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달라진 오늘이 느껴지니?

by 윤슬작가

"아이큐가 180이어야 풀 수 있다는데, 내가 그걸 해냈다니까..."


갑작스럽게 가지고 온 종이 한 장에 당황했다. 몇 시간 동안 풀어서 해결을 했다는 말과 함께 한번 풀어보라고 전하는데, 순간적으로 떠오른 기억이 하나 있었다. 부끄럽지만 열몇 살, 아니 이십 대 초반까지 생각나면(가끔은 의도적으로) 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떤 의도였는지 알아볼 필요도 없이, 허세였다.


"아이큐가 좋다고 하잖아. 어떻게 아이큐 좋은 아이가 점수가 이것밖에 나오지 않느냐고 그랬다니까..."

"아이큐도 좋은데, 다른 일을 해야 되는데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느냐는 소리를 듣고 살아간다니까..."


아이큐, 때에 따라서는 점수였고, 어떤 때에는 상황이나 업무와 연관 지어 나를 변호하는 단어를 썼다. 물론 지금은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된 터라 부끄러움을 알고, 근거 없는 허세임을 확실히 알기에 입 밖으로 드러내는 일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렇게 잊고 살았는데, 종이 한 장을 가져와 이걸 풀면 180이라는 소리에 그날의 기억이, 그날의 허세와 부끄러움이 한꺼번에 날아들었다. 가슴속에 숨겨두고 싶었던, 어디에서도 만나고 싶지 않은 약한 과거였다. 그런데 누군가에겐 현재였고, 여전히 되뇌는 말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는데 연민 비슷한 감정이 올라오면서 마음이 안타까웠다. 아이큐 180을 붙잡고 있은 마음속에 숨어 있는, 생(生)을 붙잡고 싶은 간절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큐라는 끈, 과거라는 끝을 잘라낼 수 있을 때 더욱 자유로워질 거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입안을 맴돌았다. 지친 마음에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발동한 거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차라리 '나 정말 잘 살아왔지?','이 정도면 나도 괜찮은 사람이지?'라고 묻는 방식을 선택해 보라고 조언해 주고 싶었다. 나는 그랬던 것 같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의 나의 속마음은 이러했다. 인정받고 싶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 잘 하고 있어라는 얘기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였다. 아이큐를 들먹이며 에둘러 이야기하는 것 뒤의 진실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였다. 한동안 그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지금도 완벽하지는 않다. 다만 발견했을 뿐이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지,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식의 과정에서 어떤 것들이 나올 수 있는지에 대한 적절한 단서를 몇 가지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기로 마음먹으면서 새로운 방식을 찾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어떤 상황은 그런 마음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어떤 노력은 분별력을 발휘하는 쪽으로 시간을 등에 업고 지나왔고, 또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미 이십 년도 더 지난 지금, 옛 기억을 다시 소환하여 나에게 물어본다.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에서 조금 벗어낫니?"

"과거를 부정하지는 않지?"

"조금 달라진 오늘이 느껴지니?"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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