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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우정 Oct 24. 2020

겨울손님

데카당스 2호 - <겨울손님>

겨울손님


벌써 십년 째이다. 십년 째 겨울이면 이 산장에 틀어박혀 요양을 했다. 십년 째 동행한 이는 변하지 않았고 우리는 오랜 부부 생활에도 크게 다툴 일이 없었다. 배우자는 무심한 듯 살뜰하게 나의 몸과 정신을 가꾸어 주어 오랜 세월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삶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어깨가 뻐근하다고 하면 안마를 해주고 머리가 띵하다고 하면 손수 운전해 도심에서 교외로 드라이브를 시켜줬다. 내가 글 쓰는 양반인 게로 정신이 저 세상에 가 있으면 잔소리를 해서 스스로 서재를 청소하게 했다. 몸이 약하지 않았다면 배우자의 완고한 보살핌에 갑갑함을 느끼고 일탈을 꿈꿨을 것이나 권태에 빠져들 즈음이면 겨울이어서 또 배우자는 나의 병든 마음을 기저귀 갈 듯이 갈아주기 위해서 저 아파트에서 이 별장으로 마음껏 게으름을 피우라고 풀어 놓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사방을 둘러보아도 이 산장 밖에는 눈 덮힌 산과 들 뿐이다. 또 다른 새장이다. 밤도 빨리 찾아왔다. 덕분에 고립된 채로 창 하나만 바라보면서 작은 스탠드 하나를 밝히고 낮이고 밤이고 글을 쓴다. 권태는 배우자가 준 선물이기도 해서 참으로 오랜 시간 펜이 마를 일이 없었다. 몹쓸 버릇이라면 내가 글쓰기에 집중하는 그 시각, 문을 벌컥 벌컥 열고 들어와 과일이라든지 간식 따위를 놓고 가는 것이다. 생각의 흐름이 뚝 끊긴다. 배우자에게 차마 “그냥 집중할 땐 서재에 얼씬도 하지마!”라고 짜증을 내고 싶은 걸 꾹 참고 가닥이 끊긴 곳에 표시를 하고 긴 안락의자에 자빠져 누워 버린다. 권태와 게으름은 또다시 기지개를 편다. 배우자는 아침부터 눈이 펄펄 나리는 이런 날에도 발을 푹푹 눈 온 땅에 담그며 마당을 쓸고 개 산책을 시키고 작은 과수원을 돌본다. 창밖으로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왕년에 글 좀 썼다하는 중년의 작가는 하꼬방 같은 서재에서 멍하니 앉아 구슬픈 옛날 노래나 전축으로 틀고 앉아 있다. 무릎은 영 말썽이다. 연골이 물러 다 없어질 지경이라 바깥 축으로만 걸어 걸음도 예전의 당당함을 잃었다. 흡사 절름발이 같다. 몇 개의 근대 식민지 시절 작가의 이름을 내세운 상을 받았고 주요 일간지에 소설을 연재하던 시절도 있었고 해외 포럼에 한국 대표 작가 10명 중 한 명으로 초청받았을 때도 있었다. 내 소설이 밀리언은 아니어도 그 언저리까지 갔을 때도 있었다. 정신없이 살았다. 글을 배우고 싶다고 영화 제작의 영감을 얻고 싶다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청한 이들이 내게서 소스를 얻고 나의 인생을 소재로 쓰고 여러 종류의 존경심을 표했던 적도 부지기수였다. 떠올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들이 나를 붙들고 싶어 했다. 그들의 결핍된 욕망은 커다란 구멍, 아니 구덩이였으리라. 그것은 나만큼 아니 나보다 컸으리라. 구덩이를 채우자면 삶을 갈아 넣어야 하는 것이다. “현실은 지옥이다”라는 말이다. 앞 다투어 내 심연을 향해 삼천궁녀처럼 몸을 던질 때 배우자는 나를 차에 태우고 권태의 구덩이로부터 다른 고독의 터로, 감옥으로, 새장으로 밀어 넣었다. 그렇게 매번 깊은 상처를 남기고 나만 도망쳤다. 그 상처가 별안간 내게도 옮아 축적 되었으리라.


서재 책상에는 사진 한 장이 놓여있다. 조금 비스듬하게 서 있는 사람은 정장차림이다. 왜소한 체격에 자세도 썩 좋지 않다. 반항기 있는 표정이 살아 있다. 어딘지 비웃고만 있는, 그건 방어 기제일테지만 고전적인 기품과 반항기가 주는 그런 반골기질에서 비롯된 총명함이 있었다. 젊을 때의 내 사진이다. 다자이 오사무가 자신의 사진을 사소설에서 ‘원숭이’라 표현했다면 나는 한 마리의 겁먹은 늑대라고 표현하고 싶다. 특징 없는 흰 피부에 짝다리를 걸고 서 있는 꼴이 지금 보면 참으로 우습다. 이 사진을 마당을 치우는 배우자 K모씨가 찍어준 것이니 또 이렇게 십 년 동안 전시되어 있다.


