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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운 Jul 03. 2024

명랑 토마토

이사 가는 날은 정말이지 너무 힘들었다. 전에 살던 집이 반지하 같은 1층이라 사다리차를 사용할 수 없었고, 새집은 골목이 비좁아 이삿짐 트럭이 들어올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하필이면 장마가 시작되기 전이라 날은 찜통이었다. 나는 더위에 취약하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가 필요했다. 필요한 준비물은 완충된 휴대폰, 아이스 아메리카노, 부채, 손풍기. 여기서 내가 챙긴 건 아아와 부채 뿐이다. 손풍기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휴대폰 배터리는 70퍼센트에 불과했다. 이렇게 된 거 무더위를 즐겨 보자 싶었지만, 땀구멍은 이미 전투 준비 태세에 돌입한 듯했다. 강렬한 햇빛과 미지근한 바람에 땀이 쉬지 않고 흘렀다.


우리 가족과 10년을 함께 한 의자가 있다. 의자에 덧댄 천이 벗겨지고 바퀴가 헛돌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엄마와 나는 그 의자를 끌고 나와 그늘을 찾아다녔다. 우리는 의자에 번갈아 앉아가며 수다를 떨었다. 밖에서 얘기를 나누다 보면 말의 무게가 가벼워진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든 어렵지 않게 꺼낼 수 있다. 나는 취기가 올라야 할 수 있는 얘기를 마꾸 꺼냈다. 나의 고민은 더운 바람을 타고 아주 멀리 날아갔다.


이삿짐 직원 분들을 포함해 에어컨, 정수기 등 많은 기사분들이 집을 오갔다. 나는 몇 번이고 언덕을 오르내리며 음료와 간식이 사왔다. 덕분에 팔에 주근깨 혹은 기미가 생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우산과 양산이 모두 이삿짐 박스에 보관되어 있을 때였다. 엘레베이터 없는 6층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발소리는 거칠었다. 달달한 음료와 간식이 그들의 더위를 식혀줄 순 없지만, 적어도 힘을 내게 해주었다.


다음 날, 짐 정리를 마치고 다이소에서 토마토 재배세트를 사왔다. 빨간 플라스틱 화분, 배양토, 푸른색 씨앗까지. 거실 바닥에 앉아 배양토를 화분에 담고 씨앗을 심었다. 이 집에서는 햇빛도 사람도 잘 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토마토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동안 나도 성장할 수 있을까. 명랑한 나의 방울토마토와 함께 여름을 잘 이겨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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