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 또는 혼자생각을 좋아한다. (잡생각은 부정적인 느낌이라 혼자생각이라고 부른다) 혼잣말의 형태는 둘 중 하나다. 다그치거나 다독이거나. 듣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점이 다행이면서 한편으로는 외롭다고 생각한다.
짓눌리지 않을 정도의 외로움은 사람을 능동적으로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쓸만하다. 나는 외로움을 잘 달래기 위해 평소에 하지 않을 행동을 한다. 친구와 함께 가기로 한 북카페에 혼자 가서 잘 마시지 않던 위스키를 주문하는 것처럼 말이다.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 본다.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어디에 앉을지, 무엇을 마실지, 어떤 책을 읽을지 고민하는 건 내가 아닌 우리의 몫이었을 거다.
오늘은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하기로 한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자연광보다는 무드등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카페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카페 주인에게 건네받은 메뉴판을 자리에 앉아 천천히 정독했다. 완벽한 플러팅, 파인애플의 여름날과 같이 귀여운 메뉴를 시킬까 하다가 도수가 높은 술을 마시기로 계획을 변경한다. 혼술은 처음인데 조금 알딸딸해도 괜찮지 않을까.
고민 끝에 시킨 아오리사과는 탄산음료 밀키스를 연상시켰다. 이렇게 희고 뿌연 술은 처음이었다. 평소였으면 친구에게 호들갑을 떨면서 맛있다고 했겠지만, 오늘은 말할 사람이 없다. 태생이 수다스러운 나는 혼잣말을 한다. 조금 쓴데 맛있네.
책꽂이에 끼워져 있던 방명록이 눈에 띄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사용했던 일기장 형태이디. 날짜, 날씨, 일어난 시간을 적는 칸이 있다. 어릴 땐 왜 그렇게 일기 쓰는 게 싫었을까. 몇몇의 장면들이 불규칙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지금을 위해 과거의 그리움은 잠시 넣어두기로 한다. 옆에 누군가가 있었다면 '00과 왔고'와 같이 간단하게 글을 썼을 것이다. 나만의 감성을 드러내는 게 왜 이렇게 부끄러운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나는 혼자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방명록보다는 익명의 일기징에 가까운 노트를 펼치고 펜을 들었다.
'위스키가 좋은지 싫은지 알기 위해서 직접 마셔봐야 아는 것처럼. 앞으로의 인생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그러니 무엇이든 해볼 생각이다. (…) 일단 눈앞에 놓인 '아오리 사과'를 한 모금 마셔야겠다. 알코올이 나 자신과 친해질 기회를 마련해 줄지도 모른다.' 열심히 방명록을 쓰고 책을 마저 읽었다.
저녁 6시쯤 카페에서 나와 집으로 향했다. 이 시간에 나가야 노을을 볼 수 있었다. 언덕을 올라 집에 도착하니 오렌지빛으로 물든 하늘이 보였다. 혼자 있어야 발견할 수 있는 낭만이 있다. 나는 이것을 찾기 위해 한참을 헤매고 기다려 온 것 같았다. 그냥 흘려보낼 수 있는 어느 날을 잔뜩 움켜잡은 듯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