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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글을 쓰고 있더라

by 윤슬작가

<시간관리 시크릿>을 출간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출판사의 대표로 불렸을 수도 있다. 솔직히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을 매 순간 떠올리며 살아가는 것은 사실이다. 언제부터인가 의도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굉장히 자연스러워졌다. 나름 목표라고 정한 것에 대해 하루하루, 나만의 루틴을 정해 순서에 따라 일을 해결해나가는데 이때 가장 경계하는 말이 있다. 바로 '해치운다'라는 말이다. 이상하게 나는 '해치운다'라는 말이 불편하게 다가왔다. 어떤 식으로든 해냈다는 생각과 함께 죄책감이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아쉽다는 느낌도 든다. 뭔가 더 해볼 수 있는데 더 이상 애쓰고 싶지 않다는, 열정이 느껴지기보다 의무감으로 후다닥 마무리한 기분을 지니게 한다. 그런 까닭에 가능한 그와 비슷한 말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글을 쓸 때도, 일을 할 때도, 하다못해 집안일을 할 때도 내가 하는 것이 무엇이든, 가치를 찾아내어 의미 부여하기를 즐긴다.


언젠가 '해치운다'라는 단어와 연관해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도무지 글을 써지지 않아 고민하던 중에 나를 만났고, 내가 대단한 해결책이라고 가지고 있다고 믿었는지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작가님도 글을 쓰다가 잘 안될 때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때는 어떻게 해결하셨어요? 아니 어떻게 해치우셨어요? 저 요즘, 정말 글이 안 써지거든요. 나만의 글쓰기 비법, 이런 게 있을까요?"

얼마나 글이 써지지 않았으면 '해치우고 싶다'라는 표현을 썼을까 싶었다.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그 마음이 이해가 되고도 남음이었다. 아마 그러면서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어떻게 글을 쓰고 있지?, 어떻게 썼었더라?.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완벽하게 기억나지는 않았다. 다만 지금 내가 행하고 있는 것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를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이 있었다. 그 마음에 그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의 경우에는 시간을 정해놓고 글을 쓰거나 분량을 정해놓고 글을 쓰는 게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그러면서 당부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어? 이 정도로 되겠어? 겨우 이만큼?'으로 시작하는 게 좋다고. 예를 들어 한 시간 동안 글을 쓰겠다고 하지 말고, 30분 글쓰기를 실천해 보라고. A4 한 장을 채우기를 목표로 하지 말고 10줄, 혹은 5줄 쓰기, 아니면 1줄 쓰기로 시작해 보라고. 그러니까 너무 길게, 무리해서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게 좋다고. 딱 일주일, 일주일도 길다면 사흘 정도가 좋다고.


지금까지 여러 경험을 통해 분명하게 깨달은 사실은 시작에는 즐거움이 있어야 하고, 만만함이 있어야 한다. 시도를 한다는 것 자체에 이미 많은 용기와 노력을 쏟아부었는데 틀에 박힌 방식, 존재감을 뿜뿜 드러내겠다고 지나치게 욕심을 내는 순간 작심삼일이 되기 쉽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이 정도는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말해주었다. 내가 글을 썼던 방식이 다르지 않다. 예전에 아이들이 어린 것도 이유였고, 늘 쫓기고 있는 마음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항상 글을 쓸 때 30분을 목표로 삼았다. 30분 동안 초고라고 하는, 첫 글을 쓴다. 그런 다음 퇴고를 거치면서 다듬는 방식인데 이 방식으로 진행하는데 역사가 정말 오래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효과도 상당히 좋았다. 30분이라는 시간은 적어도 나에겐 만만한 시간으로 느껴졌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집중력도 두 배가 되는 것 같았다.


물론 시간이 조금 더 있는 날, 그러니까 글을 조금 더 쓸 수 있는 날도 있었는데, 그때도 기본 틀은 바뀌지 않았다. 30분 동안 한 편을 쓰고, 그 이후에는 쉬거나 다른 업무를 하거나 책을 뒤적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잔에 커피를 추가했다. 창문을 어슬렁거리거나 전화 통화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영감이 떠오르거나 '이건 이렇게 바꿔야겠어'라든가, '저기에 그 말을 넣어야겠어'라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했다. 하여간 그렇게 2,30분 정도 시간을 보낸 다음, 다시 컴퓨터에 앉았다. 그렇게 잠깐 쉬면서 몸을 움직이고 나면, 마치 처음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은 느낌이었다. 그러면 그때부터 다시 30분이라고 시간을 정해놓고 글을 쓴다. 집중력을 발휘해 어떻게든 한 편의 분량을 마무리한다.


어느 날에는 하루 종일 글을 쓸 수 있는, 그분이라도 다녀가신 것처럼 내 안에 있던 것이 마구마구 쏟아지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는 30분 쓰고, 쉬었다가 다시 쉬는 방식이 아니라 몰아치기를 하기도 했다. 몇 시간을 자리에서 꼼짝없이 화면을 채워나갔다. 커피 한 잔을 가지고 책상에 앉았는데, 돌아보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하지만 이런 날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내겐 글 이전의 삶의 여러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몸 안의 에너지가 모두 소진된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가능한 몰아치기보다 30분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내가 쓰는 방법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글 쓰는 비결이나 방법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들여주는 얘기이지만 어디까지나 나에게만 적용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경험을 통해 오래 이어올 수 있었고, 앞으로도 이어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았음이 나에게 무엇보다 큰 기쁨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그 덕분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번아웃이나 모든 노력이 부질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회의감으로부터 나를 보호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희망한다. 글을 쓰는 사람들, 글쓰기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노력을 통해 '나는 이렇게 하면 도움이 되는 것 같았어'라는 것을 찾아내었으면 좋겠다. 그런 다음, '이게 나예요. 이게 내 방식이에요"라고 말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과정적으로 실패할 수도 있고,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지만, '시도해 본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실패가 아니라 경험 목록, 자산 목록을 쌓았다고 당당하게 얘기하면서 말이다. 그 마음을 응원하면 오늘도 나는 컴퓨터 앞에 앉는다. 30분, 딱 한편의 글을 어떻게든 완성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from. 기록 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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