눈이 일주일째 내리고 그치고를 반복했다. 운전을 못하는 나는 공연히 고물 차를 끌고 식료품을 사러 간 배우자를 기다렸지만 오후 한 시부터 너더시간까지의 간격은 한편으로는 묘한 해방감이 들었다. 연골이 다 무너진 다리로 이층 서재에서 내려와 눈이 복숭아뼈까지 쌓인 시골 길을 걸었다. 십오 분 거리에 꽝꽝 얼은 개울이 있고 뒤에는 ‘OO골’ 이라는 낡은 철제 표지판이 삐거덕 거리는 산골짜기가 있다. 조금 더디 걸으며 ‘겨울 집’-나는 우리 시골 산장을 겨울집이라고 부른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대중소설을 쓰면서 이만치나 세워 올렸다. 글 쓰는 잡놈이니 잡문 쓰는 시정잡배니 별 소리를 다 들으면서도 번 돈으로 입지를 고르고 골라 축을 세우고 한 단 한 단 올려 세운 집이다. 삼층 다락방까지 있는 작은 저택이다. 마당에는 지금은 얼어 있는 아름다운 연못이 있고 연못을 가로 지르는 무슨 무슨 선생의 헌정 돌다리도 아름답게 이어져 있고 뒷마당 저편으로는 2백평 가량의 작은 과수원에 사과나무, 감나무, 청귤나무, 포도나무, 복숭아 나무가 심어져 있다. 관상용으로는 빨간 단풍나무도 있다. 단풍나무 아래엔 작은 나무 그네를 설치해 놓았다. 신기하게도 이 단풍나무는 단풍이 빨갛게 익은 후로 2월이 다 되도록 잎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과수원은 부부가 없는 세 계절에 고용한 소작농이 관리를 한다. 겨울쯤이면 남은 사과가 꿰짝으로 몇 박스, 나머지 과일은 나무만 뼈대처럼 과수원에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다. 땅에 떨어져 동사한 사과 한 개를 잘 닦아서 깨물어 먹었다. 눈보라와 언 땅이 냉동실 역할을 하는지 메마른 사과가 얼음과 함께 씹힌다. 동남아 어느 나라에서 수입한 엔틱 가구로 꽉 채운 집의 벽은 흰색이었다. 빨간 지붕에 흰 색 벽으로 둘러진 저택 같은 삼층집. 동유럽 어느 시골에 있을 법한 동화 같은 집이다. 쌓인 눈에 휘어진 잡목 더미를 지나며 서재 너머로 보이는 그러니까 뒷마당 저 건너편으로 보이는 저택을 보았다. 유일무이한 이웃집이다. 지어진 지는 우리의 산장보다도 몇 년은 더 되었을 것이다. 벽도 페인트를 바르는 것이 아니라 고르고 고른 석재 벽돌과 심홍색에서 나온 깊은 고동색의 단단한 목재로 쌓아 만들었다. 다시 저벅 저벅 지푸라기 구겨지는 소리를 듣고 2층 서재로 걸어갔다. 삐거덕 삐거덕 한다. 1층 화덕에 장작을 넣고 떼우는 집이라서 불이 사그라 들면 금방 또 냉골이다. 감각이 다 사라진 발가락에도 한기가 스민다. 행여나 계단에서 굴러 떨어질까봐 계단 손잡이를 꼬옥 붙들고 올라갔다. 잠깐의 산책에도 코트에서 바깥 냄새가 난다. 겨울 냄새가 난다. 그 잠깐의 외출을 마치고 나선 다시 서재다. 뒷마당의 조그마한 과수원이 보이고 과수원 뒤편으로는 이웃집의 고성 같은 저택이 보인다. 그 저택에 사는 사람은 올해로 6년째 겨울에만 그곳을 찾고 있다. 11월이 되면 첫째 주 주말 어귀에 까맣고 매끈한 외제차 한 대가 구불구불한 시골 길에 들어서고 이윽고 고전 영화에나 나올 법한 반듯한 코트 차림의 남과 여, 각이 진 루이비통 여행 가방 몇 개가 집으로 날라진다. 가히 댄디하다고 할 만한 행색이다. 창가에 서서 나는 그걸 지켜본다. 처음에는 수년 간 관리인만 한두 달에 한 번 먼지를 청소하는 곳에 사람이 찾아온 게 신기하여 개미처럼 작게 보이는 인영을 관찰했다. 시간이 지나니 감금 생활에서 오는 권태에 무료함이 생겨 별안간 동하지 않았던 관음증에의 충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EF 800mm 망원렌즈를 끼우고 300m는 떨어진 창가를 구경하는 것이다.


