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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망 Feb 28. 2022

수영장을 다니기로 했다

그곳은 춥고 힘이 빠지며 투쟁심을 불태우면서도 배가 불러오는 곳이었다.

그날은 직장에서 동료 직원과 신나게 수다를 떨고 있었다. 퇴근만 기다리는 무료한 시간이었다. 이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낼 수 없었던 우리는 운동에 관한 이야기로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걷기부터 달리기, 여러 스포츠에 말머리를 기웃거렸다. 그러다가 그는 자신의 케케묵은 이야기를 꺼내며 내게 수영을 추천했다. 생각해보니 나도 예전에 수영장을 1년 넘게 다닌 적이 있었다. 서로 수영장에서 있었던 추억의 에피소드를 풀다 보니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 귀가하면서 수영을 다시 시작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운동의 필요성을 온몸으로 절감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때는 수영할 마음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대신에 조깅을 시작했다. 왕복 4km 정도 되는 코스를 달렸다. 일주일에 3~4번, 특히 새벽 근무가 끝나면 어김없이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나와 오션뷰가 내다보이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사이를 뛰었다. 내겐 그걸로 충분했다. 그러나 제주도의 여름과 겨울의 바깥 날씨는 달리기에 혹독했다. 바닷물에서 건너온 찐한 습기와 찌는 열기의 조합은 헐벗은 나무의 영혼까지 뒤흔드는 강풍과 더불어 규칙적인 운동 루틴을 짜는데 어려움을 줬다. 또, 이곳은 틈만 나면 재해 문자를 보낸다. 그러다 보니 돌고 돌아 수영이 딱 맞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던 것이다.          


코로나 시국에 수영장을 다니기 위해서는 몇 가지 자격 조건이 필요했다. 일단 2차 접종을 마쳐야 한다. 그리고 시간대별로 정해진 인원수 내로 예약에 성공해야 한다. 둘 다 패스한 나는 쿠팡에서 수영복 세트를 주문했다. 3만 원의 가격대에 수영복, 수모, 수경, 귀마개까지 세트로 알차게 들어있었다. 이제 준비할 건 다 한 셈이었다. 마지막으로, 따로 강습 없이 10년 만에 다시 수영을 시작한다. 미흡한 부분은 유튜브를 통해 자유형의 기본자세부터 세세한 꿀팁까지 전수받기로 했다.  

   

수영장 가는 첫날이 다가왔다. 직원의 도움을 받아 필요한 절차를 마치고 탈의실 내부로 들어왔다. 옷을 훌러덩 벗어던지고 샤워실로 들어가는데 시야에 들어오는 것마다 낯선 풍경이었다. 그곳을 나체로 돌아다니는 게 설렘인지 긴장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어색했다. 샤아 소리와 함께 몸 위로 쏟아지는 뜨듯한 물이 잠깐이나마 위안이 되어주었다. 간단하게 몸을 씻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뒤 성큼성큼 수영장으로 나섰다. 수영장 내부는 대단히 추웠다. 갑자기 가슴이 주체가 안 될 정도로 쿵쾅쿵쾅 떨려왔다. 신체 온도가 떨어져서 그렇다고 단정 짓고서 나는 코를 움켜쥐고 물속으로 냅다 뛰어들었다.   

       

그곳은 평상시에 대회를 개최할 만큼 규모가 큰 수영장이었다. 총 7개의 레인이 가로로 늘어져 있고 그 뒤로 길이가 50m나 길게 뻗어있었다. 여유 있는 걸음으로도 20초 이내로 도착할 거리다. 게다가 처음이 아닌 만큼 어떻게든 될 거라는 믿음이 가슴 한켠에 방긋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첫발을 떼고부터 그 미소는 보기 좋게 깨져버렸다. 얼핏 느껴지기에 머리와 팔과 다리가 서로 다른 율동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다. 덕분에 제자리에서 허공에 뜬 채로 허우적대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 뒤로 얼마나 정신없이 헤엄쳤는지 모른다. 이쯤 되면 다 왔겠지, 싶어 고개를 들고 남은 거리를 확인했다. 그리고 레인의 한가운데에서 온몸에 힘이 쭉 빠져버렸다.      


물길을 잡기 위해서 양팔을 번갈아 앞으로 뻗은 다음 물살을 가르며 노 젓듯 팔을 돌린다. 물속에서 추동력을 얻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이다. 이렇듯 간단해 보이지만 나는 그곳에서 환영받고 있지 못하는 신세였다. 물속에 들어오니 물의 성질이 내가 알던 것과는 조금 다르다고 느껴졌다. 물은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오고 감에 있어 걸리적거림 없이 원활하게 운행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언제부터 물이 수성(守城)의 성질을 띠게 되었는지. 물속으로 들어가자 물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파수꾼처럼 부동한 자세로 내게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실은 나도 다 알고 있다. 이 말이 억지인 거 모르지 않는다. 그렇지만 내가 그 상황에서 실제로 직면했던 것은 침입자에 대한 저항의 물결이었다.        

   

그때의 나는 물의 법칙에 불성실했고 또 무지했다. 그런데도 그 속을 헤집고 다녔으니, 그날 하루는 물을 엄청나게 먹어댔다. 자유형 수영 동작은 기본적으로 얼굴을 물속에 집어넣고 헤엄친다. 그래서 중간에 고개를 휙 돌려 수면 위로 입을 뻥긋 내밀고 호흡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수영 동작이 거칠다 보니 내 주변으로 너울이 끊이질 않고 세게 일었다. 출렁이는 수면을 곁눈질하면서 타이밍을 잡고 주둥이로 힘껏 빨아들이는 데 그게 공기 반에 물이 반이었던 것이다. 또 이게 반복되면 본능적으로 고개를 천장 위로 바짝 들게 된다. 그러면 상체가 올라가는 탓에 수평이 기울어지고 다리가 아래로 잠긴다. 선박이 기울어져서 가라앉듯 몸이 침몰하니까 또 물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악순환의 시작이다.    

 

참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물속에서의 몸부림이 한결 자연스러워졌다. 이제 두 달째에 들어서니 물과 조금은 친근해진 것이다. 머리와 팔과 다리가 삼위일체로 합심하기 시작하면서 수영 동작에 리듬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수영에 필요한 근육도 착실히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이제 15~20분 정도는 쉬지 않고 레인을 돌 수 있다. 다만 힘을 너무 들이게 되어 동작이 뻣뻣한 편이다. 그래서 목표가 하나 생겼다. 힘을 빼는 것이다. 신경 써서 동작을 수행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몸에 익으면 그때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이번 목표는 어렵지 않을 전망이다. 그때까지 오래 다니면 되니까.







Cover Image from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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