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 7시 50분, 남편과 함께 야간산행을 다녀왔습니다. 앞산은 케이블카를 이용해 둘러본 적도 있고, 어쩌다 길을 잘못 들어 의도하지 않았는데 앞산 종주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일 이후, 아이들은 앞산을 가자고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그 기억이 앞산에 대한 마지막 기억인데, 이번에 새로운 추억을 하나 더 쌓았습니다.
야간 산행.
8시가 다 된 시각이라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낯선 길이 더욱 어둡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 위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왔고, 조금씩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연이어 아래쪽에서 한 명 두 명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그제야 우리의 예상이 빗나갔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몸을 뒤로 한 채 하산하는 사람, 물통을 양쪽에 들고 달리기를 하듯 뛰어가는 사람, 지나가는 외국인에게 "hi"라고 말을 건네는 아빠와 어린 두 아들. 그 외에도 다양한 이웃의 모습을 보면서 늦은 시각 앞산을 찾은 사람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앞산 전망대까지는 1.4km.
우선은 안일사에 도착하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거리는 0.7km.
700미터. 조금 만만하게 보았던 게 사실입니다. 평지 길이라면 거뜬하게 달려갈 수도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렇지만, 아뿔싸. 평지 길이 아니라 완전히 급경사, 엄청나게 가파른 길이었습니다. 100미터를 가는 동안 숨 고르기를 몇 번이나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거 전망대까지 계속 이렇게 되는 게 아닌가 슬슬 두려워졌습니다.
"이거 완전히 사람 잡는 코스인데?"
"여기만 지나면 된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빡세네..."
"안일사까지만 이렇고, 그다음은 괜찮은 거야?"
"안일사까지만 고생하면 된다고 했어..."
대구 앞산 야간 산행 관련해서 정보를 알아온 남편도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인 것 같았습니다.
"여기는 내려올 때 더 조심해야 된다고 했어..."
"진짜 가파르다..."
안일사까지 0.2km.
평소 저 정도 거리였다면 '뭐, 이쯤이야?'하겠지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경사를 유지했고, 다만 경사 각도를 자유롭게 조절하여 우리에게 고강도 훈련을 시키는 것 같았습니다. 중간에 데크 계단이 나오는데, 대부분 내려오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습이었고, 올라가는 사람들은 애써 몸을 그리로 옮기지 않았습니다. 앞만 보고 묵묵히 내딛는 쪽을 택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계단이 더 힘들게 느껴지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참고로 내려올 때는 우리도 저쪽으로 내려왔습니다. 자연스럽게 데크 계단이 낫겠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드디어 안일사 도착.
이곳은 왕권이 3개월 동안 편안하게 머물렀다는 의미에서 '안일사'라고 하네요. 그러니까 왕건이 후백제 견훤에게 패하고 이곳에 숨어지낸 곳으로, 왕굴이라고 해서 왕건이 머물렀던 동굴이 안일사 위쪽으로 500m 지점 되는 곳에 있어요. 첫 번째 목적지에는 도달했고, 다음은 앞산 전망대입니다.
표지판에 나온 것처럼 0.8km.
'지금까지와 같은 길만 아니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돌계단으로 몸을 옮겼어요.
여전한 경사각도.
도대체 언제쯤 평지 길을 걸을 수 있게 되는 걸까?
열심히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0.2km밖에 오지 않았더군요.
중간중간에 나무 사이로 야경이 보이지 않았다면,
머리 위로 뭔가 하얀 빛이 번쩍거리지 않았다면,
더욱 힘들게 느껴졌을 것 같아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끝내 닿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 하얀 빛, 테두리, 저것은...'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앞산 전망대.
그리고
달 토끼.
올 초 토끼해를 맞이해서 올라왔던 기억이 났습니다.
이렇게 밤에 만나니 마음이 새로웠습니다.
"안녕, 토끼야, 다시 만나서 반갑다"
늦은 시각, 달 토끼를 만나러 온 사람이 많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못한 게 이상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가 담긴 달 토끼.
저마다의 마음으로 이곳을 찾았겠지요.
"꼭 이루세요"라는 간절함을 사진으로 담아보았습니다.
간절함이 닿아
우리 모두의 꿈과 바람이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멀리 83타워도 보이고,
카페거리도 보이고,
앞산순환도로도 보이고,
'우리 집은 어디 있지?'라며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보았습니다.
수많은 건물 사이에서 작은 실마리를 바탕으로
비슷해 보이는 아파트를 찾았습니다.
지금, 오늘 내가 살아가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from. 기록 디자이너 윤슬 작가
참고로,
고령촌돼지지께 앞에서부터 안일사, 앞산 전망대까지 50분 정도 걸렸습니다.
중간에 오이를 먹고, 물을 마시고, 숨 고르기를 하다 보니 10분 정도 시간이 소요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중간에 쉬는 타임없이 오르면, 30,40분이면 앞산 전망대에 도착한다는 얘기입니다.
다만, 조금 경사가 심하니,
관절에 무리가 가면 안 되는 분들, 급경사가 부담스러운 분들,
케이블카를 타고 편안하게 올라가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