6년째 11월에 시골에 당도하여 여장을 푸는 남녀는 언뜻 보기에는 부부로 보이지 않았다. 지근거리에서 인사를 나누고 지나가다가 마주친 적이 있지만 좀처럼 그들의 관계라든지 집에 얽힌 내력이라든지 하는 정보를 제공한 적이 없었다. 젊은 여자는 20대 정도로 귀여운 인상을 하고 있었다. 그다지 미인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생글생글한 표정이 기억에 선연하게 남는 스타일이었다. 사내는 여자와는 달리 묘연한 나이에 하얀 눈만큼 핏줄이 그대로 투영될 것 같은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나이차는 적어도 열댓 살은 나겠으나 미남형이요, 반듯한 외형의 소유자로 귀여운 아가씨 같은 여자와는 또 썩 잘 어울린다 하겠다. 6년째 겨울에만 다녀가는 이들은 한 달에 두어 번 청소객이 왔다 간 이후에는 옅은 먼지의 성이 된 저택을 매번 새로 온 것처럼 상기된 표정으로 청소하는 것이다. 3년째부터 망원렌즈로 지켜보면 내내 밖에선 무표정한 남자도 정성스럽게 가재 기구를 닦으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여자는 생생하고 화기애애한 얼굴을 하고 열심히 마루바닥을 닦고 먼지털이로 창가를 털고 창문을 걸레로 닦았다. 한차례 쓰레기가 집에서 나오면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고 부지런히 마당의 나무를 또 가꿨다. 민첩하고 생기 넘치는 몸짓은 젊음 그 자체였다. 하릴없이 카메라 렌즈를 삼각대에 설치하고 서재로 연결된 발코니에서 커다란 숄로 몸을 감싼 채로 그런 광경을 신이 피조물을 보듯이 구경했다. 그 모습은 보기에 참 좋았다.


권태가 최고조에 이르는 오후 너덧 시면 더 가깝게 렌즈를 조여 이들을 지켜보았다. 성벽 같은 울타리를 넘어 이쪽은 2층 저쪽도 2층 거실의 큰 외창을 통해 비치는 화면은 대체로 단조롭기 이를 때가 없고 어떤 때는 그 무엇보다 관음의 욕구를 해결해줄 만큼 자극적이었다. 중단한 연재소설의 진도가 술술 풀리기도 했고 새 소설의 모티브와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남자와 여자는 신비로 휩싸여 있었다. 가족 같기도 하고 아예 이질적인 타인, 또는 종자 같기도 하고 이 계절이 지나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연인처럼 애틋하기도 했다. 그들이 함께 있는 모습은 마치 허리케인을 눈앞에 둔 절지동물의 마지막 성애 같았다. 손짓 하나 몸짓 하나에 세상의 모든 슬픔이 녹아들어 있는 듯 했다. 가벼운 터치조차 처연한 느낌이 들었고 고독사 하기 직전의 인간을 보는 것 같아서 관음이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언젠가 배우자에게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물은 적이 있다.


“저 앞에 사는 사람들 말야. 대체 뭐하는 사람들이래?”

“부부같진 않지? 불륜인가? 자세히 보면 나이차도 꽤 나고.”

배우자도 퍽이나 이들이 궁금했나보다.

“마트에서 여러 번 마주친 적이 있어. 어떤 때는 시골 길에 차를 세워두고 뭔가를 찾고 있더라고. 꽝꽝 얼은 논밭에서, 안개 속에서 후레쉬를 비추고 뭔가를 탐색하더라니까? 지나가다 인사를 하고 뭐하는 사람인지 둘이 부부인지 물어도 그냥 웃고만 마는 거야. ‘조금 머물다 가는 거예요’, 이런 말만 하지. 이 동네에 가구 수도 몇 개 없는데 겨울에만 오는 인간도 우리 뿐만 아니라니 주민들 사이에선 말도 이상하게 나오는 것 같고... 하여간 여간 의뭉스러운 게 아니야.”

참말로 그랬다. 행장을 차리고 나오는 두 남녀는 이렇다 할 교류를 하는 것도 아니고 서재에서 훔쳐 본 바로는 집에서 무슨 대단한 일을 벌이는 것 같지도 않았다. 지금의 묘사처럼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붕 떠 있었다. 모호하다는 말이다. 나의 별난 취미에 관해서는 배우자는 아는 것이 없다. 배우자의 관심은 저 아파트의 집 값, 아파트에서의 생활, 퇴직금과 주식 시장의 변동, 그 그래프, 장부에 적힌 생필품의 목록과 벽난로의 땔깜, 보일러실의 여러 고질적인 문제에 있다. 나의 동선에도 관심이 많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걸어갈 때의 나의 발과 몸의 기울기, 어쩌면 지구의 자전축에 더 관심이 있을지 모른다. 배우자의 도움으로 겨울에도 근처의 숲이나 시골길을 산책하거나 시내로 가끔 드라이브를 가기는 하지만 도시에서 느끼던 권태감과는 또 다른 시골 생활만이 주는 권태감에 짓눌려 발버둥치기도 한다. 엿보기 취미도 그 권태라는 놈을 타파하기 위한 한 수단이었다.


