른 사람들한테 쓴 댓글이 왜 그렇게 달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겠던데?'
'댓글, 진짜 당신이 쓴 거 맞아?'
'그 후배 진짜 예뻐?'
'아니, 아니. 보다 좀 더 근사하게 얘기해야 되는데, 뭐가 좋을까...'
그래, 이게 좋겠다.
'당신, 남의 편 아니고 내 편이지?'
by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