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쓴다는 것’에 대해 제법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스물 몇 살에도 글을 썼고, 서른 중반에도 글을 썼고, 마흔 후반의 나이에도 여전하다. 그래서 가끔 과거의 글이 궁금해질 때가 있는데, 몇 년 전에 재미있는 시도를 했었다. 스물 몇 살의 일기, 낙서장을 가져와 한 페이지씩 자판에 옮겨적은 기억이 난다. 아끼고 아끼고 싶다는 느낌보다 당시의 막막한 기분이 떠오르면서 어떻게 조금 바꿔줄 수는 없을까 생각하기도 했고, 결국 잘 보내주는 게 제일 중요하겠다는 마음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잔뜩 감정만 나열된 글을 읽는 것은 힘들었다. 딱히 누군가를 대상으로 쓴 글이 아닌 것도 이유겠지만, 지나치게 과장된 느낌이 불편했다. 거기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정확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말해주지 않고 빙빙 말을 돌리는 것도 읽는 재미를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덕분에 혼자서 흩어진 조각을 가져와 이리저리 꿰맞추기를 반복했다. 남은 자의 역사라고 했던가, 순전히 ‘현재의 나’가 받아들이고 싶은 만큼 이해하고 마무리했다. 다만 한 가지는 잘살아 보려고 부단히 노력했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힘겨운 시간을 잘 견뎌준 것에 감사하며 일기장을 덮으려고 하는데, 순간적으로 ‘아, 글을 쓸 때 이런 것을 조심하면 좋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쓰고 싶은 감정, 마음, 생각을 써 내려가겠지만, 조절과 균형이 필요해 보였다. 지나치게 감상적인 글은 호기심을 떨어뜨린다. 다음 페이지를 향해 나아가는 마음보다 멈추고 싶다는 마음을 충동질한다. 스물 몇의 일기장처럼 말이다. 반대로 너무 사실적으로 써 내려간 글은 울림이 없다. 새로운 정보에 대한 갈증이 있는 게 아니라면, 몸이 뻣뻣해지고 마음이 뻣뻣해지면서 안으로 무언가를 더 이상 집어놓고 싶지 않아진다. 그런 측면에서 조절과 균형이 필요할 것 같았는데, 만약 조절과 균형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이렇게 정리해봐도 좋을 것 같다.
‘최대가 아니라 최소로 쓰자’
최대한의 감정을 전달하고, 최대한의 사실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감정과 최소한의 사실을 전달해보자. 그런 다음 표현력을 높이는 일에 더 정성을 쏟아보자. 예를 들어 스물 몇, 어느 날의 단상을 쓰고자 한다면, 그날의 사건이나 경험에 대해 최소한의 소개를 하고, 그날의 감정이나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를 찾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하는 것이다.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단어 말이다. 이 방법이 최대로 써내려가는 것보다 의미전달에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좋은 글에는 은유가 있고, 공간이 있다. 은밀하게 속삭이는 듯 싶었는데, 고양이 발걸음이었는데, 어느새 따듯한 햇살이 되어 위로를 주었고, 희망을 선물 받았다. 그래서 감히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최대가 아니라 최소로 쓰자’라고 말이다.
from.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