여자와 남자의 모습은 환영같이 비현실적인 데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모든 남녀의 원형 같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환상 같기도 했다. 6년동안 얼굴과 표정 어느 것도 변함이 없다. 행색마저도 그대로일... 까만 밤, 렌즈를 조여 별처럼 반짝이는 2층의 그들과 형형색색으로 빛이 나는 샹들리에 불빛을 넋 놓고 바라보면서 구체성이 결여된 어떤 세계가 주는 위안을 받았다. 언젠가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던 것 같은 향수와 착각이 파도처럼 밀려 들었다. 크고 하얀 안락의자에 함께 앉아 있는 남녀는 에로틱하기보다 애처로워 보였다. 겨울의 어떤 날이 생각났다. 매서운 겨울, 서울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며 난로도 나오지 않던 대합실 뒤편, 벤치에서 그는 나를 아기 안 듯이 꼬옥 안아주었다. 그의 목을 껴안고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사정없이 키스를 날렸다. 그 남자는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는 남자였다. 하루하루의 끼니를 해결해준다든가 화장실을 매일 청소한다든가 싱크대를 정리하고 집안 바닥을 닦으며 머리카락을 치워주고 보듬어 주는 그런 사소하고 반복되는 일상에서 구억 오천만 킬로미터는 동떨어져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어떤 방점, 구두점과 같이 점 하나로 요약되고 또 무한으로 확장되는 사람이었다. 순간이라는 점. 그 점에 모든 것이 있었지만 365일, 24시간, 60초에서 단 십오 초 정도 밖에는 시간이 멈춰지지 않는 한 함께 할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삶을 삶답게 일상으로 영위하는 것은 지금의 배우자로도 충분했지만 오히려 그 이상으로 넘치는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결핍과 고독의 구덩이가 채워지지 않고 그 자리 그대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구덩이 안에 풍경은 온갖 마수가 꿈틀거리고 마귀가 활개치며 검은 강에 시체가 둥둥 떠다니는 풍경이었다. 그 속에서 루비콘 강 같은 저편의 강을 바라보면서 십오 초 또는 십오 분 또는 한 시간 오 분의 시간을 허비했다. 어떤 때는 하루 반나절씩 겨울 내내 그와 구덩이 속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육체만 책상에 붙어 있을 뿐. 배우자가 집으로 돌아오고 어둠이 산장에도 내려 어둑어둑 해지면 자동차 시동 소리, 자동차를 끄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부랴부랴 물건을 치운다. 그러고는 고상하게 글을 쓰는 척을 한다. 배우자는 냉장고에 마트에서 사온 식료품을 가득 넣고 내가 있는 2층으로 올라온다. 나는 “어서 와”라고 말하고 취미를 잠깐 중단한다. 배우자가 깊게 잠이 든 새벽이 오면 취미를 다시 시작한다.


어떤 때는 한 사람이 쓰기에 크기가 너무 큰 원목 침대에서 빠져나와 물을 마시는 척 부엌으로 내려갔고 이윽고 문을 열고 춥디 추워서 뼛속까지 싸늘한 바람을 맞으며 밤길을 걸었다. 지독한 권태였다. 이곳에서의 비일상이란 날짐승과 야생동물이 내는 기이한 울음소리, 바스락거리며 날리는 눈발과 낙엽의 소리,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가지들, 나뭇가지들이 차가운 겨울바람에 이리저리 물결치는 소리가 전부였다. 가로등도 드문 이곳에서 보이는 전등이라고는 노랗다 못해 새하얗게 질린 달덩어리 밑에서 지팡이를 든 그림자는 꿈틀거리듯 밤길을 걸었다. 과수원 위로 나있는 높다란 도로 겸 오솔길을 걸어 금방이라도 뱀파이어나 박쥐, 모포를 뒤집어 쓴 유령이 튀어 나올 것 같은 저택의 담장을 지났다. 저택에서는 철 지난 70~80년대 팝송 같은 것이 아마도 전축인 게 분명한 지지직-거리는 파열음과 함께 흘러 나왔는데 그 고전적 느낌이 겨울의 황량한 밤공기와 저택과 어우러져 더욱 공포스러웠다.


나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
그 언젠가 다정했던 그대의 그림자 하나
생각하면 무엇하나 지나간 추억
그래도 애타게 그리는 마음
아아 아아 아아 아 아아 아아 아아 아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안개 속에 외로이 하염없이 나는 간다

돌아서면 가로막는 낮은 목소리
바람이여 안개를 걷어가다오
아아 아아 아아 아 아아 아아 아아 아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안개 속에 눈을 떠라
눈물을 감추어라


서산에는 비밀이 있다. 그를 마음에서 지우는 것은 영영 실패라 여겼을 때 글자는 남아서 번뜩였다. 일부러 서산 가장 깊숙한 곳에 집을 지었다. 애달픈 노래는 언젠가 들어봤던 것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세이렌의 곡조가 이랬을까. 밤의 정령이, 달의 광기가 지나간 시대의 찬란한 향수를 내가 겪지도 않았을 시절의 아픔에 노크를 했다. 선험. 나는 분명 경험한 적 없는 일들이, 노래가, 어쩌면 사랑의 기억이 오랜 시간 어둠 속에서 서 있게 했다. 서산에는 비밀이 있다. 그를 마음에서 지우는 건 영영 실패라 여긴다. 글자를 남겨 버릇해 이젠 지워지지도 않는다. 통정(通情)했고 통정(痛情)을 겪었다. 영원한 반복이다. 무한한 권태다. 노랫소리가 흘러 나오는 것은 어쩌면 나의 착각일지 모르겠으나 또 어쩌면 이것이 꿈일지 모르겠으나 나는 불현 듯 하나의 이미지, 기억 같은 걸 꺼내어 놓고 통정해버린다.


