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쿠나 Feb 26. 2022

소년의 기억 1

 가벼웠던 지난날, 아주 가벼운 이야기 1부

이야기는 제법 오래 전으로 거슬러오른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큰 변화를 감당해야 했다

하나는 헤어스타일이었다. 초등학교와 달리 중학교부터는 두발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남자아이들은 입학 전에 미용실, 아니 주로 이발소에 가서  짧게 머리를 쳐내야 했다. 90년대 남중학생의 머리는 그저 스포츠였다.
요즘이야 남자들도 미용실을 다니는 것이 일반적이고, 커트의 종류도 사뭇 다양하며, 각각의 종류별로 투블럭이니, 가일컷이니  따위의 그럴싸한 명칭이 있지만 그 시절에는 그런 것들이라곤 없었다. 그저 이발소에 들어가 만화책 몇 권을 읽다 보면 이발사 아저씨가 거울 앞 의자에 앉으라 하면 시키는 대로 앉아 처분에 맡겼다. 별 말을 묻지도 않았고, 말해야 할 게 있다는 것도 생각지 못했다. 앉으라는 자리에 우두망찰 앉아 있으면, 스포츠로 깎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절차였다. 요즘의 시선에서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그 당시에서 현재를 보자면 오히려 지금의 세태가 기가 막힐 노릇일 테다. 머리 한번 자르는데 무슨 준비할 것이 그리 많으냐며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른다.
 
헤어스타일을 소위 ‘스포츠’ 하나로 통일해야 하는 것에는 별 불만이 없었다. 당시에는 누구나* 그랬었고, 원래 사람은 누구나 그러는 것에는 큰 저항을 하지 않고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오히려 그 시절, 모든 이발사가 스포츠를 할 수 있었지만, 은근히 그 안에서 그들 각자의 개성과 차이를 드러냈다는 점이 어린 눈에도 재밌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낙 머리의 길이가 짧아 무쓰나, 스프레이, 헤어젤 등으로 보완하는데 한계가 있었던 지라, 균일하게 앞머리와 옆머리, 뒷머리를 자르는 건 여간 정성이 필요했던 게 아니다. 아버지를 비롯한 남자 어른들은 스포츠를 '이쁘게 잘 내는' 이발사가 진짜 실력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도 자주 하셨다.


돌이켜 떠올려 보면 그때의 스포츠 스타일은 요사이 군인들의 머리 길이보다 짧았을 정도였으니 시간이 정녕 많이 흐르긴 했다. 눈을 감으면 내게는 그때가 형형하게 손에 잡힐 듯 아련히 떠오르지만 지금의 학생들이 90년대를 생각하면 참으로 아득했던 옛날로만 느껴지리라. 마치 유년시절의 내가 흑백 TV 세대를 까득하게 헤아리던 심경이려나.


중학생이 되면서 겪는 또 하나의 변화는 교복을 입는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아이들의 복장이 유별난 차이를 보였던 것은 아니지만, 강제로 하나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은 그저 약간의 차이나 변화로 정리할 이야기가 아니다. 천 명 가까운 학생이 강제로 하나의 옷을 입어야 하는 규칙은 여지껏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의 시간이 도래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똑같은 컬러에 같아 보이는 디자인의 교복 사이에도 어떻게든 차이를 만들어냈다. 아이비클럽과 엘리트, 스마트 등 군웅할거하던 교복 브랜드는 서열이 매겨졌다. 늘 최고로 쳐주는 것은 그중 가장 비싼 교복 브랜드였다. 그때 교복의 명품을 추구하던 사람들이 자라나 명품 소비에 한몫했던 세대니, 우리 세대는 어떤 면에서는 퍽이나 일관된 사람들 일지 모른다.

 

한 패거리, 아니 같은 학교의 일원임을 상징하는 같은 옷을 입고 등교했던 중학교 1학년, 3월에 만난 학교의 첫인상은 차가웠다. 푸르뎅뎅하고 어두운 색감은 지난달에 졸업한 초등학교와 별반 다름없는 분위기였다. 학교란 원래 이런 곳인가. 전반적으로 조명의 간격이 제법 멀고 정남향이 아닌, 북향에 가까운 학교의 구조는 교실에서 햇볕을 등지게 만들어 더욱 어둡게 느껴졌다.  앞과 뒤, 천장까지 흰색과 녹색으로 휘감은 시멘트는 차츰 때가 회색과 청록색이 되어 한층 스산함을 더 했다. 게다가 바닥은 왜 그리 딱딱하고 차가운지. 6년을 다녔던 초등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은 중학교의 모습이었지만, 그 별반 다르지 않음에도 낯선 걸음을 내딛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곤색 교복에 스포츠로 파르라니 깎은 머리, 회색 바탕의 낯선 공간은 아직은 어린이라는 말이 더 익숙한 새내기 청소년을 바짝 얼게 했다. 그러나 그 시절은 하루하루가 무척이나 촘촘해서 잘려나간 머리털의 길이만큼 공포의 유효기간도 짧았다.  기억은 성실하게 쌓이기도 했지만, 좋지 않은 머리는 기억보다는 망각을 택했다. 공포가 잊히고, 두려움이 사라진 자리를 설렘과 기대가 채우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 동계올림픽, 배성재 사과 논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