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아주 가벼운 지난 날, 아주 가벼운 이야기 -마지막-
이민정이라는 이름. 워낙 오래 전 일이라 그 이름이 일으키는 파장은 예전만 하지 않았다. 시간도 지났고, 미디어에서 접한 시간도 많았다. 내게 ‘이민정’이라는 이름이 주는 파괴력은 세상과는 반비례했다.
하지만 유아부에서 두런거리는 다른 무리의 이야기를 들은 뒤로는 은근한 기대를 갖게 했다.
이야기를 들은 지 한 3~4주가 흐르는 동안, 스타 커플의 아들은 성실하게 출석했지만 함께 온 사람은 이민정도, 그녀의 남편인 유명 연예인도 아닌 보모였다.
“그렇지, 한 번 나온 게 전부겠지. 쉽지 않을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즈음 브라운 색깔의 고급 코트를 한 아이의 엄마가 나타났다. 비록 패션을 기본 교육제도로 비유한다면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을 수준이지만 촤르르 떨어지는 코트 겉감의 질감은 그녀의 아우라를 더 빛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단발의 이민정, 그녀가 나타났다.
나 역시 서른을 훌쩍 넘긴 상태, 아무리 유명한 연예인이어도 흘깃거릴 나이는 지났기에, 교사로서의 체통과 본분을 지키며 아이의 외투를 벗겨서 어머니 이민정에게 쥐어주었다. 능숙하게 명찰을 떼어 아이의 옷에 하나 붙이고, 아이의 신발에 다시 하나 붙여서 신발장에 넣었다. 시크하기 이를 데 없는 나의 익숙한 루틴을 반복한 패턴은 그녀가 입고 있는 어떤 옷의 패턴보다 능숙했으리라.
유아부 시간은 2년 정도 되는데, 이민정은 생각보다 자주 출몰했다 그녀는 일반 예배로 가지 않고 주로 아이가 예배를 보는 유아부 실에 머무르는 걸로 보였다. 그녀는 가만히 앉아 핸드폰을 하거나 아이의 율동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2년의 시간 동안 그녀와 사담을 나눈 적은 없었다.
그녀는 나 뿐 아니라 누구와도 한 마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세상은 그녀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기어코 일이 터졌다. 나는 그것을 美의 신비라 예찬하고 싶다.
유아 예배에서는 말씀 천사라 하여 여자 선생님이 드레스 복장을 하고 나와 아이들에게 성경을 읽어주는 시간이 있었다. 선생님이 등장할 때는 ‘말씀 천사 선생님이 나오십니다, 박수로 환영해주세요’ 같은 담당 전도사의 소개 멘트가 있는데, 사건 당일 어떤 아이가 씩씩하게 전도사의 말에 반기를 들었다.
“아냐, 천사 아냐. 천사는, 천사는.. 음 여기 있어”
50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늘 시끄럽지만 그 아이의 외침은 뭐랄까 아주 좁은 틈을 뚫고 들어가는 펜싱 칼과 같았다. 아이의 외침은 희한하게 그 안에 있던 모든 이의 시선을 한쪽으로 아이에게 쏠리게 했다. 아이는 친절히 손가락으로 안내했다.
손가락의 끝에 누가 있었는지는 보시는 분들은 이미 짐작하셨을 게다.
내가 정말이지 신기했던 것은 자기의 엄마도 아닌데다 TV를 봐봤자 고작 다섯 남짓 한 어린 아이가 얼마나 봤겠는가. 그런데 어떻게 이 아이가 이토록 정확하게 현재의 美를 포착하느냐는 말이다. 그 아이의 혜안에 고개를 푹 숙이고 그저 감탄을 하는 것 외에는 달리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암 그렇고 말고, 거짓을 말하지 않는 너는 분명 천국에 가렸다”
중학교 때 중앙계단에서 바라볼 때도, 군대에서 TV로 감상할 때도, 그리고 지척에서 바라볼 때도 여전히 내 세상과 내 범주에 그녀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적 친밀감을 혼자 쌓아내기도 어려웠다. 비록 더 어림에도, 나는 아직도 결혼조차 하지 않은 미혼임에도, 왜 나는 이다지도 세월의 직격탄을 맞았는데 당신은 여전히 미를 뽐내고 있는가.
중학생의 문턱에 서 있던 얼라는 어느새 중년의 문턱에 서 있는 얼라가 되었다.
머리는 성실하게 커졌고(어째 성장이 멈췄는데도 크고 있는 것만 같다) 주름은 기가 막히게 늘어서 거울 앞에서면 세월의 무상함과 무정함을 동시에 느낀다.
그럼에도 소년은 아직 내 마음 안에 있더라.
이제는 조금 더 넉넉하게 그녀의 세계를 바라보며, 나와 다르지만 더 높은 세상이 아닌 그저 다른 세계로 볼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마치 교복을 입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것처럼 이 안에 그렇게 소년과 중년이 함께 혼재하는 것마저 혼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미소를 머금으며 그녀를 응원해본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