눈이 오는 한 골목이다. 눈은 짓눈깨비처럼 내린다. 아직 추워지려면, 눈이 쌓이려면 멀었다. 골목과 골목 사이엔 차도가 있다. 우리는 오래 걷지 않았다. 별 말도 하지 않았다. 이내 동과 서로 갈라졌다. 눈이 내렸고 얼마간 시간이 지나 나는 그를 포함한 스무 명의 사람 앞에서 서산의 비밀을 알려주었다. 서산은 그의 고향이었다. 서산에서 나는 부활했다. 한 번 죽을 뻔 했고 부활한 장소였다. 눈이 내렸고 우리는 비밀을 결합시켰다. 액자에 넣어 진공 상태로 보관하는 중세의 그림처럼 그 기억은 환상이었고 영원이나 절대에 가깝지 도무지 현실감이 없었다. 이미지 속의 나와 그는 조금도 늙지 않았다. 딱 그 모습 그대로, 아마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한 계속될 것이다.


시간이 흘러 음악이 전축 한 테이블을 다 돌았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그들은 무엇을 했을까? 별이 유리조각처럼 밝혀오는 이 어두운 밤에? 그리도 어두운 저택에서? 흡사 중세의 고성을 연상케하는 회반죽 섞인 벽면은 비가 내리면 검은 자국으로 번졌다. 고풍스러우나 어딘가 음습한 곳이다. 한편 가까이서 보면 2층이 아니라 3층이었다. 꼭대기 층에서 불빛이 점멸했다. 다락방 안에는 또 무슨 이야기가 있을까?


저 서먹한 이웃과 산지 6년째 되는 어느 겨울날 점심. 그러니까 이틀 전 이들 부부 중 여자가 우리 집의 벨을 눌렀다. 오다가다 인사를 하고 말을 걸어 보려고 했건만 6년째 큰 소득이 없던 이 정체불명의 겨울 이웃과 처음으로 말을 해 본 순간이었다. 배우자는 이른 아침부터 시내에 나갔다. 나는 불편한 다리를 끌어 대문을 열었다. 새하얀 얼굴에 까맣고 큰 눈, 두터운 페이즐리 숄을 걸치고 있었다. 표정은 지나치게 굳어있었다.


“무슨 일이죠?”

“남편이 죽었어요. 그러니까 갑자기 계단에서 고꾸라지고는 숨을 쉬지 않는데...지금 밖에 눈이 너무 많이 쌓이고 내려서 산사태가 났대요. 터널이 붕괴되었다고...”

“전화는 걸었어요? 119에?”

“예, 그런데 헬기도 못 뜰 날씨라서 이곳까지 못 오고 있...”


여자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등 뒤로 회오리 바람과 엄청난 눈발이 날렸다. 동시에 핸드폰이 울렸다. 배우자였다. 배우자는 여자가 말한대로 집으로 오는 터널이 막혀 진입하지 못하고 있으며 금새 쌓인 눈으로 마트 근처의 마을에 주차를 하고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목소리는 떨려 왔으며 급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에 어쩔 줄을 모른다고 한다. 나 역시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일이 현대에도 일어난단 말인가? 어쨌든 이미 날은 어두워졌고 배우자는 어느 경로로도 집에 오지 못하고 있으며 섬처럼 고립된 이 곳에는 가구가 저 집과 이 집 밖에 없다. 그리고 그 한 가구의 가장은 오늘 죽었다고 한다. 벼락이라도 떨어진 걸까? 진정하자. 해 나갈 수 있는 것부터 해 나가자. 먼저 그의 죽음부터 수습해야 할 것이다. 여자와 함께 아직도 펄펄 눈이 날리고 다리는 푹푹 빠지는 오솔길을 걸었다.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으나 여자가 부축해주었고 향냄새 비슷한 여자의 의뭉스럽고 기묘한 향기에 의지한 채 더 의뭉스럽고 의심스러운 저택 앞까지 왔다. 이미 밖은 어둑해져갔다. 여자는 문을 열었다.


남자는 계단 아래 엎드린 채 뻗어 있었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미동조차 없었다. 엎드린 남자를 돌려 눕혔다. 시체 강직은 오래된 것 같았고 이미 분비물로 악취가 났다. 그런데 이상하게 구역질이 나거나 꺼려지지는 않았다. 눈을 감은 시체는 무척 아름다웠다. 아름답다니? 확실히 그랬다. 남자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초연한 매력이 있었다. 평화로워 보이나 고통에 푹 젖은 얼굴이었다. 시체가 되어 새하얗게 질린 피부는 전보다 더 창백했고 색이 바랜 입술은 석고처럼 매말랐다. 소재가 좋은 헤링본 조끼에 셔츠 차림, 각이 잘 잡혀있는 바지단과 깔끔한 집안용 슬리퍼가 평소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뇌가 탐미에 절어서 죽음 뒤의 행색에 대해 걱정할 이가 아니라면 모를까, 죽음 이후의 모습이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도 없을 것이다. 앨런 포우가 <리지아>에서 그의 젊은 부인, 연인의 모습, 죽음에 한 발짝 다가 선, 햇빛을 등진 창백하고 서글픈 우수로 젖은 죽음의 모습이 아름답게 베어 나오듯 이 남자에게 느낀 시체성애에 가까운 충동을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가질 수 있다면 갖고 싶을만한 끔찍한 아름다움이었다.


응접실의 태피스트리 위에 신문을 깔고 그 위에 비닐을 여러 장 잘라 면적을 넓힌 후 덮고는 남자의 여자와 함께 남자를 끌어 옮겼다. 시체는 제법 무거워 옮기는 일이 쉽지 않았다. 대체 남자의 심장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바깥의 눈보라는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배우자가 집으로 오기는 그른 것 같고 나조차 건너편의 집으로 들어가기가 그른 것 같았다. 눈은 더욱 세차게 퍼부었다. 여자는 울지 않았으나 표정은 매우 침울했다. 여자는 검은 상복 같은 원피스로 갈아입고는 남자가 있는 응접실의 문을 닫았다. 내게는 2층으로 오라고 했다. 2층에는 방이 세 개였는데 하나는 큰 서재였고 하나는 작은 손님방이었고 하나는 커튼이 부착된 큰 침실이었다. 그 큰 서재로 들어가서 여자는 양탄자 위에 앉아 몸을 쪼그리듯 말았다. 창밖은 이미 어두워서 방 불은 이미 켜둔 상태였다. 여자는 방금 전까지 각별한 사이였을 남자가 죽은 뒤 시체까지 함께 옮겼음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다만 그 표정은 내가 살면서 마주한 가장 슬픈 자의 표정이었다. 더없는 슬픔이 여자의 입꼬리와 눈동자 안에 서려 있었다.


여자는 서 있는 나를 향해 작고 여린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쌍둥이에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겠지만.”

그러고는 드디어 이름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눈보라가 창문을 두드렸다.

“제 이름은 안, 쌍둥이 오빠의 이름은 한입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오래도록 떨어져 살았어요. 부모님이 헤어지셨기 때문에 저는 엄마와 오빠는 아빠와 다섯 살 때부터 살게 되었죠. 어릴 적의 기억은 많지 않지만 우리는 퍽 닮았습니다. 나라에서 제일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그러니까 오빠는 남쪽의 항구도시에서 저 북쪽 첨단 도시에서 자랐습니다. 저는 바다와 늘 가까이 있어서 둑의 너머 바다를 바라보며 오빠를 그렸죠. 우리는 자주 만나지 못했어요. 조금 큰 다음에는 전혀 만나지 못했습니다. 남과 북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어른들의 이해관계로 우리는 멀어졌고 편지 몇 개가 오고 간 뒤에는 얼굴도 까맣게 잊을 정도로 바빴어요. 전화 번호도 바뀌고 사는 곳도 바뀌고 그렇게 십 수 년 떨어져 지냈습니다. 그러던 중에 저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몇 년 다니다가 결혼을 했습니다. 많이 착한 사람이었어요. 대학생 때 만난 동년배였고 번듯한 직장에 번듯한 인성을 가진 누가 봐도 인정할만한 착하고 순한 남편감이었지요. 뜨겁게 사랑하진 않았지만 잔잔하게 위안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꽤나 오래 살았습니다. 그리고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었죠. 밤에 나는 자주 깨었고 옆에 아무도 없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남편을 잃고서야 제가 그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물론 그에 대한 감정은 정염과는 차이가 있지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곧 저는 부모님도 잃게 됩니다. 그건 병 때문이었죠. 차례차례 앗아갔습니다. 가족이 전혀 남지 않은 상태에서 저는 일을 관두고 어릴 적 살았던 바다에서 한 달을 지내기로 합니다. 아직도 바다는 갈매기가 날고 밤이면 꿀렁댔지만 그 깊이가 가늠이 안 되었어요. 밤의 바다에서 어떤 괴이하고도 당연한 충동으로 바다 속으로 몸을 던지려던 찰나 오빠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쌍둥이 오빠라는 걸 단박에 알아 보았습니다. 나와 외모상으로는 구별이 제법 갔지만 특유의 분위기랄까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난 어떤 중심이나 핵이 같다고 느껴졌어요. 그는 꽤나 아름답게 성장했더군요. 나는 그날 밤 모질게 파도를 때리는 검은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문득 내 뒤에선 오빠를 만나게 되었어요. 푸른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죠. 나는 그를 유심히 보다가 이내 알아보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보았습니다. ‘한, 입니까?’하고 말이죠. 그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는 저를 처음부터 알아보았다고 했죠. 근처에 술을 파는 카페에 앉아 일출을 기다린다는 핑계로 오빠와 한참을 이야기 했습니다. 오빠는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어요.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이 항구도시에서 오랜시간 터를 잡고 살았죠. 그럼에도 원래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보다 덜 거칠고 더 유순한 말투와 몸짓을 지녔죠. 이곳 사람들에겐 무척이나 이질적인 느낌이었을테죠. 실제로 오빠는 튀는 존재로 살아왔다고 해요. 돋보인다고 하는 편이 낫겠군요. 수려한 외모도 외모지만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있었어요. 한창 편지를 나눌 적의 일화가 기억났어요. 학창시절에도 그를 중심으로 사람이 모였다고 하더군요. 밤의 바다 앞에서 줄지어 서 있는 배들과 포구의 가로등 불빛이 드문드문 반짝이는 곳에 서 있는 오빠는 굉장히 아름다웠어요. 잠깐의 순간이지만 나는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의 인생을 주마등이 스쳐가듯 온전한 직관으로 알 수 있었어요. 저와 같은 인생을 살아 왔겠구나, 했습니다. 물론 저보다 물질적으로 직업적으로 더 많은 것을 누렸을테지만 본질적으로 같다고 여겨졌습니다. 눈빛은 어딘가 초탈해 있었지만 텅 빈 우울 같다고나 할까요? 불안함이라는 구멍을 초탈함이라는 여러 겹으로 둘둘 말아 애써 감춘 듯 했습니다. 그건 위태로움이었지요. 우리는 위태로움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누구와도 깊게 친해질 수 없는 사람이었죠. 늘 주위 사람들을 관찰하는 알지 못하는 거리감이 우리에게는 있었죠. 오빠를 향해 나는 ‘오빠’라고 불렀어요. 그러면 멀찍이서 오빠는 씨익 웃으며 제 이름을 불렀죠. 우리는 같은 영혼이었어요. 하나였다가 둘이 된 같은 영혼이었죠. 우린 그렇게 15년 만에 재회를 했습니다. 날이 새도록 이야기를 했지요. 해가 떠오를 때까지, 우리는 쭉 같이 있었습니다. 술집은 아침 5시에 닫았어요. 우린 한 시간을 방파제를 따라 해수욕장까지 걸었답니다. 모래가 파란 새벽빛으로 빛나고 아직 바다는 검은 지평선으로 펼쳐져 있을 때 나는 죽은 남편의 이야기를 했어요.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모든 걸 알고도 묵인했다, 혹은 모든 걸 모르는 사람이었다, 혹은 모든 걸 모른 채 한지도 모른다, 라고 말했어요. 어쨌든 그는 내가 쌍둥이 오빠가 있다는 그 사실조차 모르고 세상을 떠났으니까요. 나는 그이와 살 때 오빠와 마찬가지로 하얗고 가지런한 얼굴 아래로 거대한 우물이, 비어있는 우물이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한 것 같아요. 우린 꽤나 닮았지요. 오빠는 제 부족한 말 주변에도 제가 하려는 이야기를 다 알아 들은 것 같았어요. 남편과 살 때 소소하게 장을 보고 함께 식사를 하고 여행을 가고 잠을 잤다한들 그 깊은 우물은 아래에서 뱀처럼 입을 벌리고 나를 집어 삼키기 위해 도사리고 있었고 나는 가끔 방문을 닫고 그 우물 속으로 들어가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어요. 남편과 저는 백만 광 년 정도 떨어진 사람들 같았죠.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모래사장에 앉아서 해가 뜨는 걸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빠의 어깨에 기대어 십 수 년 느끼지 못했던 체온이 주는 따뜻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죠. 그 뒤로 바닷가에 일자리와 집, 세간들을 마련한 뒤 오빠와 틈이 날 때면 만났어요. 틈이 나지 않았을 땐 전화를 했습니다. 우린 새벽이 다 가도록 통화를 하고 이야기를 했어요. 공통의 경험은 없었지만 공통의 기질이 있어서 어떤 말을 해도, 상당수는 침묵을 해도 편안한 시간이었습니다. 저와 오빠는, 오빠는 그 항구도시에서 퍽이나 오래 살았겠지만 사투리라든가 향토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의 격차에서도 어제 만난 사람처럼 익숙했죠. 우린 동족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오빠의 터전이었기 때문에 말이 나올 수 밖에 없었고 오빠는 그때까지 모아둔 돈을 털고 저 역시 유산으로 받은 돈을 일부 모아서 아무 연고도 없는 자작나무가 우거진 산골에 이렇게 집을 지었습니다. 겨울에만 만나자는 것이 저희의 약속이었고요. 나는 그 항구도시에서 100km 정도 떨어진 도시에서 새로 일을 시작했어요. 작은 카피라이터 회사였죠. 그곳에서 혼자 지낼 거처도 마련했습니다. 우리는 자주 연락했고 서로를 그리워했어요. 이쯤 되면 궁금하실 수도 있겠죠. 그래서 금기를 넘어선 관계였느냐. 아니요. 저희는 통상적으로 말하는 금기를 전혀 넘지 않았어요. 연인 사이에 하는 모든 애정 표현을 제외하고 가족이 할 수 있는 모든 생활을 같이 했어요. 물론 겨울, 이 집에 한해서요. 그 생활이란 같은 공간 안에 있는 거예요. 샴 쌍둥이처럼 저희는 한 공간 안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때도 대부분 함께 있었어요. 시간이 아까웠으니까요. 시간도 저희가 있던 그 공간 안에서 마치 블랙홀처럼 휘어지는 듯 했어요. 바깥 시간과 단절된... 아시겠어요? 거의 오륙 년을 그렇게 지냈는데 전혀 저희는 늙지 않았습니다. 우린 닮았지만 또 전혀 다르게 생기기도 해서 가끔은 얼굴을 마주하면 그 생경함에 몸서리를 치다가도 크게 웃곤 했어요. 우린 이미 하나였었는데 신의 사정으로 분리된 듯 했어요.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시겠죠? 하여튼 저와 오빠는 이 집을 짓고 겨울마다 이곳에 올 생각을 하면서 지루한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집에 오면 제일 먼저 청소를 했습니다. 1층 마루부터 2층 방들, 옥상까지 쓸고 닦고 먼지를 걷어 냈습니다. 나무로 된 바닥재를 뽀득뽀득 닦고 나면 우리는 3층 창밖으로 먼 풍경을 바라보곤 했어요. 거기에는 당신들의 집이 보였죠. 가깝지만 아득하고 멀게 느껴졌어요. 자주 굴뚝에서 연기가 났고 부드러운 공기가, 비록 겨울이지만 그곳에 머무는 듯 했습니다. 울타리는 낮았고 즐거운 음악소리가 나는 것 같았어요. 눈이 내리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의 모습이 당신의 집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듯 했어요. 이야기가 만들어 지는 그런 곳 같았어요. 소문도 뭉게뭉게 피어오를 것 같았죠.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가 함께한 그 시간이 너무나 소중해서 다른 사람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손에 손을 잡고... 어떤 때는 깍지를 끼고 가만히 3층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았습니다. 쌓인 눈... 지금처럼 펄펄 내렸죠... 눈이 쌓이지 않는 그 마을이 떠오르기도 하고, 한 시간, 하루를 소중히 생각하면서 지냈죠. 시간을 박제하고 싶은 욕망이 늘 있었습니다. 소중했으니까요... 눈이 내리고, 또 내리고...“


여자의 말이 잦아 들기 시작하자 졸음이 찾아왔다.

“아, 너무 제 이야기만 했네요. 몇 시죠? 내일이면 헬기라도 오지 않을까요?“

그러자 여자는 시간을 물어보았다. 벽시계를 보니 11시쯤 되었다. 나는 담담히 말했다.

“일단 눈을 좀 붙이는 편이 좋겠어요.”

1층에 시체가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졸렸다. 서재는 모든 현실에서 이탈한 듯한, 모든 세계에서 초월한 듯한, 그저 하나의 상자 같았다. 벽시계만 째깍째깍. 그렇지, 피할 길이 없지. 그렇지만 참으로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였다. 여자의 말을 자장가처럼 듣고 있으니 졸음이 밀려 들었다.

“저기 1층에 방이 있어요. 벽난로가 있어요. 그곳에서 주무시면 될 것 같아요.”

눈이 반쯤 잠긴 채로 1층으로 내려갔다. 계단에서는 뻐걱삐걱 하고 소리가 났다. 여자는 나를 1층에 있는 제일 오른쪽 방으로 안내했다. 들어가니 약간 곰팡내가 나는 옛날 방의 향취가 느껴졌다. 관리를 자주 하는 방은 아니구나. 그렇지만 무언가 고전적인 느낌이 들었다. 고동색 바닥재와 흰 벽지에 벽난로의 불과 불꽃이 일렁일렁 함께 그림자를 만들었다. 나의 그림자, 그리고 얼마 안 되는 방에 꽂힌 책장의 그림자... 그림자의 형태를 본 따 울렁거리는 그림자를 보면서 눈을 꿈뻑거렸다. 곧이어 죽음같은 졸음이 밀려 들었다. 잠이 들었다.


정적. 무엇보다 조용한. 아무에게도 상처나 영향을 주지 않는.


깼을 땐 온 세상이 정적이었다. 창문을 보니 눈이 어제보다 더 쌓여 있었다. 눈이 온 세상의 소리를 먹고 있었다. 겉옷을 두 장 겹쳐서 입고 방을 나오니 집도 조용했다. 응접실로 나왔을 땐 거기에 마땅히 있어야 할 어제의 시체가 없어져 있었다. 무슨 일이지?


“안! 어디 있어요? 한이 없어졌어요!”


덮어 놓은 신문지도 없었다. 모든 것이 말끔했다. 안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3층까지 6개의 방을 뒤졌다. 어디에도 안은 없었다. 시체와 함께 안도 사라졌다. 무슨 일이지?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나의 저택이 화마에 휩싸여 있었다. 불길은 하얀 설원에서 빨갛게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멍하니 서서 바라보았다. 집이 타고 있었다. 나의 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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